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별(一瞥)만으로 김금희(40) 그녀는 멋진 훈녀 풍의 용모다. 한국 여성으로서는 평균을 훌쩍 넘는 키 때문인지 스타일리시(Stylish)해 보이는 그녀가 판소리 명창이라니 마치 피아노에서 가야금 소리를 듣는 듯 한 신선한 의외감이랄까. 대개 빨라야 40대 이후에나 명창 반열에 들기 마련인 통념을 깨고 일찍이 스물 후반에 당대 최고의 수상 경력을 쌓고, 30대 들어 세계무대와 국내 무대 모두를 제패함으로서 분야의 일가를 이룬 그녀이기에 필자는 문득 재색(才色)겸비, 이 여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서흥남동에서 일녀일남의 장녀로 태어나 여섯 살 무렵 창성동으로 이사, 이후 결혼 때까지 거주하게 된다. 그녀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어느 날 부턴가 한 집에 같이 살던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에 있던 국악원에 드나들게 되는데 당시 우리의 춤과 가락에 있어 한량이라 불릴 정도로 풍류를 즐겼던 외할머니는 예쁜 외 손주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당시 국악원에는 성운선 명창을 비롯하여 후일 국립 창극단 단원이 된 당시 중학생 김학용 선생 등이 후학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한국무용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기초도 배우게 된다. 첫 스승인 성운선 선생으로부터 배운 춘향가 중 사랑가는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 어린 마음에도 꼭 자신이 춘향이가 된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예쁘장한 철부지 어린 소녀가 참새 같은 작은 입을 크게 벌리며 가르침을 곧잘 따르고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자 외할머니는 이러한 외 손주가 너무도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그녀는 소질도 타고나서 국악원의 재간둥이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채 나날이 밝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판소리에 매료되어 내 고장의 명인인 최란수 선생(전북 무형문화재 2호)으로부터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를 사사, 본격적으로 우리 소리에 정진하게 되는데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남원 춘향제 국악 부문에 출전했을 때는 경험이 없다보니 너무 긴장하여 박자를 놓쳐 탈락하는가 하면, 두 번째 대회에서는 흥보가 매 맞는 장면을 읊다가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역시 박자를 놓쳐 탈락하는 등 고배를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러한 실패의 경험들은 알게 모르게 더욱 그녀의 내면을 자극, 진일보를 이루는 소중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후 중학생 시절 광주 국악제 경연에 출전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 동아콩쿨에서 처음으로 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데 고 3 때는 교육부장관 상을 수상하고 국내 최초로 수궁가를 완창, 주목을 받는 등 일취월장을 보여주게 된다. 이렇듯 초, 중, 고 시절 여느 아이들과 달리 굳이 우리 것을 배우려하는 그녀를 기특히 여긴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남모르게 자긍심도 높아져가게 되는데 이 모두 외할머니를 이어 어머니의 적극적인 후원이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교 졸업 후 그녀는 8:1의 경쟁을 뚫고 서울예술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군산에서 가졌던 ‘흥보가’ 완창 발표회는 그녀의 삶을 바꾸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이 공연을 지켜본 원광대학교 국악과 교수님으로부터 원광대에서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추천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원광대를 졸업하고 평소 존경하던 안숙선 명창을 사사하면서 자질과 실력을 더욱 가다듬게 되거니와 대학에서의 이러한 학습 과정들은 이론적 토대 구축과 함께 그녀를 더욱 성장케 하는 촉매제로서 후일 인생의 큰 디딤돌로 작용하게 된다.
그녀는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의 나이 29세 때인 지난 2002년도 제 10회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인 대통령상 수상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가하면 2007년도, 우즈베키스탄에서 매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음악 축제(International Music Festival)에 제자들과 함께 참가하였는데 54개국이 출전한 이 대회는 각 나라 고유의 전통 음악 경연장으로서 우리민족의 음악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참가국 출전자들은 저마다 자기 민족 전통음악을 들고 나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이 무대에서 선보인 악기나 퍼포먼스, 음악들은 생김새만큼이나 모두 달랐고 개개의 특징적 요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순서가 되자 그녀는 무대에 올라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남도민요 새타령을 불렀다. 때론 애절하게 때론 신명나게 높고 낮은 음역 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 소리는 11개국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소리꾼 혼자서 모든 등장인물을 묘사함으로써 1인 오페라로 불리는 이 낯선 판소리는 민요와 함께 그들에게 분명 새롭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비쳐졌으리라. 그녀는 난생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당당히 1등의 영예를 안았다. 경험 삼아 참가한 대회에서 그것도 1등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쁘기도 했지만 눈물도 나왔다. 우리의 판소리가 세계를 압도하다니 그 감격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생각지도 않게 무려 7천 달라의 상금도 주어졌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문화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금 중 일부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결국 현지 아동병원에 쾌척함으로써 실력 못지않은 고운 심성으로 그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남겨주기도 했다.
