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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마트에서 삶을 바꾼 여자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4.04.01 14:58:5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우리 아빠는 ‘감나무는 위험하다’는 인생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 뒤안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메, 저 감 좀 보소” 할 만큼 주렁주렁 열렸다.  아빠는 감나무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속이 타는 엄마는 “구경만 하지 말고 따랑게요. 따!”하면서 아빠를 채근했다.  아빠는 놉(일꾼)을 얻어서 감을 땄다.

 

<무한상사>의 신입사원 정준하는 6개국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30여 개가 넘는 자격증도 갖고 있었다.  유재석 사원도 그를 보고는 열등감을 느꼈다.  무한상사 야유회 날, 정준하 사원은 감나무에 걸린 상사의 가발을 가지러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한 번의 사건으로 촉망받던 인재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단 한 번의 위력, 영화 <페노메논>에서도 본 적 있다.  미국 어느 소박한 도시에 사는 조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번쩍거리는 빛을 맞고는 천재가 된다.  스페인어도 하루밤새 통달한다.  전문적인 지식도 싹 이해하고, 눈빛만으로도 물건을 옮긴다.  이웃들은 차츰차츰 그를 외면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은 죽어가는 그의 곁에 남는다.

 

정준하 사원과 조지는 단 한 번으로 그렇게 됐다.  고정희는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라는 시를 썼다.  어찌 보면, 사람의 인생이 확 바뀐다는 것은 시적이다.  극적이다.  예삿일이 아니라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다.  나는 단 한 번에 인생을 바꾼 사람을 실제로 만났다. 

 

“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트 문화센터에서 그걸 하는 걸 보자마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 성격이 뭐 하나에 꽂히잖아요, 그걸 막 파고드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바로 찾아가서 배웠죠.  피오피(예쁜 글씨)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4년 동안 하던 공부방을 접었어요.  후회는 없었어요.”

 

공방 ‘로뎀초크’에서 피오피와 초크아트를 하는 오현주님은 신나게 살고 있다.  남편 박정열님은 소방공무원,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점심, 저녁식사까지 다 준비하고 출근하는데도 힘차다.  집에서 공방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10분,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남편은 “살 빼려면 걸어가지”라고 권유하지만 싫다.  얼른 가서 작업하고 싶다.

 

피오피는 배우면서, 그걸 가르치는 강사로 나갈 만큼 실력이 팍 늘었다.  초크아트는 그림도 그려야 한다.  그녀는 중학교 때 포스터 그리기에서 교내 대상을 받은 경력을 밑천 삼았다.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응용한다.  ‘로뎀초크’ 공방 근처의 꽃집 간판도 그녀가 그린 초크아트 작품이다.  글씨 쓰고, 물걸레로 닦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실용적이면서 예쁘다.

 

 


 

“초크아트는 오일이 있는 파스텔을 써요.  문지르는 효과를 내면서 그리는 거예요.  작품 하나 하는데 쉬엄쉬엄 하면 5일쯤 걸려요.  제가 이 일을 너무 사랑한다는 게, 집안일 하고 씻고 자려고 침대에 가서도 조금씩 해요.  자기 직전까지요.  작업 하는 것에 저 혼자 취해서 ‘너무 좋다’ 하면서 그리다가 자요.”

 

그녀가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남편 박정열님은 사진으로 찍어 동료들한테 자랑한다.  한 번은 대나무 식기에 초크아트로 기도하는 아이 그림을 그렸다.  그녀 남편은 경이롭게 바라보며 “너무 멋지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 마음이 하도 예뻐서 “누구한테 선물이라도 해요”하고 그걸 줬다.  남편은 10만원을 봉투에 넣어주며 말했다.

 

“작품 값이야. 이거는 내가 평생 간직할 거고.”

아으, 닭살! 그들은 학생 시절에 6대 6 미팅에서 만났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의 남편만 보였다.  마음속으로 ‘와, 다리 길다. 걸어가는 뒷모습도 너무 멋있다.  비율이 엄청 좋아’하고 감탄했다.  그러나 떼로 몰려서 탁구장 갔다가 호프집 가고는 끝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 나서야 데이트 하는 관계로 발전, 결혼했다.

