소성필(본명 소이영, 55)씨가 음반 수집을 시작한건 1980년도 무렵 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턴테이블에 LP음반을 걸어놓고 음악을 듣던, 돌이켜보면 낭만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 역시도 레코드판으로 우리 가요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는데, 그렇게 하도 많이 듣다보니 시나브로 귀가 터져 언제부턴가 노래만 들어도 작곡가가 누구인지 가수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됨은 물론 원판과 복사판의 차이도 확연히 구분할 만큼 나름 식견도 쌓여갔다. 현재도 그는 특히 트롯 풍의 가요를 좋아해서 그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인 1930년대 무렵부터 LP가 지금의 CD에 자리를 내주고 종적을 감추게 된 80년대 무렵까지의 약 5,000여장에 달하는 레코드판을 소장하고 있는데, 게 중에는 우리 군산을 소재로 한 노래도 의외로 많아 놀라움을 준다.
그는 본래 전남 보성 태생으로서 1989년도에 군산으로 이주하였는데 먹고 살 방도를 고심하다가 시작 한 일이 소금 장사였다. 장사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수완도 늘고 여유도 생겨 지금은 젓갈과 건어물에서부터 밑반찬과 양념류까지의 식자재를 취급하는 사업으로 발전하였다. 음반 수집은 고향인 보성에 살 때부터 시작한 일로서 시간 날 때마다 서울의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비롯해서 고물상 등을 뒤지고 다녔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언론통폐합 조치로 사라지게 된 방송국에서 무더기로 내다버린 음반들도 요행히 손에 넣을 수 있어 아직도 그 레코드판 재킷에 붙어있는 방송국 스티커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그밖에도 지인들이 기증하거나 소개해주는 등 주위의 도움도 많았고 인터넷을 통한 구입 까지 이렇게 지난 30년 이상 모아둔 판들이 지금은 집안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그의 애장품이 되었다.
요즘은 자그마한 CD 한 장에 수십 곡의 노래를 담아 어디서나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는 CD로 음악을 듣는 법이 없다. 생겨먹은 모습이나 그 속에서 나오는 비정할 정도로 깨끗한 기계적 음질도 맘에 들지 않아서다. 그의 거실에는 인켈, 아카이, 테크닉 등으로 구색을 맞춘 커다란 옛 오디오가 자리하고 있는데, 때로 낡은 레코드판에서는 바늘이 튀고 지글거리는 잡음도 적당히 섞여있는 이 턴테이블로 듣는 음악이야말로 그에게는 추억과 낭만을 동반한 진짜 음악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무렵 만 해도 앞, 뒷면 각 1곡씩 밖에 안 들어있던 SP(Standard Playing)판을 유성기(축음기)에 걸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을 텐데, 60년대 들면서 여러 곡을 수록하고 재생시간도 긴 LP(Long Playing)레코드가 보급되면서 SP판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까지 약 5년여에 걸쳐 SP와 LP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속칭 도넛판이 출현하기도 했는데 그가 소장한 음반 가운데는 2장의 SP판을 비롯해 약 250여 장의 도넛판도 섞여있다.
군산 소재 노래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우리 군산을 소재로 만들어진 노래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음반들이다. 1965년 ‘군산항구 밤 부두에 비가 나린다, 말없이 헤어지고 눈물로 헤어지던...’ 이라는 노랫말로 가수 박재연이 불렀던 ‘헤어진 군산항’이란 곡은 당시 잠깐 전파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전후로 여러 가수가 취입했던 군산 관련 노래들이 있기에 아래에 소개해 본다.
‘잘 있거라 군산항’
손석우 작사,작곡 / 노래 안다성 (1963)
월명산 고갯길을 팔에 팔 끼고
즐겁게 오가던 하루하루여
정든 이 길 언제 다시 찾을까
나뭇잎 아쉬워서 몸부림 치네
잘 있거라 내 고향 아아 군산항이여
‘헤어진 군산항’
노래 박재연(1965)
군산항구 밤 부두에 비가 나린다
말없이 헤어지고 눈물로 헤어지던
누구의 눈물이냐 지금도 나리는데
군산항 밤 항구엔 군산항 밤 항구엔
아 뱃고동이 슬피 우네
‘금강나그네’
이병훈 작시 박춘석 작곡 / 노래 이미자(1966)
님 오는 바닷가에 시름을 잊고
뱃고동 울어대는 군산항 부두
말없이 찾아오는 님 실은 배냐
사랑이 남고 남아 정다운 항구
갈매기 울어울어 나를 반기네
아 금강나그네
‘군산마도로스’
노래 이상열(1967)
갈매기 슬피 우는 항구는 이별이냐
(중략)
아 그 언제 돌아오려나
아 낯설은 항구 그라스 들 적마다
군산은 항구라고 노래나 불러다오
위 노래 중 이미자가 불렀던 ‘금강나그네’ 노래의 작시자 이병훈 선생은 군산 출신 시인으로서 군산예총 태동의 주역이자 초기 회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정감어린 노랫말에 박춘석, 이미자 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에 의해 탄생한 이 노래는 ‘군산시 선정가요’라는 타이틀이 음반 재킷에 인쇄되어 있어 더욱 관심을 끄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뜨지 못하고 묻혀버려 안타까움을 준다. 그밖에 당시 인기 가수였던 안다성, 이상열 등이 부른 노래들 역시 빛을 보지 못한 것도 아쉽거니와 다만 박재연의 ‘헤어진 군산항’노래는 한동안 전파를 타기도 해 크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6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는 기억 속에 남아있을 법하다.
그런가하면 그 무렵 정애란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직접 불렀던 ‘내고향 군산항’ 이란 노래도 눈길을 끄는데 ‘내고향...‘이란 제목으로 미루어 혹시 군산 출신 여성이 아닌가 하는 짐작만 가질 뿐 그 역시 알려진 바가 없다. 또 한 가지, 위 노래들에서 드러나는 공통된 부분이 있으니 ‘금강 나그네’를 빼고는 항구는 오로지 이별이요 헤어짐이요 눈물이라는 비정적 가사 일색이라는 점이다. 노랫말도 그 시대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세태도 바뀐 만큼 항구는 반가운 만남과 상봉의 장소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성필 씨에게 소장 레코드판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는지 물었더니 자신에게는 그 모든 하나하나가 다 애장품이라는 대답이다. 게 중 1920~1930년대 취입한 ‘서도소리 선집’(김종준 외2인)을 비롯해서 ‘판소리 걸작집’(이동백,임방울 외 4인), ‘기악합주 선집’(한성준 외 3인)은 당대 국악계 최고수들의 연주가 담긴 음반으로서 비록 LP로 재생한 레코드이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선 희귀한 자료가 아닌가 한다. 그는 기회가 되면 원도심 근대역사거리에 장소를 마련하여 흘러간 추억과 시대의 애환이 깃든 이 LP레코드를 전시하고 누구든 원하는 노래도 상시 들려줌으로써 특히 실버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군산시민은 물론 군산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도 군산은 과연 근대문화역사 도시라는 말이 명불허전임을 느끼도록 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단다. *
대광물산 (대표 소성필)
군산시 신영동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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