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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 눈꽃 세상이 된 은파호수
글 : 박세원 / hamp38@hanmail.net
2025.02.25 16:02:3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눈 내리는 은파호수를 걸어 본 적이 있는가

 

밤새 내리는 눈에 마음을 빼앗긴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얀 눈송이들이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는 그들이 쏟아내는 미세한 독백이요, 어둠속에서 세상과 마주하는 첫 키스이다. 눈 내리는 모습을 보니 싸리문 위로 밝은 달이 비춰주던 고향의 밤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은파호수는 도심 가까이에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군산의 보물이다. 포근하게 내리는 눈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은파호수의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은파호수에 내리는 눈은 깊은 땅 속 숨겨진 생명들을 따스하게 덮어 주는 엄마의 치맛자락과 같다. 일상에 지치고 고단한 우리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담은 채 은파호수 눈꽃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은파호수에 와 보라.

 

필자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은파호수는 매일 아침 산책하는 길이다. 밤새 내리던 눈꽃 세상이 궁금해 카메라를 둘러매고 서둘러 찾아간 은파호수공원. 동녘 하늘의 여명이 밝아오며 겨울아침 은파호수가 깨어나고 있었다. 지난밤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호수 위로 하얀 눈꽃이 얼굴을 내밀면 그 소리에 움츠렸던 철새들의 날개가 기지개를 켠다. 시베리아 어느 섬에서 쉼 없는 날개 짓을 하며 날아 와 둥지를 튼 철새들. 어젯밤도 시린 어깨를 기대며 갈대 숲 사이에서 포근히 잠들었던 새들이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파닥거린다.

은파공원 제 1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눈을 맞으며 데크길을 걷다보니 눈꽃에 가려 보이지 않던 호수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이야기를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자.

 

 

쌀뭍방죽 미제지(米堤池)의 전해져 오는 이야기

 

은파호수의 옛 이름은 미제지(米堤池)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나는데, 처음 등장한 곳은 1530년(중종 25)에 제작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미제지는 옥구현 북쪽 10리에 있으며 둘레가 일만구백십 척(6.9km)”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미제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보다 앞선, 조선 왕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미제저수지는 ‘쌀뭍방죽’이라는 이름 그대로 주변 평야에 농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농업용 저수지였다. 구릉들 사이에 자연스레 만들어진 호수 같지만, 사실은 둑으로 막은 인공 저수지다. 길이 270m, 높이 약 10m, 너비 4m의 작은 둑이지만 군산의 오밀조밀한 지형을 이용해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었다.

새벽 동행에 나섰던 일행 중 유난히 군산 기행에 관심이 많은 선배는 그날 군산의 3개 호수 중 은파호수를 선택했다. 그는 ‘햇빛에 비치는 아름다운 물결’이라는 이름을 가진 은파호수의 둑을 걸으며 옛날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여기에는 못이 없었지요. 이곳에 심술 사나운 부자 한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천성이 인색한데다 마음씨조차 나빠 가난한 이웃이 있어도 한 번도 도와주는 일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한 옷을 입은 선비 한 사람이 이 집 문 앞에 와서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요청했어요. 이것을 본 부자 주인은 재워주는 대가로 앞에 있는 논의 벼를 다 베라고 시켰어요. 선비는 할 수 없이 벼를 다 베기로 하였지요. 선비는 공부를 하느라 지친 몸으로 힘든 일을 하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 집 며느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선비를 따뜻하게 돌 봐 주었어요. 그 모습을 본 시아버지는 벌컥 화를 내며 그 둘을 한 밤중에 쫒아냈어요. 며느리는 남편이 죽고 자식 하나만 데리고 사는 청상과부였어요. 쫓겨난 며느리는 하는 수 없이 선비와 멀리멀리 가서 열심히 살다가 남편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했어요. 그리고 며느리가 살던 옥구현의 현감이 되었지요. 동네 사람들이 인색한 시아버지가 어려운 사람들의 땅을 빼앗는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현감은 조사를 정확히 하여 빼앗긴 땅을 찾게 해주고 소원을 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농사에 필요한 못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못을 만드는 일은 돈도 많이 들고 일하는 사람도 많아야 하는 등 아주 어려운 일이였어요. 현감과 며느리는 부처님께 못을 만들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하며 지극정성으로 빌었지요. 백 일째 되는 날, 큰 비가 내려 이 못이 생겼대요. 마을 사람들은 이 못에 물을 대며 농사를 지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잘 살았대요. 현감은 그 후에도 마을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정치를 하다가 죽었는데 하늘도 감동하여 못 옆에 현감 바우, 며느리 바우, 아기 바우를 만들어 은빛 물결을 평생 볼 수 있게 해 주었대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은파호수는 이렇게 해서 생겼다고 해요. 지금도 이 호수에서 은빛 물결을 보는 사람은 현감과 며느리가 살펴주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 은파호수 많이 사랑해 주세요.” 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구불길을 돌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아침

 

군산시민의 쉼터가 되어 준 은파호수. 물빛다리를 건너면 호수의 기둥 인 양 다리를 떠받들고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가 하얀 두루마기를 두른 채 의연하게 서있다. 눈 속을 헤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세 바위’를 지나며 산책로가 끝이 난다. 수변산책로는 전체 8.56km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걸으면 2시간 남짓 소요된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메고 온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투덜대던 어깨가 움츠려 들 때 쯤 멀리서 여명이 밝아온다. 하얀 설경 위 은파호수 위로 따스한 햇살이 한 줌 내려와 앉는다. 호수 위로 밤새 내린 눈이 미끄러져 사라진다. 이야기를 따라 구불길을 돌아 한없이 걷다 보면 은파호수의 길이 우리네 인생 여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끝날 듯 돌아서면 다시 나타나는 언덕, 다시 돌아서면 호수는 맑은 얼굴로 맞아 준다. 벌써 눈길을 헤치고 산책 나온 사람들과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눈다. 은파호수에도 걷다가 지친 시민들이 따스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겨울 장관을 이룬 눈꽃 세상이 마무리 된다. 어느새 움츠렸던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한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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