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벗 ‘긴팔동지’는 칼질을 잘 한다. 급식소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칼솜씨 자랑도 곧잘 한다. 10여 년 전, 그는 역전급식소에 갔다. 밥을 먹기 위해서 옥구에서부터 2-3시간 걸려서 걸어오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긴팔동지’는 냉면 그릇 가득 밥을 먹는, 자기 아들 또래의 아이를 봤다. 다섯 살짜리 애가 먹는 단 한 끼의 고봉밥은, 그의 가슴에 남았다.
주공 4차 아파트에 있는 나운종합사회복지관 경로식당도 급식소다. 밥을 먹기 위해서 몇 시간을 걸어오는 사람들은 없다. 거기에 오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주공 아파트에 살고 있다.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층은 밥을 먹을 수 있는 두레상 회원증이 나온다. 회원증이 없으면 1,500원을 내야 한다. 하루 400명씩 밥을 먹는다.
10월 11일 금요일 아침 9시 반. 줄이 길었다. 낮밥을 먹으려면 앞으로 2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일찍부터 거기 나와 있었는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 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김훈이 쓴 소설 ‘칼의 노래’가 언뜻 생각났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급식소 주방에서는 이미 끼니 준비가 한창이었다. 세아베스틸 직원들이었다. 곧이어 이들과 아는 사이인 듯한 ‘누나들’이 들이닥쳤다. ‘누나들’은 밤샘 근무를 하고 온 그이들에게 “어서 들어가서 한 숨이라도 자야지요”라고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누나들’은 전날도 군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밥을 대접해주었던 나운2동 부녀회다.
회원들이 두른 ‘비단구름2고을 나운2동 부녀회’가 박힌 주황색 앞치마는 양근옥 부녀회 회장님이 자비로 마련했다. 부녀회 ‘짱’을 맡고 있는 양근옥님은 새벽에는 ‘짜장면집’을 하는 딸과 사위네 채소 장을 봐다 준다. 낮에는 봉사활동, 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는 닭똥집으로 유명한 ‘신토불이’를 운영하면서도, “아이고, 되다”소리가 없다. 활력이 넘친다.
살림을 오래 한 엄마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는 밥’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엄마 뒷바라지를 귀찮아할 만큼 자랄 때쯤이면, 엄마들은 공허하다. 슬슬 몸도 아파온다. 밥 차리고 치우고 또 밥 차리고, 집안을 쓸고 닦는 일이 지겹다. 그런데 나운2동 부녀회 회원들은 시간을 거꾸로 돌렸나. “봉사 하루 전날부터 힘이 나”라고 한다.
음식 준비를 하는 그녀들의 대답은 모두 엇비슷했다. 밥하고, 감자 캐고, 김장하고, 독거노인과 일대일 결연활동도 고되지 않단다. 저기(급식소 의자)에 앉을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어서 좋단다. 그러니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짤순이’에다가 나물을 짤 때도, 볼 살이 출렁인다고 마구마구 웃었다. 데친 나물을 꺼낼 때, 훈짐이 확 덮쳐도 함께 ‘달겨들었다’.
닭도리탕은 눌지 않게 큰 주걱으로 계속 저어줘야 했다. 짤순이에서 꺼낸 취나물은 커다란 도마에 놓고,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양파와 당근을 썰었다. 모두 합쳐서 무쳤다. 김치콩나물국 간을 보고 난 다음에는 빠르게 주방 청소를 했다. 밥그릇과 컵은 뜨거운 물에 팔팔 끓이며 소독하고 있었다. 모두 오래도록 한 일이라 순서가 엇갈리며 우왕좌왕 하지 않았다.
급식소 문이 열리기 30분 전인 11시. 식당 안은 갑자기 프랑스식으로 변신했다. 봉사 나온 부녀회 회원들이 먼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뱃속이 든든해야지,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는다. 어르신들에게 밥을 드릴 때도 푸근하게 웃을 수 있다. 나도 그녀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내가 김치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뜨자마자 그녀들은 물었다.
“맛있지요? 맛있지?”
요리 잘 하는 사람의 특성이다. 우리 큰형님도 그런다. 나도 애 키우고 살림하는 아줌마. 음식에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지는 잘 안다. 그래서 “아직 씹지도 않았거든요?”라고 말대꾸 해본 적 없다. 그녀들의 자부심은 근거가 있었다. 밥도 반찬도 맛있었다. 먼저 먹은 회원들은 투명 마스크를 쓰고서 각자 배식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밥벌이하러 돌아왔다.
그 날 오후 5시, 그녀들은 다시 나운2동 예스트 쇼핑몰에 있었다. 강성옥 시의원이, 지역 상권을 살리는 방법 중 하나로 제안해서 하는 두 번째 패션쇼. 전날부터 부녀회 부회장 양현희님과 총무 강미순님은 들통 몇 개에 미리 국물을 만들어 놨다. 쇼핑 나온 사람들,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어묵 국물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차를 타고 나가야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잊고 살지만, 군산은 바다의 도시. 해 떨어지면 바람이 거칠다.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그녀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묵이 든 종이컵을 받아 든 사람들은 순식간에 뱃속까지 전해지는 뜨거움으로 기분이 좋아보였다. 집에 있는 살림살이까지 들고 나온 그녀들은, 3시간 만에 어묵이 떨어지자 홀가분해 보였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이다. 가정처럼, 모임도 사람이 모여 움직인다. 행복한 모임이 있고, 불행한 모임도 있겠지. 나운2동 부녀회 회원들은 봉사 다니는데 제각각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다. 특별하고 거창한 대답도 없었다. 봉사가 그저 재미있고 보람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게 바로 그녀들이 행복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