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득이 늘고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 모든 분야에서 점차 사람들의 개성이 발휘되고 존중받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옷은 의식주(衣食住)의 맨 첫 번째를 이를 정도로 필요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어떤 특정 메이커의 제품이 유행을 타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좇는 분별없는 과시욕으로 어딜 가나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남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어 이는 우리 사회도 점차 몰 개성한 획일화에서 벗어나 자아를 중시하는 세태로 변해가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경제나 문화의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두드러진 사회 현상으로서 우리나라도 시나브로 그 대열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케 해 준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변신하고 싶다 해도 그 분야 전문가의 조력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 일터. 그런 점에서 옷 수선 경력 17년의 김복례(48)씨는 고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산북동 주공아파트 정문 건너편 골목 안에서 ‘멋쟁이 옷수선’ 집을 열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는 필자가 방문했던 날도 미싱 앞에 앉아 일의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언제 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표정의 그녀는 그래선지 만나는 사람에게도 편안함과 기분 좋은 인상을 준다.
맥군_ 원래 고향이 군산인가요?
해망동에서 나서 자란 군산 토박이입니다.
맥군_ 지금의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어려서부터 이상하리만치 옷에 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무렵부터 집에 있는 미싱으로 취미삼아 이런 저런 옷들을 만들어보곤 했는데 주위에서 칭찬이 많았던 걸로 보아 소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나 친구들 옷도 재미삼아 많이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전문적 기술을 습득하고 싶어 당시 이름난 모 양재학원을 수료한 후 이름 있는 의상실에 들어가 수년간 실기를 익혔고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는 그 과정이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특히 제가 만든 옷을 입어보고 맘에 든다면서 기뻐하는 고객들을 볼 때면 뿌듯함과 함께 더욱 자신감이 살아나기도 했지요.
맥군_ 그 후 독립하여 의상실을 개업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제가 26세 때 결혼하여 인천에서 거주하는동안 재능을 썩히고 싶지 않아 부업삼아 봉제 하청 일을 시작하였는데 제 실력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메이커에서도 일을 주더군요. 부업으로 시작했던 일이 사업이 됐다고나 할까요.
맥군_ 그럼 군산에는 언제 내려온 건가요?
96년도에 이사하였습니다. 처음엔 다른 곳에서 수선 일을 하다가 지금의 장소로 자리 잡기까지 어느덧 17년째 되어가네요.
맥군_ 가게 안에 쌓여 있거나 걸린 옷들이 어림잡아 300 벌 이상은 족히 돼 보이는데 하루 평균 일감은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요.
글쎄요, 평균 잡아 50~6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선집들이 많이 생겨 예전에 비해 일감이 많이 줄어서 그렇고 3~4년 전만 해도 지금의 두 배는 되지 않았나합니다.
맥군_ 아무래도 여성 옷의 수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지만은 않아요. 지금은 남성들도 자신만의 스타일에 따라 옷을 리폼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남, 녀의 고객 비율이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맥군_ 최근의 리폼 경향이나 추세는 어떻습니까?
과거에는 대체로 품을 늘이거나 줄이는 일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각자 개성을 중시하는 세태가 되면서 단순히 특정 부위를 고치는 게 아니라 거의 창작 수준의 리폼을 요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어떤 젊은 남성 고객은 새로 산 와이셔츠 17벌과 양복 두 벌을 가지고와 깃이며 품이며 소매며 완전히 자기가 요구하는 스타일로 다시 리폼해간 적도 있습니다.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저는 비교적 고급 의상의 식별이나 수선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고 그래선지 까다롭거나 고급스런 의상의 일감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나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요. 또한 과거에 비해 달라진 풍속도랄까 경향은 늘이는 옷보다는 줄이는 옷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건강이 화두가 되는 현실이다 보니까 다이어트로 감량을 하는 사람이 늘어서이겠지요. 그리고 요즘엔 모든 옷들이 가벼운 소재를 택하면서 디자인을 중시하는 추세입니다만 단순히 천(소재)만을 놓고 봤을 땐 옛날 옷들이 훨씬 순수하고 질감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맥군_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고객들로부터 수선 집만 하기는 아까운 실력이라는 등 칭찬을 들었을 때가 아닐까요.(웃음)
맥군_ 반대로 힘들거나 속상했던 적도 많겠지요?
