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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도사의 친절 택시
글 : 오성렬(자유기고가) / poi3275@naver.com
2014.04.01 15:01:5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내가 그의 택시를 탄 건 얼마 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무심코 앞자리에 앉았다가 옆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는데 마치 계룡산에서 막 하산 한 듯 백발의 도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산에 이런 택시 기사가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순간 예사롭지 않은 용모의 그에게 호기심이 인 건 당연지사.  내가 말을 걸어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최길환(崔吉煥), 태어난 곳은 임피라 했다.  195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63세인데 온통 백발, 수염이라서 얼핏 더 노령으로 보일 뿐 가까이서 본 얼굴은 생각했던 것보다 젊었다.  어릴 적 그의 집은 머슴을 둘이나 둘 정도로 부농 축에 들었고 형제자매는 자신을 합하여 무려 12이나 되었다.  아들 여섯, 딸 여섯을 낳은 것만으로도 그 부모의 금슬이 짐작되는데, 출산을 장려하는 세태가 되어버린 지금이라면 국가시책에 적극 부응하는 가장 모범적 사례로 아마 대통령 표창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격세지감도 든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도사처럼 하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하다 했더니 “제가 올해로 택시 경력 20년차인데 수염을 기르기 전에는 간혹 손님이 반말을 해댄다거나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무례한 경우가 많아 속을 좀 끓였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금의 용모인데 과연 백발에 수염을 기른 뒤로 그런 손님이 없더라고요”라며 웃는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남모르는 인생역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미심쩍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는 익산으로 학교를 다니고 육군 하사관으로 입대, 대구에서 복무하다가 중사로 전역했다.  군 생활 당시만 해도 야간에는 부대 인근 다방에서 DJ를 본 적도 있을 만큼 음악이 취미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형제 많은 집 아들 같지 않게 성격은 내성적이었고 외로움도 많이 타서 남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출가하여 중이 되고 싶은 생각이 싹트기 시작해서 전역과 동시 그가 찾아간 곳은 합천의 해인사였다.  물론 집에는 알리지 않았다.  절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아 온갖 잡일과 허드렛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삭발하는 것도 1년이 지나서야 될 만큼 힘든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나던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찾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친구의 제보가 있었던 것이다.  수도승 문턱에 가보기도 전에 부친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몇 달을 놀다가 S합판회사에 청원경찰로 입사, 근무하던 중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봉급이라고 해봤자 군대에서 받던 봉급보다도 적어 3년 정도 지난 후 그마저도 그만두고 말았다.  대신 안식구에게 식당을 차려주고 자신은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아들도 태어났는데 그들 부부에게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으니 어느 날 아내가 난데없이 이혼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그 이유를 여기서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그조차도 아직도 그 내막에 대해서 미심쩍어 하고 있음이 역력해 보인다.

 

어떻든 그 문제로 그들은 이혼에 합의하고 하나뿐인 아들은 그가 양육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벌써 19년 전으로서 그의 택시 경력도 20년째를 맞게 되었다.  이혼 후 3년이 되던 어느 날 아내 측에서 그에게 부모형제와 연을 끊는다면 재결합 하겠다는 조건부 제의도 있었지만 그것은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어 결국 무산되었는데 아내 입장에서 그러한 조건을 내 걸 때에는 시댁과 관련된 뭔가 남모르는 이유가 있음이 분명할거라는 짐작만 가질 뿐이다.  그의 택시 기사 생활은 몸은 고달프지만 차라리 홀가분하고 열심히만 하면 수입도 늘어 아들을 교육시키며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때로 엄습 하는 외로움은 그도 어쩌지 못해 그럴 때면 혼자만의 위안거리를 찾아 회포를 푸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다.

 

20년 기사 생활 동안, 요금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에서부터 은근히 유혹하는 여성 승객을 비롯해서 술 취해 시비 거는 사람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 들 만큼 에피소드도 많다는 그는 지금은 옛날에 비해 수입이 줄어 생활에 여유로움은 없지만 그래도 결근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한달 40~50만 원 정도는 저축이 가능하여 모은 돈도 꽤 된다는 귀띔도 해 준다.  그러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어려운 노인 등에게는 요금도 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태워다드리기도 한다는 최길환 씨.  이제는 아들도 장성하여 국방부 직할부대의 직업군인으로 타지에서 복무중이어서 혼자 지내는 집이 너무도 적적하여 서로 외로움을 달래 줄 여성 짝을 만나고 싶다며 마음만 맞는다면 비록 연상이라도 개의치 않겠단다.

 

택시 기사로서의 애로사항을 묻자 군산은 당장 익산과 비교하더라도 한 달 만근 일 수가 익산은 23일인데 비해 군산은 25일로서 이틀이나 더 많거니와 연료(가스)비 보조도 전혀 없어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입금액은 더 많아 제반 여건이 제일 열악하다며 정책적으로 이러한 부분들이 좀 더 개선됐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건강은 타고나서 아직도 강단 있어 보이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음주는 전혀 못하는 대신 담배와는 연을 끊지 못하고 있는데 간혹 손님 중에는 자신을 진짜 도사로 알았는지 운세 좀 봐 달라는 분도 있다며 허허 웃는다.

 

도사택시 최길환 (콜 불러주세요)

HP. 010-3658-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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