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이 궁한 겨울이 되면 젊은 엄마와 나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가 갈퀴로 모은 마른 솔잎을 포대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왔다. 대개는 산 주인에게 돈을 주고 솔잎을 샀지만 어느 때는 몰래 하기도 했나 보다. 산 주인에게 들켜서 포대에 가득 모았던 솔잎을 두고 쫓겨난 적도 있으니.
마른 솔잎을 아궁이에 넣고 태우면 아주 잘 탔다. 더러 생솔가지가 섞여 있는 날은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가 깔깔 웃음소리처럼 좋았다. 솔방울이 들어 있을 때는 마치 뽀빠이 과자 안에 들어 있는 별사탕 같았다.
제주 송악산에 가 푹신푹신하게 쌓여있는 마른 솔잎을 보니 옛 생각에 애잔했다. 옛날 땔감이 아쉬울 때는 마른 솔잎조차 사람에게 베푼 덕이 컸겠구나 생각했다. 갈퀴 들고 솔잎을 긁어모으고 싶어졌다.
소나무는 추운 백두산 주변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친근한 나무다. 마을 뒷산에 가면 소나무가 있어 소나무를 타고 놀던 기억 하나쯤 품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나무는 조선시대 ‘금송령(禁松令)’을 내릴 만큼 나라에서도 보호하고 가꾸어 왔다. 우리 산이 천이 과정 그대로라면 활엽수로 뒤덮일 산에 소나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소나무는 또한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기를 상징하는 나무다. 겨울에도 늘푸른 기개를 자랑하니 예부터 선비들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도 소나무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바위의 좁은 틈, 또는 바위를 뚫고 자라기도 하여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 소나무는 솔잎이 두 가닥으로 나지만 1906년부터 수입되어 식재된 리기다 소나무는 솔잎이 세 가닥으로 나뉜다.
지금은 아무리 솔잎이 많이 쌓여 있어도 갈퀴를 들고 산에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솔잎을 때고 싶어도 땔 아궁이가 없을뿐더러 넣자 마자 금방 타버리는 솔잎 연료에 의존하기엔 세상은 이미 풍족함에 익숙해져 버린 듯 하다. 간간히 어느 산에 불이 났다는 비보가 들린다. 그러면 한 무리의 소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린다. 우리 산을 돌보고 아끼는 일은 곧 소나무를 귀히 여기는 마음과 상통할 것이다.
신솔원
시인/ 전북작가회의, 한국동시문학회 회원
문 밖에서 만나는 나무와 풀, 곤충을 사진에 담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