물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객은 저의 조언대로 수선을 해 가시는 분이 많습니다만 게 중에는 옷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우기는 고객을 상대할 때가 힘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안타깝긴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릴 수밖에요. 고객입장에서는 저는 수선비만 받으면 그만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돈을 떠나 기왕이면 옷 임자에게 잘 어울려야 서로 만족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간혹 아주머니들 중에 수선비를 다음에 준다하고 발길을 끊는 분도 있습니다. 돈 잃고 사람도 잃는다는 말이 맞나보더라고요. 그런가하면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들렀다가 자신의 옷을 몰래 찾아가곤 나중에 와서 옷 변상하라며 생떼를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변상은 했지만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변상금의 반환과 함께 잘못을 사과 받은 적도 있는데 하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요즘은 저도 주의를 많이 하고 있고 그런 분이 안 계시리라 봅니다.
맥군_ 만일 수선이 끝난 옷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엔 어떻게 하나요?
제가 선불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무기한 보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1년이 넘도록 찾아가지 않는 경우엔 교회 등에서 여는 바자회 같은 데에 기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엔 거의 제때 찾아가십니다.
맥군_ 이렇게 많은 분량의 일감을 혼자서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저는 성격상 제게 주어진 일을 제 손으로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사람을 쓸 수가 없습니다. 또 옛날보다는 일감이 줄어 비록 힘들긴 하지만 아직은 저 혼자서도 감당해낼 수 있고요. 그러다보니 일을 끝내고나면 보통 밤 열시, 열두시를 넘기는 때도 비일비재 합니다. 하루 종일 미싱 앞에만 앉아 있다 보니 이렇게 몸매만 푸짐해져서 걱정이네요.(웃음)
맥군_ 근데 저 다리미는 어디 아픈가 봐요? 링거를 맞고 있는걸 보니 (벽에 걸어둔 플라스틱 물통과 호스로 연결된 다리미를 보며 농담 삼아 한 말)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웃음)
맥군_ 엄마의 소질을 타고 난 자녀도 있을 법 한데요?
1녀 1남을 두었는데 딸아이는 대학 4학년이고 아들은 대학 1학년입니다. 다행히 다들 착하고 장학금도 받아서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어 기특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딸아이 경우는 수학을 전공하기를 바랐는데 결국 의상디자인 학과를 가더라고요. 현재 졸업반인데 학생이면서도 대학교 부근에 자신의 샵을 내어 운영할 정도로 재능도 있고 성격도 적극적입니다. 아마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맥군_ 시간이 날 때면 무슨 일로 소일하는지요?
솔직히 주중에는 시간을 낼 틈이 없습니다. 항상 일감이 밀려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일로 손님이 찾아와도 맘 편하게 차 한 잔 나누기도 어려워 미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겨우 일요일 하루 시간이 나는데 그 날은 교회에도 가야 되고 일주일 동안 미뤘던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금세 하루가 가버리고 맙니다. 피곤할 틈도 없어요(웃음)
맥군_ 끝으로 향후 바람이랄까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사실 오래전부터의 소망이긴 한데 의류점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수선 일이라는 게 솔직히 한 시도 미싱 앞을 떠날 수 없는 육체노동이다 보니 힘도 들고, 또 우리네 연령대는 젊은 세대와 노년세대의 중간에 낀 세대라서 옷을 고르기가 어중간하거든요, 그래서 그 세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의류점을 내 보고 싶기도 한데 딸아이가 먼저 오픈한 샵이 있어 그 일을 도와줘야 할지 어쩔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네요. 저의 솔직한 심경은 사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식의 뒷바라지 보다는 저만의 독립된 일을 하고 싶거든요.
맥군_ 부디 바라는 일들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군산도 더욱 발전하여 우리 군산을 알리는데 큰 버팀목으로 나날이 성장하길 바랍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마지 못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선을 다 하면서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는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기면서 하라’ 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저 마지못해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 비하나 열등감은 부닥친 일에 흥미는 그만 두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 해도 맘먹기에 따라서는 고마운 일이고 문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일을 해 내는가 이다. 아무리 대단한 배움과 학식을 지녔다 해도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 동떨어진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면 그 삶이 결코 행복할 리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 일 터다. 그런 면에서 김복례 씨야말로 ‘여유와 행복’ 의 표본이 아닌가 한다. 비록 자신만의 작은 공간이지만 주어진 일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밝은 미소에서 누구라도 그녀의 행복지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그치질 않는 그녀의 미싱 소리는 고달픔의 소리가 아니라 즐거운 음악소리로 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멋쟁이 옷수선
군산시 산북동 3541-3
063) 466-6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