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주고 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네요.”
8월의 끝자락, 여전히 이어지는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북페어 열기로 군산이 들썩거린다. 소도시 군산에서 열린 ‘군산북페어’는 약국, 마트, 옷 가게, 빵집이 들어서 있는 일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군산북페어가 열리는 군산회관을 찾았다. 매일 다니던 우리 동네 골목에서 이러한 큰잔치가 열리다니, 많은 기대와 함께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김중업 건축가의 유작 군산회관에서 행사가 진행됐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개막식이 열리는 첫날, 지하도 전시실을 지나서 행사장으로 가는 입구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로변 옛 계단을 허물고 걸어서 군산회관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개조한 지하 통로에는 벌써 입장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엄마도, 훤칠한 키의 학생들도, 중년의 어르신들도 겅중겅중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군산북페어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행사로 옛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8. 30.~8. 31.까지 이틀 동안 개최되었다.
‘공유와 나눔, 보살핌, 출판’을 슬로건으로
군산북페어의 슬로건은 SHARING, CARING, PUBLISHING(공유와 나눔, 보살핌, 출판)이라는 주제로 책을 통해 서로의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나누는 데 그 의미를 두었다.
너른홀에 들어서자, 출판사와 서점,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꽉 찬 공간에 압도되었다. 신간 도서에서 나는 종이책의 냄새와 많은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로 바깥 33도를 넘어가는 열기만큼 그 분위기는 뜨거웠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디로 먼저 향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몰려든 인파에 떠밀려 군중 속 책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책을 진심으로 대하는 인구가 이렇게 많았다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무엇이 이들을 남쪽 소도시 군산까지 달려오게 했을까.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군산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으로 젊은이들의 운집은 소란하면서도 질서가 있고 생기가 돌았다.
군산북페어는 지난해에 이어 참가 부스 모집에 570여 팀이 신청하여 그중 121개 부스를 운영했다니 치열한 경쟁만큼 그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부스 운영을 선정할 때는 먼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창의적이고 특별한 국내외 출판사와 서점, 작가, 개인 제작사,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을 (국내 116개, 해외 5개) 선정했다.
-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형식의 도서를 전시·판매하는 책 박람회는 전국의 책 창작자, 출판사, 동네 책방, 시민이 직접 교류하는 ‘책문화한마당’이다.
- 특별대담(김애란 작가x신형철 평론가), 주제토크, 낭독회, 전시연계토크는
북토크, 작가 강연, 포럼, 세미나, 전시회,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참여형 콘텐츠가 마련된다.
- 아트북 및 북디자인, 인쇄기(리소) 전시, 문학동네 팝업서점은 새로운 형식의 도
서를 전시·판매하는 ‘책박람회’ 등으로 다채롭게 운영되고 있었다.
군산북페어(이준재작가 사진제공)
특히, 운영위는 "올해는 단순한 책 거래를 넘어 출판인과 독자의 만남, 네트워킹, 출판문화의 '공유와 나눔'을 실현하는 새로운 북페어 문화를 만드는 원년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그 뜻을 밝히고 있다. 전시장은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 부스마다 각기 개성이 연출되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출판사를 선택하고, 작가를 직접 만나 자신의 관심사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진지해 보인다.
책 표지의 디자인도 개성에 따라 눈길을 끈다. 군산 여고 출신이라는 부스 주인은 이를 계기로 고향에 올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부스 사이를 이동하던 중 『진짜 공간-군산 골목길 탐사 여행』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작가를 만나 보니 그는 군산과 연고가 없지만 몇 번의 여행을 다니며 군산 골목을 촬영하고 책을 썼다고 한다. 군산 사람으로 반가운 생각에 얼른 책값을 지불했다.
각 부스의 출판사와 서점 주인들은 책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책과 눈을 맞추고 그들을 만지며 책 속으로 빠져든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군산북페어에 참석한다는 서울 경복궁 근처 서점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군산 시민들을 보니 책에 대한 수준이 매우 높고, 책을 고르는 태도가 진지해서 놀랐습니다.”
“음악도 좋고, 공간 배치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책도 많이 팔려서 만족합니다.”
메인 전시인 '아트 북 페어 나우-북페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독립·예술 출판의 중심인 아트북페어의 다양한 미학적 분위기가 대단했다. 기대되는 코너로 특별대담은 지난해 한국 문학계의 거장 황석영 작가의 뒤를 이을 주인공들이었다. 소설가 김애란과 평론가 신형철의 대담은 신인 작가 지망생들의 열기는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특히, 신예 중견디자이너 신혜옥·신동혁·신덕호의 작업을 선보이는 '메이드 인 신·신·신' 전시는 많은 독자들이 몰려 그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해외에서 온 서점들과 군산빌리지
독특한 출판사와 서점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 서점으로 언어의 장벽도 무색하게 많은 독자들이 스쳐갔다. 특히, 본인이 퀴어,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한 판매자는 “성소수자들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관련 도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3층 자리한 군산빌리지를 찾았다. 다소 협소해 보이는 공간, 찾아가기 어려운 3층에 배치한 군산빌리지는 17팀(16개 부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장소 선정으로 다소 만족하기 어려운 위치라 생각한 것과 달리, 군산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군산문인협회에서는 지역 출신 작가들이 직접 시집을 전시하고 있어 저서에 대한 소회를 들으며 시집 몇 권을 가방에 담았다. 군산의 대표 서점 ‘한길문고’와 근대사 거리의 ‘마리서사’, 군산에서 가장 작은 서점 ‘봄날의 산책’ 대표에게 판매량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더니 환한 눈웃음으로 화답한다.
내려오는 길에 이색 코너인 '노랑북스’에 들어갔다. 세계의 노란색 책들이 진열된 서점에는 마침 아이들이 책을 골라 읽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도 어른들도 환한 색채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긍정과 환희의 색채인 '노랑’은 군산북페어의 정체성에 담아 방문객과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단 이틀간 열린 군산북페어는 기간이 짧아 아쉬움이 남지만,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 그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열기만큼 북페어를 계기로 군산에 관심을 가지고 군산을 방문하고 군산의 역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한국관광공사는 군산시를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선정한 데 이어, 2025년 전라권에서 가장 기대되는 도시로도 지목했다. 이는 군산이 단순한 관광지에서 벗어나, 감성과 콘텐츠가 결합된 복합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책을 세 권 이상 구매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에코백을 메고 행사장을 나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군산북페어’는 군산시와 ‘군산책문화발전소’라는 지역 서점들의 능동적인 제안으로 군산만의 지역 특화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군산이라는 소도시에서 쏘아 올린 책잔치, ‘군산북페어’는 이제 작가와 독자, 출판사가 함께 책의 문화를 교류하는 장으로 금강, 만경강, 서해로 나아가는 물결이 되어 흘러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