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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잡지 <매거진군산>은 심심풀이 땅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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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16:38:5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불 꺼진 항구에서 풍(豊)·화(和)·격(格)을 갖춘 명품도시로 거듭나는 군산.  그 군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인물 전문잡지 <매거진군산>도 명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 방송사들의 출연제의가 좋은 예이다.  급기야 지난 11월 30일(금)에는 KBS 전주방송의 인기프로 아침마당(오전 8시 30분)에 초대되었다.  이진우 대표, 진정석 편집인, 박유경 편집장, 오성렬 자유기고가, 조종안 시민기자가 출연하여 나눈 대화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박희태: 이제 2012년도 한 달 남았네요. 이맘때쯤이면 ‘과연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나’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나 이렇게 잘 살았어’하고 커버스토리로 내세울 게 있다면 무엇일지?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자신만의 커버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분들이 있다고 하네요.

 

김태은: 네, 인물전문 잡지 <매거진군산>을 만드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2012년 커버스토리는 무엇인지요? 

 

조종안: 저의 2012년 커버스토리는 ‘결혼 30주년 기념여행‘이 되겠네요.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여서 아내와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기록하는 마음으로 여행기를 쓰고 싶습니다. 이진우 대표가 허락한다면 <매거진군산>에 연재하고 싶은데.

 

박희태: 듣자하니, <매거진군산>이 인물잡지라고 하는데요, 얼마나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기에 그런 별칭이 붙었어요?

 

이진우: 그러게요. 2011년 4월 창간했고, 지금까지 기사화 한 사람이 200명 정도 되는데요. 옆집 아저씨가 표지모델이 되고, 앞집 누나가 잡지에 나오고,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더 갖는 것 같아요.

 

이종기: 그렇다면, 잡지에서 다루는 분들은 꼭 군산에 사는 분들인가요?

 

오성렬: 군산은 인구만 해도 27만이에요.  바꿔 말하면 27만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이 있다는 얘기인데요, 기구한 인생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한 분은 시내 조그만 골목의 도장포 아저씨(75세)로 컴퓨터 도장에 밀려 일이 없으니까 상가의 폐지를 줍는 일을 하는데, 건강하고 밝아 보였어요.  또 한 분은 승복 입은 목사님인데요, 조그만 찻집을 운영하면서, 원서로 된 책들을 읽은 모습, 특히 승복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유민경: 아무래도 포토그래퍼니, 인물 좋은 분들이 가장 인상에 남지 않을까요?

 

진정석: 인물 좋다고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고요.  인상 좋은 분들이 기억에 남지요.  저는 주로 표지인물들이 기억에 남는데요, 소설가 라대곤(1월호), ‘사랑海 황금박대’ 박금옥 대표(9월호), 추억의 감독 윤귀섭 할아버지 등등 기억이 남네요.

김태은: 사실, <매거진군산>이 뭐야? 하는 분들이 계실 건데. 얼마 안 있으면 창간 2년이 된다고요?

 

박유경: 네, 올 11월호까지 하면, 20권이 되네요, 2013년 4월이면 창간 2주년이고요.  현재 20여 명의 필진이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사실 스마트한 시대에 잡지라는 것이 한물간 매체라는 인식이 있는데요, 잡지는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손으로 종이를 만지는 질감으로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질 좋은 종이에 더 좋은 디자인을 하고, 군산의 모든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담으려고 노력하지요.

 

박희태: 우리 지역에서 이 잡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아도, 잡지협회에서는 주목했다고?

 

진정석: 지난 6월 잡지협회에서 지역잡지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했는데요, 전국 지역잡지사 100여 개 중 6개가 선정돼서, 제가 참석했지요.  다들 경영난을 호소하더군요.  저희도 어렵지만 20여 시민이 하나로 뭉쳐 무료배포 잡지를 만든 다니까 주목하더군요.  지역잡지의 롤 모델로 삼고 싶다는 분도 계셨어요.

 

김태은: 조금 전에도 말씀하셨지만, <매거진군산>의 모든 필진. 그리고 편집장이나, 발행인들이 각자의 일을 가지고 계신다면서요?

 

이진우: 저는 그래픽, 산업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유경씨는 회사의 디자이너고요.  진정석씨는 1인 무역회사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종안님은 인터넷 신문·뉴스 등에서 활동 중이고, 오성렬님은 퇴직하시고, 우리 잡지에 올인하고 계시고, 나머지 필진은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박희태: 아이템을 고르는 것은 결국 필진인데. 기준이 있습니까?

