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구암동, 가난했던 집안의 자그마한 소년에서 대한민국 경제부처의 요직을 거쳐 최고의 수장에 오르고 정계에 입문해서는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입지전적인 인물로 한 세대를 풍미한 강봉균, 그가 이제는 군산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우리 곁에 돌아 왔다. 아직도 주변 사람들은 그를 장관님이라 부를 정도로 경제통으로서의 그의 이미지는 뚜렷하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날, 경제 관료로서, 정치인으로서 경험하고 느꼈을 숨은 얘기들을 들어보기 위해 군산대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그를 매거진군산이 만나보았다.
맥군_ 이제 정치를 떠나셨는데 근황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군산대 총동창회장인데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서 경제와 정치 문제 관련하여 군산대에서 석좌교수로 한 달에 두 번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는 학년 제한을 두지 않고 강당에서 오픈강좌 형식으로 하고 있고요.
맥군_ 경제포럼을 만들어 대표직을 맡고 계신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계를 은퇴하고 정치 중립적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새 정부가 들어 설 텐데 경제 문제가 제일 큰 걱정입니다. 지금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선심성 복지 공약들을 앞 다퉈 내놓고 있는데 그러한 공약들이 결과적으로 국가 재정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래서 국가 재정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경제부처 부총리 급 및 장차관급 50여명, 한국재정학회 교수들 60여명, 그리고 언론계에서 경제부처를 출입하던 기자들까지 해서 총 120명이 발기인이 되어 ‘건전재정포럼’을 발족하여 제가 대표직을 맡고 있는데 지금까지 4차례 공개 토론회를 가졌고 국민에게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메시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맥군_ 그러니까 ‘건전재정포럼’의 발족 취지는 국가 경제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되겠군요.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재정이 튼튼해야 되는데 알려지다시피 재정이 망가져서 경제가 어려워진 나라가 속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일본을 예로 들더라도 1990년대부터 재정 적자가 누적되어 경제 성장이 중지되고 세계에서 국가 부채가 제일 많은 나라로 전락하여 그들 스스로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잖아요. 최근엔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는 걷는 세금보다 지출이 많은 것이 재정 파탄의 요인인 것입니다. 결국 빚을 내기 위해서는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경제가 취약하다보니 국채가 안 팔려 국가부도 위기를 맞는 것이지요. 미국도 ‘재정절벽’이라 해서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자 강제로 법제화하여 1년에 천억 달라 씩 적자를 줄이고자 허리띠를 졸라 매야 될 판입니다. 이에서 보듯 재정 운용의 잘못으로 국가가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국가의 잘못을 거울삼아 건전재정 성을 지키자 하는 캠페인도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맥군_ 저는 경제는 문외한입니다만 그리스 사태를 예로 들면 독일이 EU에서 앞장서서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나라 입장에서는 그리스가 부도나면 채권을 회수할 길이 없기 때문에 회생을 도우려 하는 것이겠군요.
그 정도면 문외한도 아닌데요 뭐(웃음), 한마디로 독일 입장에서는 그리스에게 살림을 제대로 좀 해라, 세금을 더 걷든지 복지 지출을 줄이든지 해라 그런 얘긴데 그리스 경우에는 지출을 줄이려고 하면 공무원부터 온갖 노조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데모를 하기 때문에 나라살림을 알뜰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하도록 압박도 하는 상황인데 독일 입장에서는 탈퇴시키지 않고 어떻게든 끌고 가 회생을 도우려는 것입니다.
맥군_ 이야기를 잠깐 바꿔 행정고시를 통해 관료의 길로 접어 드셨는데 학창 시절부터 그러한 꿈을 키우셨던 것인지요.
제가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창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잠깐 하다가 뜻한 바 있어 다시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는데 그 해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 명분은 나라를 빈곤에서 구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쿠데타 주역인 박정희 장군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약 3년간 했던 점은 저와 비슷한 전력이기도 하지요. 제가 상과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너무도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나도 나라를 가난으로부터 구제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를 공부해야겠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저는 쿠데타를 할 수는 없지 않아요?(웃음) 그래서 대학을 갔던 것입니다.
