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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정의 미술칼럼 - 중세미술 1. 초기 기독교미술
글 : 배수정 / jlmjlm710@naver.com
2025.02.24 11:07:5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로마 기독교 박해

 

지난 회차 까지 고대 로마 미술을 마치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 중세 미술로 건너가 보려 한다.

중세 미술은 초기 기독교미술, 비잔틴 미술, 로마네스크 미술, 고딕 미술의 순서를 따라 변모하게 되는데 초기 기독교미술을 선두로 미술 역사를 따라가 보자.

중세 미술의 시작을 여는 초기 기독교미술은 고대 로마 후기와 맞물려 발현 하였다. 서로마 제국 멸망 시점은 고대와 중세를 나누는 시기가 된다.

이 시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통해 기독교는 국교로 정식 공인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교회 건축이 시작 되었다. 중세 미술의 선두에 있는 초기 기독교 미술은 이렇게 첫발을 뗀 것이다. 

밀라노 칙령기독교라는 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안에서 다뤄질 핵심 두가지중 첫 번째 로마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종교를 인정한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에 상응하며 나타난 또 다른 신전의 형태(교회 건축)의 출현이다. 이번에는 두 가지를 중심으로 전개하려 한다.

앞서 기고 했던 고대 미술 속에 녹아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 미술은 그야말로 폼나는 모든 신의 집합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을 이어받은 중세 미술 역시 다양한 신들 속에서 신성과 인성을 복합체로 구성하며 미술의 전성기를 이뤄가고 있던 시점 이였다.

그런데 다신교 중심지인 곳에서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이 오직 유일신만을 섬기는 종교가 발현한 것이다로마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거친 박해를 피해 복잡한 지하 토굴을 만들어 칩거하게 된다이것을 카타콤이라고 불렀으며이는 거대한 무덤과도 같고 1~4세기에 걸쳐서 로마 변두리 지하에 건설 되었다.

 



이렇게 박해받던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종교의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지하에서 숨죽이던 예배 활동에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이 해방감은 예술과 접목되며 지상에서 맞이하는 예배 처소들은 고대의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적 산물이 되어 꽃을 피우게 된다. 이 건축 예술에 영감을 실어준 것이 바로 바실리카 형식이다. 이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실리카의 의미는 왕궁등의 건축물을 의미하는 단어로써 그리스어 바실리케에서 유래 하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이어지는 이 바실리카 양식은 갑자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바실리카는 고대 로마 시대에 공공 목적의 대규모 건물의 형태였다. 그곳에서는 대규모의 집회를 하거나 회의장, 상업 거래를 진행하기도 하였던 대회장 이였던 것이다. 특별하게는 왕의 접견실이 되거나, 재판을 진행하는 공간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바실리카는 특정 건축 양식으로써의 의미 또는 종교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실리카는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넓고, 천장이 높은 형태이다. 이 공간의 구조를 통해 보여주듯 바실리카는 예배의 장소로 사용하기에 적합 하였다. 회중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신의 주목도를 높일 수 있는 구별된 공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지붕을 지지하는 웅장한 기둥과 글라스의 형태를 통해 빛을 건축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이러한 구조를 통해 신의 속성을 최적화 한 것이다.

 

 

예배의 공간 바실리카 건축 형태의 완벽한 표본으로는 옛 성베드로 성당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에 세웠으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옛 모습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실리카 건축 내부의 공통점은 모자이크 장식으로 되어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초현실적인 공간에 배치되고 있으며, 영원불멸과 변하지 않는 신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황금색 배경이 눈에 띈다.

인물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고대 이집트의 인물과 같이 표정이나 개성이 드러나지 않고, 전체적인 동세와 모습이 동일함을 이루는 특징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중요도나 특징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나 마리아와 같이 주목도가 높은 상징적 인물들은 중앙에 위치하며 주변 인물들 보다 크게 그려지는 고대 미술의 공통적인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양피지에 그린 성경 필사본인 세밀화이다. ‘양피지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파피루스라는 식물의 줄기를 이용한 작업 방법보다 훨씬 견고하며 묘사하기에 부드럽고 좋았다.

이러한 양피지를 재료로 한 필사본 안에는 정성들여 그려진 세밀화들이 남겨졌다. 

이렇듯 지하 토굴 카타콤에서 벗어난 로마 초기 기독교 미술은 중세, 르네상스,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중세의 초기 기독교 미술은 주요한 지점인 것이다.

다음 회차로는 중세미술 파트의 두 번째 비잔틴 미술을 탐구할 예정이니 미술에 대하여 한땀을 떼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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