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진 논 한가운데 카페가 있다. 군산의 농장 카페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이곳에 닿는 순간, 익숙한 일상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사방을 감싼 논은 소음을 밀어내고, 바람에 흔들리는 벼와 햇빛의 자연이 가슴 가득 공간을 채운다. 이곳에선 커피 향보다 논으로 둘러싸인 들판풍광이 먼저 다가온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부부가 사람이 좋아 만든 공간, <NON FARM 엔오엔 팜>은 군산 대야의 복교리들판에 우뚝 서있다. 카페란 이름대신 농장을 뜻하는 엔오엔 팜인 이유가 궁금했다.
"시골에 사람도 없고 묵묵히 일만 해야 되고 쉴 곳도 없는 데다 시내로 나가야 차 한 잔이라도 마실 수가 있는 것이 아쉬웠죠. 남편과 내가 농사만 짓다가 끝나느니 여기다가 꽃도 심고 사람이 쉬고, 와서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그런 취지로 우리 큰 딸하고 의논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편하게 와서 미숫가루, 시원한 식혜 한 잔 마시고 가는, 카페보다는 사랑방 같은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 남편이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요"
자신의 땅에 엔오엔 팜을 만든 문현순 대표(66세)는 40여 년을 농사로 살아온 천상 농부다. 그녀를 만난 날도 대야장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웃는 모습에서 부지런함과 건강이 넘쳐 보였다.
카페입구에 들어서면 공간을 만든 이의 마음이 먼저 보인다. 잔디 위에 놓인 테이블, 아이와 반려동물을 위한 여유로운 공간, 흙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장. 작은 삽과 장난감 차가 놓인 모래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채워진다. 커피를 마시는 어른의 시간과 아이들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풍경이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1층 건물 안 카페로 들어서면서 또 한 번 '엔오엔팜'만의 분위기에 마음이 풍성해진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메뉴판이나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대신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쌀과 콩, 들깨를 비롯한 각종 잡곡과 제철 농산물들이다.
영농인이 운영하는 공간답게 이곳은 카페이면서 동시에 작은 농산물 장터다. 깔끔하게 포장된 농산물들은 단순한 판매상품이 아니라 엔오엔팜이 운영하는 <수빈 농장>과 주변 자작농에서 수확한 농촌의 시간을 고스란히 전한다.
<엔오엔 팜>의 메뉴 역시 농가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요일마다 달라지는 호박죽과 팥죽. 깨죽은 달콤한 디저트라기보다 속을 편안히 채워주는 한 끼에 가깝다. 깔끔하게 포장된 쑥떡과 쑥 인절미, 옥수수와 강정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곳의 기억을 이어주는 작은 선물이 된다. 직접 만든 꿀로 맛을 낸 미숫가루는 자극적이지 않은 달달함과 깊은 고소함으로 이 집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안주인인 문대표의 손맛이 담긴 김치는 소량 판매로 만날 수 있어 정겹고 이웃 농가에서 건네받는 소박한 선물처럼 따뜻하다.
음료를 들고 2층에 오르면 비로소 이곳의 진짜 풍경이 열린다. 넓은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논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인위적인 장식대신 사방을 채운 논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거나 목소리를 낮춘다. 하늘과 들판이 만들어내는 느린 시간 속 풍경이 공간을 채우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이곳의 논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이면 샛노란 유채꽃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여름에는 붉은 양귀비가 햇살 아래 화려하다. 가을이 오면 주황빛 메리골드와 분홍과 흰색의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한 해의 끝자락을 알린다.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계절의 변화를 먼저 전하며 꽃과 함께하는 쉼의 시간으로 이끄는 이유다.
논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 수천 평의 꽃밭 또한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문대표의 생각이었단다. 카페를 만들기 전부터 논에 수레국화를 심었고 2023년 카페가 문을 연 후 직접 심은 꽃들이 입소문을 타고 사계절 꽃명소가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꽃만큼이나 환하다.
"꽃 피는 봄을 사람들과 더 즐겁게 나누고 싶어서 '양귀비 축제'를 열었어요. 작년엔 군산출신 탤런트 김성환과 구희아를 초대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서 나도 좋더라고요."
문대표는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양귀비축제를 열고 싶다는 바람을 말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녀는 농사일, 카페 운영, 집안 살림에 더해 늦깎이 대학생으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보이는 그녀가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궁금해 질문한 내게 이렇게 대답한다.
“공부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몰랐던 걸 알게 될 때 너무 기쁘죠. 바쁘지만 하루하루가 의미 있어서 감사하고.”
한 계절을 통째로 책임져야 하는 땅의 표정을 닮아서일까. 편안한 그녀의 표정 속에 농사로 단련된 건강한 삶의 무게가 동시에 전해진다.
도시의 카페가 ‘머무는 장소’라면 엔오엔 팜은 ‘쉬어가는 풍경’이다. 농사가 일상인 공간에서 이곳만의 메뉴로 도시와 농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소비와 생산이 한자리에 놓인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유행의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더 깊어지는 곳이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는 시간, 드넓은 논 한가운데 자리한 엔오엔팜은 자연 속 쉼터처럼 다가온다.
대야의 들판 한가운데서 만난 카페는 커피가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쉼이란 무엇인가.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신당촌길 61-18
• 운영: 카페 + 농산물 판매 + 체험 공간
• 아이, 반려견 동반 가능, 주차장 있음
• 정기휴무: 수요일, 영업시간 10:00-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