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흥남초등학교를 끝으로 군산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시는 고병석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듯 백년의 계획을 하루하루 쌓아 온 많은 선생님들, 특히 오는 8월말이면 함께 퇴직하는 군산관내 13분의 교장선생님들과 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수년간 군산의 교육에 헌신 봉사하고 퇴임을 앞두고 많은 아쉬움이 있을 터, 그를 만나자 마자 퇴임 소감부터 물었다. “한마디로 쏜살 같이 지난 것 같습니다. 아련한 초임지의 추억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생생한데 벌써 하선 할 때가 되었나 싶어요. 우스갯소리로 난 아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유통기한이 꽤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떠난다니 지난 세월을 주마등처럼 반추해 보며 내 자신 못 다한 일 들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 때 꼭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르게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 아이를 좀 더 도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등등의 생각들 말입니다. 하지만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고 인생사 과정으로 다음 후배들이 더욱 잘 하시리라 믿고 응원해야죠.”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운다.
그는 어떤 계기로 교직에 지원하게 되었을까? 그가 어렸을 적 조모께서 늘 ‘넌 커서 선상이 될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왔다. 역할놀이도 늘 선생님 역을 해 왔는데, 그런 경험들이 피그말리온효과 (Pygmalion Effect)처럼 잠재되었던 게 아닐까. 그의 모친이 정성껏 지어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찾아 간 초임지는 임실 운암초등학교였다. 그때 첫 대면해 만났던 산골 아이들의 반짝반짝 하던 눈망울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다음날 합창곡 지도를 위해 밤늦게 한 오르간연습, 어린 학생들과 시냇가에서 피리를 잡아 매운탕 해 먹던 일, 운동회 때 마스게임 하며 남녀 손잡는데 나무젓가락으로 연결 하던 웃겼던 애들, 날마다 방과 후에 태권도 수련 하던 일,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 날 건너 동네 아이들을 업어 나르다가 물이 점점 차올라 무등 태워 개울 건너 데려다 주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죽을 뻔 했던 일 등등 그는 그 모든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출 발령으로 버스가 떠나려 하자 헐레벌떡 뛰어와 차창으로 건네준 보자기에 싼 홍시와 새벽부터 찐 떡, 그 홍시의 달콤함과 떡의 온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맛으로 남아있다.
그는 퇴임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군산흥남초등학교에서 모범적인 교육활동을 많이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중점적으로 진행한 교육 사업에 관해 물었다. “흥남초와는 어쩌면 필연적인 인연이랄까요? 제가 과거에 교감으로 2년간 재직했었는데, 교장으로 다시 돌아오고자 한 것은 지역 분위기가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교육열과 학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였어요. 교장부임 후 교육과정을 새롭게 정비하고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교직원, 학부모 연수를 통해 이해와 협조를 구함은 물론 ‘나 자신이 먼저 실천적 리더십’이란 자세로 구성원들과 손을 모아갔습니다. 그리고 좋은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인프라 구축을 위한 환경개선에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사(校舍)밖은 인접 중학교와 강당 공동사용을 위해 터져있었고, 그 길로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여 수업방해와 학생들의 생활안전을 위협 받고 있어서, 맨 처음 안전 강화학교 사업으로 외부인을 통제하여 학교생활에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주도록 하고 학교 주차장에 무분별하게 주차하던 주차질서를 바로 잡았습니다.
