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30년,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낸 본 적이 없고 아직도 손을 맞잡고 잔다는 박복남(56), 최미남(51)부부, 둘 다 이름에 ‘남‘ 자가 들어 있어 ’남남커플’ 이라는 별칭도 얻은 이들의 남다른 부부애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 다는데 대체 남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토록 유별난 부부애를 보여주는 것일까.
맥군_ 우선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그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박_ 저는 원래 남원 아래쪽 곡성 태생인데 26살 무렵, 일 때문에 서울을 왕래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당시 스물 한 살이던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됐는데 제가 한눈에 반했지요.
최_ 사실 저는 처음엔 이 양반이 썩 눈에 차지는 않았어요. 키도 작고 얼굴에 털도 많고,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고요.
맥군_ 그런데도 결혼에 골인한걸 보면 남편께서 많은 공을 들이셨나 봐요.
박_ 그 무렵 한 해 사이로 제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뜨셨어요. 충격이 컸지요. 원래 성격도 내성적인데다가 저만 혼자 세상에 남겨진 듯 너무 외롭고 힘든 시기였는데 이 사람을 알게 되면서 이상하리만치 설렜고 위안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끈질기게 대시했지요.
최_ 만남이 거듭되면서 인간미와 진심이 드러나더라고요. 외로움도 안쓰러웠고요. 그러자 이 사람이 김제 만경의 제 본가에 찾아와서 결혼 승낙을 받고자 부모님을 만났는데 문전박대만 당하고 갔어요. 결국 거듭 방문하면서 선물 공세가 약발이 먹혔는지 끝내 승낙을 얻어내 교제 4개월 만에 결혼이 이뤄졌습니다.(웃음)
맥군_ 그럼 군산에선 언제부터 거주하셨나요.
박_ 결혼과 동시에 군산으로 와서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인쇄업을 하며 30년째 살고 있습니다. 당시는 가진 돈도 없고 인맥도 전혀 없어 남의 건물 한 귀퉁이를 세내어 조그마하게 인쇄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세하다보니 주로 큰 인쇄소의 하청 일이었지요.
최_ 그간의 고생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주변 돌아볼 새 없이 열심히 살다보니 일도 많아지고 해서 세 들었던 지금의 2층 건물을 몇 년 전 저희가 사들였어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아래층 전체를 인쇄소로 쓰고 있고 2층은 살림집입니다.
맥군_ 듣자니 두 분께선 한 시도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금슬이 좋다던데 사실인가요?
박_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인쇄소를 하려면 일손도 필요하고 그렇다고 사람을 쓸 수도 없는 형편이라 둘이서 매달리다보니 자연히 종일 같이 지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서로에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길을 걸을 때도 손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늘 상 붙어 있다 보니 남들 눈에 유별나게 보였겠지요.
최_ 저희는 지금도 하루 일을 끝내고 침실에 들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절의 추억과 결혼 과정의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몇 번이나 본 결혼식 녹화 비디오를 또 본다든가 하면서 밤을 새기도 해요. 아이 쑥스러워. (웃음)
맥군_ 아니, 30년이나 같이 살았으면서 아직도 그렇게 할 얘기가 많다니 어지간하십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한 번쯤 다투신 적이 있기는 하겠지요?
박_ 제가 생각하기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다툴 일 자체가 없으니까요.
최_ 다툼이라고 할 수는 없고요, 언젠가 한 번 이 양반과 일 때문에 의견 충돌을 겪은 경우는 있었지요. 일도 좋지만 건강 생각도 좀 하라고요. 그런 것 말고는 거짓말 같겠지만 달리 다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혼 당시 이 사람이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그때 가졌던 연민의 감정도 남아 있고 한눈 팔 새 없이 일에만 묻혀 살아 선지 항상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아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변치 않더라고요.
맥군_ 휴일이나 시간이 날 때는 여행이라든가 밖에서 데이트도 하십니까?
박_ 그러고 싶은데 워낙 일정이 빠듯해서 힘들어요. 해외여행은 해본 적도 없고 아직까진 별로 내키지 않는데 사실 제가 비행기 공포증이 있거든요. 국내 여행도 그간 워낙 일에 묻혀 살다보니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 앞으로는 그런 여유도 좀 가지고 살고 싶긴 해요. 그리고 제가 색소폰을 배운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주일엔 교회 성가대에서 1부, 2부 예배까지 마치고 저녁엔 제가 활동하고 있는 ‘우물가합주단’이나 ‘아리울밴드’연습실로 갑니다. 실력도 보충하고 때로는 단원들과 노인요양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봉사를 나가기도 하거든요.
