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학예연구사 김중규. 그의 공식 직함은 군산시 문화체육과 박물관 관리계장이다.
그는 요즘 군산에서 제일 바쁜 사람중의 하나다. 며칠 뒤인 9월 30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근대역사박물관’ 의 개관식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필자가 박물관을 방문했던 날도 김중규 계장은 건물 안 1층에서 2층으로, 다시 3층으로 분주히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마지막 마무리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 김중규 계장과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잠시 숨을 돌리면서 박물관 설립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맥군_박물관 개관식 준비로 고생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준비는 잘 되어가나요?
9월 30일 개관을 앞두고 관장님 이하 6명의 전 직원이 휴일도 없이 연일 강행군 하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 모두가 기다리는 개관식이니만큼 조그만 소홀함도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맥군_박물관 하면 대개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데 근대역사박물관은 어떤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박물관은 지난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공간속에서 다루기 때문에 역사 를 시대순으로 전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선사시대 역사처럼 오래 전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 성과를 전시하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역시 이러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박물관은 역사적 특수성에 좀 더 주목하여 군산의 문화적 요소인 ‘근대문화’에 포커스를 맞춰 전시 운영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군_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유물이나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였나요?
전시유물들은 2009년도 6월부터 ‘시민이 함께 만드는 박물관’이라는 기획으로 수집활 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약 2,300여점을 기증 받았습니다. ‘근대역사박물’이라는 말 처럼 수집품 대부분이 옛 우리 선조들의 삶의 궤적인 생활용품들이 대부분입니다만 그 중에는 제주고씨 요여(腰輿/장사 지낸 뒤에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가마)나 선산김씨 묘지석 등과 같이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이 있는가 하면 선친의 유품인 잠수도구와 할머니로 부터 물려 받은 옛 장농 등 모두 다 그 한점 한점마다 삶의 애환과 사연이 녹아든 소중한 유물들로서 기증해주신 분들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맥군_일각에서는 사료나 유물도 빈약한 군산에 이 처럼 큰 박물관이 과연 필요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반만년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는 어느 고장이든 사료나 유물이 빈약한 곳이 한 곳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산시 역시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이었으며 백제시대 백촌강 전투를 비롯해서 고려시대엔 진포대첩의 현장으로 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점철된 지역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지방산단 및 국가산단 조성 등 좌고우면 할 새 없이 산업발전에만 전력을 다 하다 보니 정작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줄 박물관 건립은 도내 타 시군에 비해 늦고 말았는데 만시지탄인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시민들의 여망과 기대에 부응하여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어 참으로 뿌듯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01 박물관 외부 전경 02 옛군산역 모형0 03 경성고무신상점 야마구찌술도매상 04 뜬다리부두모형 05 전시실내부 모습
맥군_특별히 ‘고고문화인류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특별한 동기는 없고 그저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제 적성에 맞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전북대학교에서 ‘고고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고 박사과정도 마쳤습니다만 제 역사공부 방법은 일반 사학과는 좀 다른 형태입니다. 학계에서는 통칭 ‘문화인류학’이라고 하는데 일반 사학이 문헌을 근거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한다면 문화인류학에서는 문헌과 함께 생활형태, 구전, 전통풍습, 통과의례 등의 문화에 대한 현장조사와 특히 역사성을 지닌 인물에 대한 인터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어느 한 시대에 존재한 모든 문화적 자산을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 연구 방법으로서 이러한 조사방법은 특정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장점이기도 한데 지역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그 땅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이해를 동시에 수반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맥군_학예연구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며 도내 각 지자체마다 재직하고 있는지요?
학예연구사는 본래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관리하는 전문직을 칭합니다. 그러나 지자체에서는 관내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전문직 직원을 이르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도내 각 시군마다 1명 이상의 학예연구사가 있으며 특히 박물관에는 많은 분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맥군_그간 향토사학적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도 저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역사를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자료들이 축적되었고 이 자료들은 이 땅에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살아갈 모든 이웃들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 발간한 책은 지역사 교본의 성격을 담은 ‘군산사랑’(1995)이었습니다. 이 후 ‘잊혀진 백제 사라진 강‘(1998) ’군산역사이야기’(2001)를 비롯해서 ‘군산답사 여행의 길잡이’(2003) ‘근대문화의도시 군산’(2006) ‘서해안지역 수산업사 연구’(2008) 등 책자 외에도 ‘화교의 생활사와 정체성 변화과정’(2007)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제가 발간한 자료들의 특징은 오직 군산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앞서 말씀드린대로 해당 지역을 직접 발로 뛰어 사람들을 만나 조사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70대 이상의 어른들로부터 얻은 생생한 구술 자료는 모든 제 연구의 자산이자 기반을 이루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셨습니다. 특히 나운동 부곡마을의 이승우 어른과 일제강점기 신흥양조장을 운영했던 김태성 어른, 군산의 화교 관련 정리를 도움 주신 조계지 여사님 등 구술녹취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맥군_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선은 박물관 개관이 급선무고 일개 박물관이 아닌 원도심의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하여 살아있는 근대문화공간의 안내자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 되도록 부단히 최선을 다 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 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책자 발간에 일조나마 해 드리고 싶고, 전시를 통한 사회교육 기능과 함께 근대사업의 소프트웨어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산실로서 거듭나는 것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미진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면서 내실있는 면모를 갖춰 명실공히 그 어느 박물관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멋진 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맥군_이 기회에 시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을 듯도 한데요.
감사하다는 것 밖에 더 무슨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총 4,300여점의 전시유물 중 2,300여점이 시민들의 기증품이라고 말하면 타 시군의 학예사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시대에 시민들이 아끼던 자기 것을 선뜻 내 놓으며 성원을 보내주는 것이 타 시군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부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 군산시민들이 자랑스럽고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기증품 하나 하나를 더욱 소중히 관리하고 잘 보존해서 후대에 까지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계승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증자 여러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맥군_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멋진 개관식 기대하겠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할 기회를 주셔서 제가 더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쪼록 매거진군산도 타의 추종을 불허 할 훌륭한 잡지로 나날이 성장하길 바랍니다.
세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하루게 다르게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쏟아 낸다. 너, 나 할 것없이 새 것을 찾지만 유독 헌 것에 눈이 가는 사람이 있다. 다 들 신제품이 좋다 하지만 그는옛 것을 뒤적이며 집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갓 출시된 신형을 선호하지만 그는 케케 묵은 구닥다리를 찾아 나서며 매달린다. 하지만 오랜 때가 묻고 적당히 흠도 있는 옛 물건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그 정체성을 드러내고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채 빛을 발한다. 군산시 학예연구사이자 근대역사박물관 관리계장 김중규. 그는 우리 고장 구석 구석에 감춰지고 처박힌 조상의 숨결과 역사의 현장을 더듬어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조명해내는 학자이다. 보통사람으로선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시엔 다행히 그가 있다. 사료나 유적을 찾아내고자 우리 고장, 심지어는 근해 도서 지역까지 구석 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어딘가에 틀어 박혀 자신의 존재를 숨죽여 감춘 채 아직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옛 보물들은 어쩌면 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관 준비에 너무 동분서주했던 탓일까. 햇볕에 조금은 검게 탄 그의 얼굴이지만 신념을 말 할 때의 눈빛에서 믿음직 스러움이 묻어 난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그를 급히 찾는 목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인사를 나눈 그는 어느새 2층으로 올라가 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