 

오성렬: 취재원 본인의 부탁이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분, 소개하는 분도 대상이 됩니다.  광고성이 다분한 분은 사절하죠.  한 예로 아는 분이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극구 자기업소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별 내용이 없어, 정중히 사절했습니다.

 

유민경: 정말 취재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취재원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조종안: 저는 10대 여중생에서 96세 노인까지 취재했는데요, 가끔 사양도 하지만, 설득하면 대부분 협조해줍니다.  10대, 20대들이 저를 믿고 인터뷰에 응해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기억하는 취재원은 전직 대통령인데요, 1박2일 동행취재를 했어요.  참 인상적이었죠.  취재한 소규모 식당이 대박을 내서 흡족한때도 있었습니다.

 

김태은: 많은 분들이 아이템별로 나눠서 기사를 쓸 텐데, 기사 선정은 어떻게 하는지요?

 

이진우: 자신이 취재할 대상을 정하고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필진과 편집진이 매월 초에 합평회를 곁들인 편집회의를 합니다. 그때 아이템들을 정하고요. 필진이 기사를 작성해서 보내주시면, 최종 편집을 거쳐 인쇄에 들어가지요.

 

유민경: 디자이너 수준을 보고자 아침마당 전북 12월호를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과연 어떤 게 실렸나?  헤드라인만 보고도 그 내용을 알 수 있어요~  김태은의 겨울 다이어트 비법이 있고요.  인생극장, 박희태의 끝까지 발레리노이고 싶다.  잡지에는 꼭 충격고백이 있기 마련인데.  이종기 충격고백~ 내 꿈은 변호사가 아닌 코미디언이었다.  그리고 말례처럼 뽀샤시 피부 가꾸는 법이 앞으로 이 책에 실리예정이라네요~

 

김태은: 군산의 음식·역사·사람 등이 함축된 맥군 정의를 내려 봤는데요, 맥군은 땅콩이다?

 

조종안: 아~네.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이지요.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땅콩처럼 때가되면 부담 없이 찾는 잡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맛도 고소하고 몸과 정신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잔뜩 들어있고요.

 

김태은: 두 번째 맥군은 연(鳶)이다?

 

오성렬: 연은 달리면서 띄우는데, 처음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많지만 지금 <매거진군산>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솟구쳐서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있습니다.  연을 떠받치고 있는 바람은 <매거진군산>을 사랑하는 독자겠지요.

 

김태은: 세 번째 맥군은 인생이다?

 

이진우: 매거진 군산에 우리의 인생, 군산의 삶이 담겨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군산의 야구, 서양 의료사, 언론의 발자취, 철도 100년사 등이 담길 텐데요.  그런 면에서 맥군을 인생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태은: 군산의 온갖 재미가 담긴 사랑방이 되기를 바라고요.  예전에는 잡지 읽으면 엄마한테 혼났는데 요즘에는 읽을 만한 잡지가 없는 세상이 됐지요.  모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잡지가 생긴 것 같아 훈훈합니다.  오늘말씀 감사합니다. 

 

 

인연... 글 / 진경은 /  한국방송작가협회회원. 현재 KBS전주 아침마당전북 집필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나는 아사코와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 피천득)

 

나와 군산과의 인연은 세 번의 연결고리가 있다.  첫 번째는 1993년 겨울. 다니던 대학을 휴학 하고 20대의 청춘을 방황할 때였다.  누군들 죽을 만큼 가슴 치던 20대가 없으랴마는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에서 여러 번 자괴감을 맛본 내게 있어 20대는 청소년기에도 느끼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그때 눈을 들어 바라본 곳이 바로 군산.  대학선배의 고향이었던 고로 가끔, 아주 가끔 좋은 술과 안주를 맛보러 가던 곳이었다. 