최_ 색소폰을 배우도록 권유한 것도 저에요. 음악으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선데 사실 저희의 오늘이 있기까지 신앙이 큰 힘이 됐거든요. 그리고 만경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노환으로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데 매 주마다 남편과 시간을 내어 찾아뵙고 목욕도 시켜드리면서 보살펴드리고 옵니다. 이제는 아들, 딸이 다 커서 인쇄소 일도 척척 알아서 잘 돕기 때문에 밖에 나가 있어도 든든해요. 국내 여행은, 뭐 여행이랄 수도 없지만 아들애가 군 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했는데 면회 가느라 여섯 번인가 그 쪽으로 다닌 게 전부에요.
박_ 제가 양친을 일찍 잃어선지 장인, 장모님이 꼭 제 친부모님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위라기보다는 아들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들도 저를 아들로 대해주시는 게 너무 좋습니다.
최_ 저도 이 사람이 항상 고맙지요. 효심도 깊고 가정적이고 매사 반듯하고. 그런데 이 사람 별명이 뭔지 아세요? 교회에서나 친구들이나 하나같이 이 사람더러 범생이래요. 단 한치도 틀에서 벗어나거나 모습을 흩트리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이는 국보급 골동품이라 놀리기도 하는데 그분들 눈엔 답답한 구석으로 비치기도 하나 봐요. 그래도 정작 본인은 좋다는데 뭐라 하겠어요(웃음)
맥군_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이 댁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최_ 그 말이 맞나 봐요. 저희가 1남 1녀를 두었는데 자기들도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요. 항상 서로 아껴주고 챙기면서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나 봐요. 아들은 대학과 군대 다 마치고 현재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고 딸아이는 결혼해서 군산에서 살고 있는데 얼마 전 출산해서 7개월 된 손주가 있어요. 그런데 결혼한 딸아이도 저희 못지않게 얼마나 금슬이 좋은지 몰라요. 더구나 예쁜 손주까지 안겨줘서 요즘엔 손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답니다.
맥군_ 두 분의 취미나 사회활동은?
박_ 저는 4년 전 유명 연주자로부터 색소폰을 한 달 남짓 배우고 그 뒤로 혼자서 독학으로 익혔는데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군산에 색소폰 동아리가 무려 110개가 넘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동아리에 들어서 활동도 좀 했고 작년에 창단된 아리울빅밴드에 가입해서 단원들과 열심히 봉사도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요양병원에 가면 마치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몰라요. 끝나고 나올 때는 우시는 분도 있어 마음이 찡하기도 한데 저희들 연주가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최_ 저는 특별히 활동하는 것은 없고 장애인단체나 호스피스시설 등에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후원을 좀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아니나 이젠 살림도 안정이 됐고 심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나 남편 모두 가끔 친구들 만나 외식을 즐기기도 해요. 앞으로도 후원은 계속 할 거고 더 많은 곳을 돌아보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맥군_ 왜 두 분을 주위에서 잉꼬부부라 하는지 알 것 같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_ 저희들 얘기가 알려지게 된다니 좀 쑥스럽네요.
최_ 그러게요,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저희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매거진군산 열심히 구독할게요.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만일 있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일까. 어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열정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략 2년 반에서 3년 내외라고 한다. 그 후엔 남자와 여자를 벗어나 그저 한 인간으로 보게 된다 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끈에 묶여 살다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갈등이나 불화의 가장 큰 이유로 소통의 부재를 드는데 부부간 대화의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국의 부부들은 이로 인하여 때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박복남, 최미남, ‘남남커플’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현명한 지혜를 일찍 터득했던 듯하다. 어려웠을 때 서로에게 힘이 돼준 그 초심을 잃지 말자고 매일같이 다짐하며 사소한 것 하나라도 꺼리거나 숨김없이 모든 것을 대화로써 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그 방식이 자녀에게까지 이어져 그 집엔 언제나 단란하고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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