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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닿는 시, 목소리로 피어나다.
글 : 정미란 / jmr6114@hanmail.net
2025.12.31 16:25:5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시란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그려지는 언어의 꽃이지만 아무도 시의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럼에도 살아있으므로 시는 정답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시의 정답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ㅡ시인 이오장의 [시평] 중에서

 

언어가 가장 섬세한 결을 드러내는 예술, 시가 품은 표현은 시인의 단어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내면의 공감을 함께하는 감정의 울림이 아닐까.

그래서 시를 읽는 일은 단순히 글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내면에 잠시 들어가 그 사람이 본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행위일 수 있다.

시가 지면 위에만 머무를 때, 그 아름다움은 때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언어는 본래 소리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가슴에서 낭송자의 음성으로 시가 또 다른 생명력을 찾는 시낭송 모임 한시예ㅡ한국 시낭송 군산 문화 예술원ㅡ은 다양한 연령대 20여 명의 여성 낭송가들이 만든 군산의 시낭송 모임이다. 한시예는 20226, 시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모여 시작한 첫 모임 2023년부터 장미갤러리에서 매주 화요일 시 낭송을 함께하고 있다.

 

12월 차가워진 겨울바람 끝이 싸하게 느껴진 날 한시예 회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장미갤러리 공연장을 찾았다. 시낭송에 참여하는 20명의 낭송가들은 각자가 선정한 음악을 배경으로 다양한 시들을 낭송하고 있었다. 2025년 한 해를 정리하며 준비하는 129[송년 시 낭송 콘서트] 위한 리허설이었다. 무대 위에 조용히 들려오던 그들의 시와 목소리처럼 이 날 군산에는 첫눈이 소리 없이 내렸다.

 

나에게 시는 낯선 영역이었다. 지난해 수필집을 낸 뒤 글쓰기의 폭을 넓히고 싶는 마음은 있었지만, 시를 낭송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글쓰기와 다르게 목소리로 시를 전한다는 것은 내겐 도전처럼 느껴졌다.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은 긴장과 함께 나도 무대의 일부가 된 듯한 마음을 일으키며,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이 날 만난 한시예 회원들 대부분은 군산에서 시와 글을 써온 이들이었다. 글을 쓰며 인연이 된 여러 작가들의 모습에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시집과 수필집 등 여러 권의 책을 낸 전재복 작가, 박선희 작가, 이숙자 작가와 조귀녀 작가, 그리고 낭송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 강리원 시인까지. 이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무대를 만들며 그들만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를 가장 세심하게 이끄는 사람이 있었다. 배경음악을 확인하고, 무대 인사와 낭송의 흐름까지 일일이 살피는 채영숙 한시예 회장이었다. 그녀의 헌신과 열정 덕분에 한시예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역사회에 시와 낭송문화를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시예는 어떤 분들이 활동하고 계신가요?”

 

내 질문에 채영숙 회장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답했다.

 

시를 좋아하고, 원만한 성격이면 누구든 가능해요. 낭송은 배우면 되는 거니까요.”

 

그녀의 대답은 마음의 문턱을 낮춰주는 부드러움 속 시의 정의와도 닮아 있었다. 특별한 사람만이 시를 쓰거나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한시예는 매년 노인회를 위한 시낭송 봉사, 3.1절 기념 시극 공연 등 지역의 여러 행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내 질문에 답한 채영숙 회장의 말이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머물며 따스하게 다가왔.

 

우리 서로 나이 들어가며 시를 나누고, 인문학적인 멋쟁이로 동행하는 거 어때요?”

 

그 순간 낯선 낭송이란 세계에 선뜻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시낭송이 단순한 표현의 기회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나누게 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인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그날 장미갤러리에서 마주한 목소리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 하나하나에는 오래 품어온 삶의 온기와 서로를 향한 진심이 있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였을 뿐인데도 그 작은 공간은 따뜻한 풍경이 되었고, 누구라도 그 안에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시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만 같았다.

  

[송년 시 낭송 콘서트]가 있던 날, 알록달록 다양한 차림의 한복과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20명 한시예 회원들의 시 낭송이 열린 곳은 군산세관 옆 <정담카페>였다. 지인들과 주변을 관광하던 사람들까지 함께 한 행사장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시가 있는 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식전 순서인 젬배공연에 이어 낭송이 시작되었다.

잔잔한 배경 음악 위로 흐르는 시 한 구절 한 구절은 저무는 한 해를 기억하며 12월을 마무리하는 모두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낭송자들은 각자의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시어를 통해 마음을 전했고, 관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공감하며 그 울림을 함께 나누었다. 작은 카페를 가득 채운 그곳의 분위기는 12월의 날씨도 잊게 할 만큼 포근했다. 낭송이 끝난 뒤에는 서로의 소감을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편안하게 이어졌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던 저녁이었다.

 

문학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세계가 아니듯, 시낭송 역시 시를 좋아하고 공감할 줄 아는 누구나의 일상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마음과 마음 사이를 이어주는 시의 울림, 그 소박하지만 눈부신 예술이 바로 한시예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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