이어 ‘Wee-Class’(상담실)와 상담교사 확보로 학생생활 문제를 학교 내에서 직접 상당교사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U-Learning실’(미래학습실)을 구축하여 유비쿼터스에 이어 스마트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고도의 IT적응으로 미래사회 학습 방법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밖에 ‘보건실 현대화’, ‘첨단과학실 조성’, ‘놀이장 및 체육시설 정비’, ‘특수반 리모델링’, ‘엘리베이터 설치’ 등 눈에 띄는 모든 좋지 못한 환경을 오직 교육과 안전한 생활공간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운동장 잔디사업’을 따내 진행 중입니다. 쾌적한 교육환경조성사업은 재임 기간 내내 끝이 없었지만 하나하나 변화해 가는 공간을 활용하여 교육과정의 내용과 질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보람 있었던 사업으로 꼽는 건 올해까지 3년간 교육부로부터 공모 선정되어 운영한 ‘창의경영학교 사업’지원이다. 많은 예산을 받아 교육과정 운영에 아이들과 교직원들의 참여 폭을 확대하고 있다. 영어, 수학 수준별 수업과 맞춤형 방과 후 수업, 다양한 테마형 체험학습, 진로교육, 교직원 역량강화 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 사용에 대비한 ‘전 교실에 전자칠판과 부대시설’, ‘도서실 안방화’, ‘식생활관 개축’ 등 많은 과제들을 남기고 떠난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흥남초는 학교 내 사업 이외에 국제교류 사업으로 중국 단동지역 조선족학교와 자매결연 한 후 해마다 고구려 역사탐방,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백두산 탐방을 진행 했다. 군산과 중국 단동(丹東) 간의 우호협약을 위해 시당국과 동행하여 중국단동시를 방문하였고, 마침 흥남초가 ‘통일교육 시범학교’를 운영한 게 계기가 되어 국제 교류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 단동시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으며, 북한의 척박한 모습을 한 눈에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통일교육도 진취적으로 현장감이 있어야겠다 싶었고 또 중국을 알고 동북지역의 고구려 민족문화, 역사체험 기회를 갖고자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올해에도 계속되어 지난 7월 교직원과 학생 41명이 세 번째 중국을 방문하여 청나라 첫 수도인 심양,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금강대협곡, 아름다운 대련 성해광장과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조상들의 자취를 살펴보고 민족의 아픔을 느끼고 배우는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따뜻한 우정, 뜻 깊은 미래’를 주제로 단동 자매학교에서 합동수업과 공연 등에 참여하고 유람선을 타고 북한지역을 가까이 조망하며 북한모습 그리기, 사진촬영, 단교 와 조·중 우의교 관찰 등 압록강 캠프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북한문제 전문가인 요녕대학 교수를 초빙하여 특강을 들어 학습효과를 높이기도 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중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역사와 통일의식을 심어주며 진취적인 글로벌 마인드를 길러주고자 기획한 일이었다. 국제 교류 사업이야말로 학생들에게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며, 글로벌 시대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병석교장 선생님은 체육활동에서도 많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흥남초등학교에 어린이 배구단을 구성해 도내 각 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고, 어머니 배구단을 만들어 학부모 단합과 더불어 좋은 성적까지 거두고 있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 체격은 좋으나 체력이 약하고 끈기와 인내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어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인터넷과 스마트중독, 우울증 등 정신 건강상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회 병리현상으로 교육적 해법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 방법 중 하나로 욕구해소와 심신건강을 위하여 체육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학교는 교훈이 체(體)-굳세고 튼튼한 어린이, 덕(德)-참되며 아름다운 어린이,지(智)-슬기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순인데, 아침에 등교하면 전학생이 먼저 운동장 달리기를 하고서 교실에 들어가고 2학년 이상 전 학생이 스포츠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합니다. 육상은 물론 배구, 축구, 농구, 피구 등 5,6학년은 종목별로 거의 다 선수로 출전하여 매 주말 바쁘지요. 도와 시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여러 번 상위 입상을 했습니다.”라며 자랑한다.
“한 편 작년 우리학교 어머니 배구단은 창단 2년 만에 전라북도교육감기 우승을 일궈냈고, 교직원은 13학급의 작은 학교지만 군산시 교직원 부에서 작년에 이어 올 봄에도 또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우리학교가 바로 어머니, 학생, 교직원 삼위일체(Trinity)로 Triple Crown을 이뤄 매우 기쁘고 학교의 기운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응집력을 느꼈는데 이를 학교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관내체육계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선생님은 “저는 원래 행동적인 스타일이라 운동도 좋아했고 젊은 시절 아이들을 탁구, 육상, 역도, 핸드볼, 배구 등 지도를 많이 했지요. 그 중 배구와는 인연이 깊은데 과거 80년대 군산서초교에서 배구부를 창단 지도하여 많은 입상을 해오다가, 88년엔 전국대회 2관왕을 하여 한국 대표로 일본 원정 전승을 하고 왔으며, 한 때는 대한배구협회 심판원으로 활동 한 바도 있고 군산시 배구협회·연합회장을 맡아 봉사도 했지요. 현재는 한국초등학교 배구연맹과 지역협회의 자문위원으로 후배들을 돕고 있습니다.” 라며 묵묵한 길을 걸어온 선생님에게서 초연한 모습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교육, 체육관련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활동도 많이 하신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대외활동이 궁금해졌다. “사회나 조직에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학생 시절부터 남과 더불어 조직적으로 뭘 하게 되고 책임을 맡곤 했었지요. 교대 다니던 시절, 도내 군산지역 대학생 모임 행사를 대표자로 주관한 적이 있었지요. 시내 기업인들을 찾아가 지역의 젊은이들이 군산인으로서 애착을 갖도록 도와달라고 찾아 같더니 많이 도와주고 격려를 해 주시더군요. 800여 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치루니 돌아가신 고헌 교수님께서 ‘도대체 네가 교대생이 맞냐?’고 하시더군요. 모교인 군산중·고 총동창회 일에 차장서부터 부회장까지 10년간 주로 행사 기획·운영을 실무적으로 일해 보았고, 군산발전포럼 교육·사회분과 위원장을 맡아 시내 초·중학생을 선발 지원하여 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을 기획 운영을 하여 보람을 느꼈지요.