 

희한하게도 전라북도의 다른 고장 하고 다른 매무새와 냄새를 지니고 있는 곳, 군산은 새벽부터 바닷일에 나서는 사람들의 질퍽한 이야기와 투박한 아줌씨들의 정이 묻어나오는 데 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서민들의 노동과는 어울리지 않은 휘황찬란한 밤 문화가 발달한곳이었다.  낮과 밤이 다른 군산이 한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열대자라는 평야 한가운데 덩그러니 조성된 아메리칸 타운이라니... 낮에는 고요하고, 밤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1993년의 아메리칸 타운은 이태원, 또는 송탄이나 평택과는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20대의 내가 아메리칸 타운에 갑작스레 주목한 이유.. 사실 속내는 늘 되고 싶었던 소설가의 꿈을 AT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이루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 달에 월세 15만원을 주고 덜컥 아메리칸 타운 밖 허름한 집에 세를 들었다.  그리곤 바로 아메리칸 타운 내 작은 선술집에 일당 5천원의 점원으로 들어갔는데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집은 아메리칸 타운 영업이 끝난 후 술이 아쉬운 미군이나 아가씨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다 가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바로 그 사랑방 같은 곳에서 나는 수많은 마이클과 데이비드, 그리고 낮에는 혜자, 영자로 불리는 아줌마지만, 밤에는 사이키 불빛아래서 엘리자, 써니로 불리는 언니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언니들이 데이비드들의 손을 잡고 해맑은 웃음으로 미국에 들어가는 것도 보았고, 1년 전에 미국에 들어간 또 하나의 써니는 매를 맞다 못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송탄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 사랑방에서 전해 들었다. 밤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화려한 불빛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그녀들이, 낮에는 전기세 10원이라도 아끼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담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내 모습이 부끄럽게 만 느껴졌다.  

 

남들이 얕보듯 말하는 미군기지 여성들의 삶이 그렇게 쉽게 보아서 넘길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 6개월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군산과의 첫 번째 인연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군산과의 두 번째 인연은 1996년 방송으로 이어졌다.  방송작가가 되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통해 군산과 만났는데, 도깨비처럼 생겨났다 도깨비처럼 사라지는 군산 새벽시장부터, 하굿둑의 철새들, 왠지 걷다보면 눈물겨운 명산동 길거리, 그리고 골목마다 숨겨진 군산의 맛 등 방송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인연들이 나에게 먹는 즐거움과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남았다.  

 

특히 군산의 먹을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신기하고도 희한한 미각의 추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겨우 한사람이나 들어갈까 싶은 영화동시장 골목의 빨간 잡채, 지금은 사라진 영화 바비큐. 눈 오는 겨울밤 물어물어 찾아갔던 하제포구 포장마차의 꽃게무침. 아.. 꼬릿한 냄새 저편으로 스멀스멀 고소함이 번지는 연탄곱창구이와 닭발 양념무침.  그리고 해망동 선창가 어느 집에나 들러 백반을 청하면, 줄줄이 나오는 생선잡탕에 갈치 속 젓갈과 풀치절임.  이렇게  군산과의 두 번째 인연은 그리움의 맛으로 자리하고 있다.  맛이나 문화프로그램을 떠나 이제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에 매진한지 5년째...

 

2012년, 군산이 나에게 세 번째 인연으로 다가왔다.  옆자리 작가후배가 한번 보라고 건네준 잡지를 처음 읽은 순간, 나는 잊혀졌던 1993년의 풍경이.. 그리고 치열하게 방송꺼리를 찾아내기 위해 발로 뛰었던 1996년의 내 청춘이 살아 나오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기사 하나하나마다 군산에 관한 정서가 묻어났고, 군산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들의 애정이 조목조목 묻어났다.  그래, 이렇게 변했구나. 내가 갔던 그곳, 아직도 여전하구나.  군산의 내가 기억하는 풍경들을 있는 그대로 엮어내는 사람들이 있다니.. 만나보지 않았어도 그들을 보면 분명 반가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섯 달을 지나 방송을 통해 ‘매거진 군산’사람들을 만났다.  군산사람에 대한 애정, 군산문화에 대한 긍정. 군산 맛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천생 군산 사람들.  이 사람들만 있다면, 나같이 군산을 아쉬움에 그리움에 묻어놓은 사람들을 다시금 군산으로 불러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군산을 문화중심지로 이끌어내는데 ‘매거진군산’의 역할이 클 것이라는 마음까지..  

 

이제 2년을 향해가는 즈음, 다시 시작이라는 패러다임을 매거진 군산이 아로 새겼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매거진군산’이, 나와 군산을 이어주었듯 많은 사람들에게 군산의 넉넉함과 정을 배달하는 집배원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워하는데도 못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군산과 세 번의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을 맺어준 매거진군산이 있어 세 번째 만남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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