맥군_ 경제부처에서 부총리 급 장관까지 오르시는 등 우리나라 경제통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계시기도 한데 관료로 계시는 동안 보람을 느끼신 적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성공한 나라로 대내외적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7차 5개년 계획까지 진행되는 동안 제가 3차 때부터 7차 때까지 그 프로젝트의 주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을 배우러 오기도 했는데 그때 마다 꼭 저를 찾아왔었지요. 그리고 장관급이 돼서는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졌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저를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나라의 위기 상황을 맞아 여러 사람이 당신을 추천하니 국가를 위해 나를 도와 달라’는 말씀이 있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약 1년 6개월 동안 IMF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두고두고 큰 보람으로 남고 있습니다.
맥군_ 그러다가 갑자기 정계에 입문하셨는데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요?
-저는 정계 진출의 꿈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2000년도 총선 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출마를 간곡히 권유해왔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제일 어려운 지역이 어디냐 했더니 경기도 분당이라고 하더라고요. 분당은 잘 아시다시피 보수 성향이 굉장히 두드러진 도시잖아요. 당시 한라당의 K후보와 맞붙었는데 역시나 고배를 들고 말았습니다. 이후 군산에서 강현욱 선배께서 도지사 출마를 하는 바람에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제가 지금까지 관료로서는 많은 일을 했지만 정작 고향을 위해서는 별로 일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고향을 위해 봉사를 하고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고 당선이 되었는데 그 길로 3선까지 하게 됐습니다.
맥군_ 3선 의원을 하신 소회는?
제가 국회위원을 하는 동안 공단에 기업도 많이 들어차고 새만금 개발도 가시적 성과를 이뤄 냈는데 다만 싸움질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책 경쟁을 하는 정치로 중앙 정치를 바꿔보고자 했으나 역부족을 절감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맥군_ 지난번 총선에서 출마를 접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설에는 제가 젊은 신인과 경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접은 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런 건 전혀 아니고 당시 민주당의 한명숙대표가 국민 경선 약속을 철석같이 해 놓고 뒤에 깨지 않았습니까. 저는 당의 약속을 믿고 경선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가 아예 경선도 못하게 상황이 바뀐 것에 비애를 느꼈고 이참에 정계를 은퇴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맥군_ 정치인으로서의 강봉균 전 의원님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도 있는데요.
저는 정치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제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역 유권자를 찾아다니며 향응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표를 구걸하는 행동을 워낙이 못하는 체질로 친근감이 적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도 보편적으로 한국의 기성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소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맥군_ 만일 다시 한 번 더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글쎄요, 저는 행정부에서 대통령한테 임명장을 받는 장차관만 일곱 번을 했고 국가 발전을 위해 일도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고향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헌신했기에 이제 더 이상 공직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정계도 은퇴했고, 나라 걱정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아니므로 우리가 가진 경험을 후배들한테 잘 전수해서 국가 발전에 힘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맥군_ 혹시 고향에 내려와 정착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요새 어디 사람이 한 곳에서만 정착해서 살 수 있나요. 고향이 군산이니 군산대에 내려와 강의도 하는 것이고 분당에서 2,000년도에 출마했던 인연으로 12년째 살고 있는데 제가 활동하는 범위가 꼭 일정 지역에 한정된 것은 아니어서 어디서 사는가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며 그래도 마음은 항상 군산에 있습니다.
맥군_ 가족 관계와 취미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처와 일남일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딸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겸 공인회계사인데 현재는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정이 없는 날엔 지인들과 바둑을 두기도 하고 가끔 골프도 즐기고 있습니다.
맥군_ 창간 2주년이 되어가는 매거진군산에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은?
좋은 분들이 사심 없이 만드는 잡지로 알고 있는데 아무쪼록 지역의 스토리를 잘 엮어내는 멋진 잡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거진군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제는 정계를 은퇴한 그지만 행정부처의 경제 전문 관료로서 한 때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했을 만큼 큰 발전의 족적을 남긴 것은 그 개인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그를 배출한 우리 고장의 자긍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제는 국정의 주관자 입장에서 한발 비껴난 아웃사이더로서 ‘건전재정포럼’을 만들어 그간의 지식과 경륜을 통하여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또 다른 역할을 모색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만큼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마음이 큰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또한 군산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든든한 그의 열정에 힘입어 우리나라 경제가 건강한 체질을 갖추고 발전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같은 바람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