교원단체총연합회 시·도 임원과 중앙에 강사, 지방에선 JTV와 MBC시사토론 등 열정적으로 일해 본 추억이 있는데, 후배들이 챙겨줘 올 초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신년하례회 (세종문화회관)석상에서 ‘2012 자랑스런 교총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군산시체육회 이사로서 미래의 군산체육발전을 위해서는 학교체육 발전이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해양소년단 전북연맹 부연맹장을 맡아 군산이 해양 도시로서 우리 아이들이 해양체험을 위해 거들고 있고 배구관계 중앙과 지역의 자문위원으로 대회와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많은 활동을 하다 보면 술자리도 잦을 거라 생각된다. “이제껏 마신 술은 엄청나겠죠? 제 집사람은 제가 밖에서 하는 일에 대해 별로 간섭과 잔소리를 안 하였는데 한 번은 되게 취해 들어갔더니 ‘이렇게 마시면 몇 조금 못가 나중에 남이 즐겁게 마실 때 구경꾼이 되니, 평생 조금씩 나눠서 마시면 얼마나 좋으냐?’고 충고를 하더군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 말을 잘 안 듣고 방자했으니,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옛날 배구부 운영할 때 고창, 남원, 순창 등에서 어린 선수를 데려와 좁은 우리 집에서 숙식과 피복 등을 제공하고 선수단 고기 구워 먹이는 등 고생이 늘 적지 않았고 연년생 우리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내조를 미덕으로 삼고 불평 없던 마누라였는데, 이젠 미안하고 좀 무섭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고 이제 나이 들어 쌍둥이를 키우며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피곤하지만 지난 죄 사함을 위하여 틈나는 대로 청소나 애기들 대소변 받아내기를 합니다. 애기들이 오는 순간 우리 부부의 청춘은 끝이 났지만, 여자아이는 여성스럽고 남자아이는 남자답게 크는 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아기들과 놀고 안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집니다. 자고나 이른 아침부터 은파나 군산대 호수에 가자는 게 부담스럽지만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일에만 집중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남에게 서운함을 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고 그의 삶의 질곡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며 관련 책자나 자료를 탐독하곤 했습니다. 그 많은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인동초로 살아남아 늦게나마 집권하여 외환위기 극복, 정보강국, 남북문제 등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뤄 내셨습니까! 감히 저와 비유하여 얘기할 순 없지만 교육자 생활 속에 비슷한 어려움으로 맘고생도 꽤 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뭐 지난 이야기겠지만 혹 서운함이 있었다면 이참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교육 현장의 후배들에게 당부할 말씀, 그리고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입장에서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많은데, 교육자들은 항시 우리 뒤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천적 솔선수범하는 리더십과 미래를 위한 전문성을 길러야합니다. 순수와 열정으로 젊음을 불사를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 하는 노랫말 중에 ‘뜨거운 가슴으로 길을 나서도 막상 갈 곳이 없어요. 못다 준 사랑의 아쉬움이 가슴에 남아 있는데, 오직 그대 곁에 머물고 있는 사랑하는 내 마음’ 이란 가사처럼 퇴직한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퇴직 후 미래를 구체적으로 확정 짓지 못했는데, 큰 카테고리로 본다면 가치와 보람 있는 봉사적인 일을 하며 남은 열정을 일구고 싶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군산흥남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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