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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구의 독서칼럼: 책과 사람 그리고 세상 이야기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3.
글 : 공종구 / kong@kunsan.ac.kr
2025.12.31 13:37:3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 아버지! 그리운 나의 아버지

 

이 세상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도저히 알 길이 없는 일이 허다하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그냥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남녀 간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세간에 널리 회자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남녀 간의 관계는 정말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남녀 간 경험의 차이와 비대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은 여성으로 살아본 경험이 일 분 일초도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 서로를 이해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이치! 그러한 이치는 다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젊은이와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자와 가난한 자 등등. 오늘 독서 칼럼의 화두로 삼고자 하는 아버지와 자녀 간의 관계 또한 크게 바를 바 없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아버지와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을 가로막거나 훼방을 놓는 빌런이거나(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다른 아버지들처럼 잘 나지 못하고 용렬해서 부정하고 싶은, 하여 나는 원래 고귀한 신분의 태생이었는데 잘못 되어 아버지가 바뀌었다는 판타지를 꿈꾸게 만드는 대상이기도 하다.(가족 로망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후 아버지가 되거나 가족 부양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그렇게도 부정하고 싶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때늦은 동병상련의 자기 연민에 속수무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저 까마득한 하늘의 별이 되어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어 다만 간절한 그리움으로 사무치기만 할 뿐이다. ! 아버지! 그리운 나의 아버지! 우리들을 건사하고 책임지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한국 소설사의 지형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부정에서 이해와 화해로 바뀌는 서사의 질료를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의 인장으로 각인하고 있는 작가들은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김원일, 김성동, 이문열, 김소진 등 그 이름만으로도 한국 현대 소설사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는 이들 작가들은 어린 시절 결핍과 신산의 세월을 강제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부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화해와 그리움으로 이동하는 서사의 궤적을 공유하고 있다. 오늘 독서 토론 대상 텍스트로 소환하고자 하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 일지』 또한 그러한 맥락의 동궤에 놓인다. 이 작품 또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의 감정이 장례식을 계기로 이해와 존경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으로 형질 변화를 이루는 궤적이 서사의 핵심 질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생활하던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태도는 나는 나를 이 세상에 불러낸 원흉(혹독한 전기고문으로 임신 불가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정자 상태를 약 한 제의 처방으로 되돌려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내게 만든 최약국)을 일별도 하고 싶지 않을”(28) 정도로 원망과 불만이 지배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태도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빈소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측은지심에 기초한 진정한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실천하다가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실체를 뒤늦게서야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책과 회한으로 바뀌게 된다. 더불어 이제는 한 줌 먼지로 천지간을 떠도는, 실체가 소멸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는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7)로 문을 여는 이 소설에서 서사 시간은 장례가 치러지는 3일간이다. 하지만 그 3일간의 장례 절차를 치르는 과정에서 과거 회상이나 조문을 위해 빈소에 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는, 8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아버지의 생애 서사 전반이 드러나고, 그리고 그 생애를 통해 해방 정국을 전후한 이후 70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와 질곡이 압축적으로 제시된다.

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십대 후반에 선택한 전직 빨치산으로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고향 반내골에 터를 잡고 농부의 삶을 살다가 82살에 생을 마감한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그는 니체적 의미에서 어린아이의 정신과 태도를 몸소 체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한평생은 자신이 주체적인 입법자가 되어 사막과도 같은 삭막한 세상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며 시대를 넘어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삶의 실천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만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사회주의자”(14)의 삶을 살았던 나의 아버지는 이론과 말에는 열심이나 실천궁행(實踐躬行)에는 소홀한 부류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주로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빈소를 찾아온, 생전에 아버지와 이러저런 사연으로 교분이나 인연이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아버지는 측은지심의 디엔에이를 생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 보인다. 측은지심을 천품으로 가지고 태어난 아버지는 주변에 딱한 처지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부탁을 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들어줄 뿐이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액색한 정경이나 궁박한 사정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서 서슴지 않고 나선다. 한마디로 교환의 비대칭을 작동 원리로 하는 환대(hoapitality)가 몸에 밴 존재이다. 구체적인 사례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고향 마을에 행상을 왔다가 막차를 놓치고서 망지소조 어찌할 바 모르는 딱한 처지의 방물장사 아주머니에게 아버지는 하룻밤 잠자리와 융숭한 식사로 대접하는 환대를 실천한다. 더구나 생면부지의, 그것도 아주 초라한 행색의 낯선 아주머니를 집에서 재워 보내는 일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아내의 곡진한 만류와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다. 돌아오는 건 벼룩과 서까래에 매달아놓은 마늘 반접을 도둑맞는 일이다. 그리고 친인척이나 지인들의 빚보증을 섰다가 대신 빚을 떠안는 곡경을 치르면서도 번번이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게다가 보증으로 떠안게 된 빚을 혼자 감당하지 못해 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를 참다못한 어머니의, “아이고, 워디 물레즐 것이 읎어서 허다허다 빚꺼정 물레줄라요? 애비가 돼가꼬 딸내미한티 해준 것이 멋이 있다고 쟈를 보증을 세우요, 세우길. 당장 그년 찾아오씨요.”(58)라는 어머니의 타박과 원성에도 아버지는 시끄러. 오죽흐먼 밤도망을 쳤겄어! 그 사람이라고 호의호식허고 삼시로 그 돈 안 갚겄는가. 오죽흐먼 친정에 연락도 못허고 죽은디끼 살겄어!”(60)라며, 자신의 십팔번인 오죽하면 타령’(102)으로 응대하면서 결코 남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법이 없다.

이런 환대의 실천은 예사이고 매사 우리 일 보다는 동네의 남의 일을 먼저 살피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못마땅해 하는 어머니의, “나가 참말 복장이 터져서 못 살겄소라는 하소와 푸념에 아버지는 또한 자네 혼차 잘 묵고 잘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61)라며 목숨을 건 지리산 빨치산 투쟁의 역사적 대의와 신념을 상기시키면서 어머니를 설유신칙하고 어머니는 기꺼이 설득설복당한다. 압권은 맞담배와 술을 같이 마시는 관계로 지내면서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베트남 이주 결혼 여성의 딸이 빈소를 찾아와서 아버지와의 일화를 들려주는 장면이다. 자기 아버지의 일상적인 폭력으로 인한 엄마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그 딸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방황하다 만난 아버지와 검정고시와 미용사 자격증 약속을 한다. 빈소에서 검정고시와 미용사 자격 시험을 약속한 일을 회상하며 그 아이가 건네는, “붙으면 술 사준다고 해놓고....할배는 씨......약속도 안 지키고....”(141-142), “미용사 자격증 딸라고요. 할배가 자개 머리로 연습하라고 했는디...., 머리칼도 월매 없음시로.”(143) 등 투정 어린 추도는 사뭇 감동적이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268)

이제는 까마득히 높은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아버지에게 정지아가 바치는 사부곡(思父曲)이다. 정지아를 따라 나도 월남 이후 같은 황해도 해주 곡산 출신의 어머니와의 사이에 7남매를 낳아 가르치고 건사하시느라 평생 고생만 하시다 저 하늘의 별이 되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때늦은 회한과 안부 인사로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

아버지! 칠순의 나이를 지척에 둔 미욱한 아둔패기 둘째 아들이 아버님께 후회막급의 때늦은 안부를 여쭙습니다. 아버님! 그곳에서 잘 계시지요. 아버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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