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저축이란 없다. 오늘 신나게 논 것은 쌓이지 않는다. 한 밤 자고 일어나면 자동으로 0이 된다. 부모들이 혼신의 연기력으로, “오늘은 피곤해. 좀 봐 줘라. 엄마 아빠도 쉬고 싶다고!” 애원해도, 먹히지 않는다. 그 쯤 되면, 아이들도 조르지 않는다. 그저 지시만 내릴 뿐이다.
“밖에 나가서 같이 놀아!”
다섯 살짜리 꽃차남이 있는 우리 식구도, 주말이면, 나가야 한다. 작년 여름에는 근대역사박물관과 은파 물빛다리 건너편에 자주 갔다. 그 두 곳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명소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만큼 고마운 곳이었다. 아이들을 끌어 다니는 마성의 바닥 분수가 있었다. 각각 인공 개울이 있고, 얕은 물놀이 장소가 있었다.
그러나 올 여름부터는 달라진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여기는 나운동 강성옥 시의원은, 6월 말, 옛날 KBS 방송국 자리에 진짜 물놀이장을 만들 거라고 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재미와 보람도 있지만, 고단함은 끝이 없다. 마치 ‘육아 실미도’에 갇힌 것 같은 엄마들 마음은 설레었다. 그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나였다.
기다림으로 6월이 지났다. 초조함과 실망으로 7월이 시작되었다. 물놀이장 예정지에 가 보면, 포클레인 한 대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장마가 지나고, 날씨가 속수무책으로 뜨거워졌다. 우리 식구는 시부모님 집에 갈 때도,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아직 생기지 않은 물놀이장을 기웃거렸다.
7월 10일이 넘어가자 ‘공구리’ 친 물놀이장 예정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공사장에서 희망을 봤지만, 우리 꽃차남 눈에는 에잇,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혀서, 작년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물빛다리와 근대역사박물관에 갔다. 짐을 가득 챙겨서 금강 하구에 있는 수영장도 다녀왔다.
8월 13일,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물놀이장 공사가 끝났다. 이틀 뒤인 광복절, 우리 식구도 출동하기로 한 날. 행동이 굼뜬 나대신, 남편이 빛의 속도로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를 챙기고, 짐을 꾸렸다. 집에서 9시쯤 출발, “이만하면 빨리 온 거야”라는 자만심은 뙇! 물놀이장에 도착한 순간 무너졌다. 아이들은 벌써 물속에서 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물놀이는, 돈을 내고 ‘입장’하는 곳에서 하는 것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냥 놀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대박 사건’이다. 신기하고, 신난다. 날마다 오는 애들이 있고, 온갖 장비를 갖추고 노는 애들도 있다. 주공 5차에서 혼자 걸어온 아이도 있고, 친구끼리 몰려 온 애들도 있었다. 지나가다가 들러서 입은 옷 그대로 노는 아이들까지.
올 해는 9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만 운영한다. 물놀이장을 관리하는 군산시 체육회 최생근님은 “군산시민, 완전 문화 시민입니다. 안으로 음식물 갖고 들어가지 말라니까 아무도 안 갖고 가요”라고 말했다. 물 받는데 3시간, 물 빼고 청소하는데 4시간이 걸리고, 하루 종일 물속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지만, 한 편으로 많이 뿌듯하다고 했다.
우리 식구는 내리 사흘을 물놀이장에 갔다. 첫 날에는 마치 큰 돈 들여서 워터파크에 온 것처럼, ‘죽도록 놀아보자’는 각오까지 했다. 낮에는 짜장면까지 시켜먹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냉면에 치킨, 피자 시켜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둘째 날에는 반나절만 놀고, 사흘째에야 동네 놀이터답게 신나게 한 판 놀고는 바로 짐을 쌌다.
아이들은 집 밖에서 더 많이 웃는다. 더 예뻐 보인다. 부모들도 덩달아 숨통이 트인다. 올 여름, 느닷없이 나타난 나운동 물놀이장은 그래서 더 보물 같다. 군산 시내에 이런 곳이 더 만들어진다면, 물놀이장도 그냥 평범한 놀이터가 될 터이다. 아마 그 때쯤에는, 동네에서 물놀이 하다가 짜장면 시켜 먹은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듣는 것처럼 시시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