 

그녀는 13년 동안은 ‘아줌마 오현주’로 살았다.  큰애는 학교 숙제까지 다 해줬다.  공부도 같이 했다.  오랜 시간 서로를 할퀴고 나서야 알았다. 만화를 좋아한 큰애는 일본어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너 언제 공부할래?” 닦달해도 컴퓨터만 붙잡고 살았다.  그런데도 세 곳의 대학 일본어과에 합격했다.  국립이면서 집 가까운 군산대로 갔다.

 

 


 

“제가 너무 공부쪽으로만 압박을 줘서 미안하죠.  엄마가 다정하게 품어준다는 느낌이 없었을 거예요.  큰애 마음을 빨리 인정해 줬다면, 걔가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었을 거예요.  우리는 걔 대학 붙었을 때, ‘너 천재다’고 했어요. 꿈도 못 꿨거든요.  대학을 골라서 간다는 것을.  장학금까지 받더라고요.  지금은 군대 갔는데 저랑 사이가 좋아요.  제가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젊은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내 아이는 한둘이잖아요.  공부 억지로 시키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그렇게까지 하면은 따뜻한 엄마 되기 어려워요.  제가 그랬거든요. 나중에 후회 많이 해요.  공부는 아이가 정말 원할 때에 도움 주면 되거든요.”

 

 


 

그녀는 둘째한테는 공부도 숙제도 “네가 알아서 해 봐”하면서 지켜봤다.  자유롭게 크도록 했다.  그렇게 자란 작은애는 마음이 따뜻하다.  살갑다.  남자애 특유의 무심함이 덜하다.  부모 생일도 잘 챙긴다.  지금 고등학생인데 공부도 하면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  다그칠 일이 없으니까 “엄마, 공방 갔다 올게엥” 보드랍게 말하며 지낸다.

 

오현주님 인생은 고전소설처럼 극적인 우연이 있는 편. 남편을 만날 때도, 피오피를 할 때도 그랬다.  공방을 열 때도 마찬가지. 5평 가게에 월세 25만원, 마음이 단 번에 기울었다.  생각보다 권리금이 세서 남편이 마련하느라 애 먹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일하면서 생기는 즐거움이 이겨버린다.  친정엄마만 정곡을 찌르며 물었다.

 

“이거 장사는 되겠냐? 걱정스럽다야.  근데 재미는 있겠다.  네가 좋아는 하겠어.”

“엄마, 평생학습센터랑 여기저기 강의도 많이 나가요.  걱정 마세요.”

 

오현주님은 처음에는 군산상고로 주 4일 강의를 나갔다.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할 때 남학생들이 “선생님, 태워줘요”하며 쫓아다녔다.  금호타운과 한울아파트의 평생학습 마을 만들기 강사, 시에서 하는 배달강좌와 시니어 할머니들에게도 피오피를 가르친다.  동원중과 동산중의 토요학습 강의에도 나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몇 년째 난타팀 ‘금난아’ 회원인 그녀는 학생들에게 난타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중앙중 아이들이 학교축제와 은파 무대에 서게 했다.  올해는 지적장애 청년들과 함께 한다.  그 아이들이 “오른손 한 번 치자”, “두 번 치자”를 알아듣고 정확하게 북을 칠  때면 좋다.  큰 보람을 느낀다.  막 가르쳐주고 싶다.  이런 성품은 친정 엄마를 닮았다.

 

“엄마가 열성 엄마였어요.  교육에 열의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진 제일국민학교를 나왔거든요.  그 때 마린바나 피아노를 했어요.  기악부도 했고요.  너무 재밌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반대표로 반주를 하고 지휘도 했고요.  포스터 그리기에서 상도 타고요. 제 속에는 음악·미술이 계속 잠재해 있었나 봐요.”

 

그녀는 엄마가 시키는 공부를 억지로 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친정아버지가 그러기를 원했다.  가구점을 했던 아버지는 다른 가게에 미국 손님이 오면 나서서 통역을 해 주었다.  아버지는 미국말의 쓰임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내 별로였다.  자신이 영문과 나왔다는 것은 되도록 비밀에 부치고 살아왔다.

 

그녀는 좋아하면서 잘 하는 일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넘어서야 찾았다.  벌써 공방을 연 지도 4년차, 아침에 자전거 타고 집을 나설 때마다 놀러가는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신나? 큰 돈 버는 것도 아닌데…….”라는 말은 그녀를 흔들어놓지 못한다.  그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가졌다.  진정한 용자다.

 

 

 

로뎀초크

나운동 강천상가165호

010-2056-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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