각기 다른 문화와의 만남이 된 국제 대회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인종과 국적, 언어는 달라도 음악을 통하여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판소리가 지닌 신비감과 독창적 요소는 세계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절대적 장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외래 음악에 밀려 국악의 설 자리가 상대적으로 좁아진 세태에서 우리 것을 더욱 갈고 닦아 보란 듯이 만방에 빛을 발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이 길을 택하여 지금껏 그랬듯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길을 갈 것이기에 그만큼 사명감도 충만해져 갔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국내외 공연에서 수상 경력을 쌓고, 자, 타 주관 공연을 통하여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입지를 다지게 되는데 이제는 우리 한국음악이 세계 그 어떤 음악 못지않은 고고함과 멋스러움이 증명되면서 그 저변도 나날이 확대되고 있어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판소리가 이제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당당히 인정받음으로써 드디어 지난 2003년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우리 문화의 유일무이성이 세계에 입증된 것으로 남의 것을 아무리 잘해봐야 흉내에 불과한 아류(亞流)일뿐, 올곧은 주체성으로 내 것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주인으로서의 도리요, 남으로부터도 인정받는 것이라는 것도 절감하게 되었다. 그녀의 경험에서 터득한 이러한 철학과 소신은 국악에 대한 정체성을 새롭게 일깨우고 우리민족의 자산으로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 할 책무 또한 자신들의 몫으로 다짐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맥을 이을 후학을 양성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당대 최고의 명창들을 사사하면서 스스로 스승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지도를 받고 있는 최란수 스승의 대를 이을 유일한 제자임을 자임하면서 자신이 받은 이 복을 후학에게 쏟고자 열정을 다 할 생각이다. 대학원에서 국악학 박사과정도 마쳤고 실력이나 경력으로야 이미 명창 반열에 섰지만 아직 스승이 건재하신 마당에 명창이라는 호칭은 가당치도 않다면서 손사래를 칠 정도로 겸양을 보여주기도 하는 그녀는 현재 군산 중앙초교 앞에 ‘소담 김금희 한국음악예술원’을 열어 제자들을 지도하는 한편 원광대 및 대학원의 국악과 초빙교수로써 15명의 전공자를 양성하는 등 국악의 발전과 저변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군산대 음대의 출강과 함께 전국 각지 초청공연, 그리고 창작 오페라 기획 등을 구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로필 발췌>
서울예술대학 및 원광대학교 국악과 졸업
원광대학원 국악학 박사과정 수료
성운선 명인, 이일주 명인, 최란수 명인, 성우향 명인, 안숙선 명인, 한승석 교수 등 사사
서울 동아콩쿨 판소리부문 동상(1992)
제2회 판소리명창 경연대회 최우수상(1995)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2002)
우즈베키스탄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1등 수상(2007)
<주요공연>
전통문화센터 해설 있는 판소리 ‘수궁가’
전라예술제 개막공연
창작오페라 ‘논개’ 도창(서울 성남 오페라극장)
부산 청운회 KBS 초청공연
전주 세계소리축제 개막 오페라 ‘흥보와 놀보’ 도창(삼성문화회관)
한국오페라 60주년 기념콘서트(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원음국악관현악단 협연(서울국립국악원)
이태리 오페라와 소리의 만남
모스크바 한민족 대축제 초청공연
김금희 흥보가 완창 발표회(서울국립국악원)
오페라페스티발 창작오페라 ‘논개’ 도창(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소리 속을 거닐다 ‘김금희 명창과 함께 하는 수궁가’ (솜리문화예술회관)
한국국악관현악단 정기공연 협연(서울국립국악원)
소담 김금희 한국음악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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