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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유행하던 '클럽', 이랬구나!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3.01 16:21:0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최근 며칠 동안 장롱에서 잠자던 형님 앨범을 정리했다.  작년 가을 조카들이 "올해 칠순을 맞이하는 아버님(형님) 생일에 사촌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형제들이 함께 감상할 '추억의 영상'도 만들려고 한다"며 부탁을 해왔던 것. 

세월의 나이만큼이나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에는 형님 추억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코흘리개 시절까지 그대로 복사되어 감명을 주었다.  사진 선별작업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즐기면서 옛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1950~60년대 시대상 반영하는 중학생들 옷차림

스캔해서 보관하고 있던 파일까지 합해서 형님이 들어간 사진은 모두 300매 남짓.  그중 150매를 골랐다.  "핫따, 징그랍게 많이도 찍었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장 오래된 사진은 군산 남중학교 2학년 때 셋째 누님과 찍은 사진으로 온갖 상
념에 젖어들게 했다.  남매가 다정하게 앉아 찍은 사진을 애틋한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 형님의 코흘리개 시절 사진이 없어서 아쉬웠다.  뒷면에 적힌 서툰 필체의 메모 '4290年 5月 20日(월)'은 사진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단기 4290년은 서기 1957년으로 손을 꼽아보니 55년 전 사진이었다.

 

철부지 티가 가시지 않은 중학생 형은 칠순을 맞았고, 귀여운 꾸냥(姑娘)처럼 머리를 양쪽으로 따내린 열다섯 살 누님은 걸음걸이조차 뒤뚱거리는 일흔두 살의 할머니가 되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른 세월에 놀라면서도 밉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  교복 새끼호주머니에 꼽힌 만년필도 눈길을 끌었다.  뚜껑만 꼽고 다니는 학생이 많을 정도로 만년필이 귀하던 시절.  중학교 입학 선물로 큰 누님이 골목 모퉁이 가게에서 '파카 만년필'을 사주었는데, 부러움과 함께 '나도 훗날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던 그때가 새롭다.

 

형님이 중학교에 진학하던 해(1956)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3년밖에 안 되어 점심을 거르는 학생이 태반일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특히 빈민촌이었던 고향 동네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어쩌다 눈에 띌 정도로 진학률이 낮았다.  누님들은 대낮에도 골목 밖으로 외출이 조심스러웠고, 해가 저물면 아예 금지되던 세상을 살아왔다.  그러한 누님들에게 자랑스러운 동생과 사진관으로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은 대단한 행사였고 뿌듯한 해방감도 느꼈을 것이란 생각에 짠한 마음이 앞섰다.

 

형님은 "어느 날 저녁밥을 먹고 방에 있는데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친 누님이 부르더니 '우리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며 회상에 잠겼다. 7남매 중 처음으로 중학교 모자를 쓴 형님은 누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으니 못 잊을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중학생 형은 누님들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이었고, 나에게는 우상이었다. 형의 영어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정(抒情)이 물씬 풍기는 <데니 보이(아 목동아)> <스와니 강의 노래><메기의 추억> 등 서양 민요를 유창하게 부르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는지 모른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각종 클럽'이 유행하던 시절

1950~60년대 시대상이 엿보이는 사진도 발견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56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는 급우(고순남)와 3학년 여름방학 때 찍은 사진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는 고순남 학생의 하얀 티셔츠와 손목시계는 그가 부잣집 아들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고순남 학생이 허리에 두른 군용벨트는 혼란스러웠던 자유당 시절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치깡패의 등장은 학생들 세계에도 백골클럽, 라이온클럽 등 수많은 클럽을 탄생시켰기 때문.  형님과 고순남 학생은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의미의 '썬 라이스(sun rise)' 클럽 주인공으로 급우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놋쇠로 만든 톱니로 양쪽 끝을 고정하는 군용벨트는 1950~60년대 중고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허리에 차고 있다가 풀어서 휘두르면 기선을 제압하는 무기가 되었고, 호신용으로도 그만이었기 때문.  군용벨트는 보기에도 위협적이어서 허리에 차고 다니면 함부로 시비를 걸지 못했다.  군용벨트는 사춘기 학생이면 누구나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착용하다가 훈육주임에게 들키면 불량학생으로 몰려 엄한 기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밤길에 깡패와 도둑이 염려된다며 아들을 '양키시장'으로 데리고 가서 구입해주는 학부모도 더러 있었다.  사진 뒷면에 쓴 '단기 4291년 7월 15일(화) 영화기념'은 시간여행 시간표처럼 느껴졌다.  딱지도 100장씩 묶어놓을 정도로 꼼꼼했던 형님은 사진마다 단기로 표기했고, 태어난 해도 단기(4276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단기(檀紀)를 사용하던 시절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급우들과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어른들 사이에 '세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가운데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다'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혼을 빼 간다더라, 여럿이 찍는 사진보다 '독사진'이 더 비싼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사진 속 학생들이 부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보인다.  영문타이핑 'My Dear Friends'는 그들의 우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형님(맨 오른쪽)은 "사진사 요청으로 환하게 웃고 찍었다가 오른쪽 덧니가 드러나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며 "이후에는 입을 꼭 다물고 찍는 버릇이 생겼다"면서 허허롭게 웃었다. 

 

부모가 군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군 전용 클럽을 운영해서 용돈이 풍족했던 고순남 학생(맨 왼쪽)은 항상 빈털터리였던 형님에게 무척 잘했다고 한다.  극장 입장료는 물론 사진촬영 비용도 내주었단다.  형님은 "참 고마운 친구였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어 2~3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한다"며 깊은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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