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창업 6년의 기록, 진정성이 이뤄 낸 ‘100만불’ 수출탑
글 : 채명룡 / ml7614@naver.com
2025.01.24 11:16:5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정치인에서 사업가로, (유)영인바이오 최인정 대표

열정으로 성공시킨 건강 식품, 반려 동물 사업 

 

정치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자칫하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최인정 대표의 사업 전환 6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진정성이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가 도의원에 다시 도전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소리들이 많았다. 민주당이 아니면서 가시 밭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는 아쉬운 패배였다.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패자는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2018년 6월 하순은 뜨거웠다.

정치인 최인정은 멍 때리기가 하루 일과였다. 무엇을 할까 고민이 많았다.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험한 세상을 다시 살다시피 매달렸다. 덩치 큰 그의 마음 고생을 하늘이나 알까.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 인내한 결과 오늘 그는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으나 아무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군산은 어업과 공업이 어우러진 도시지만 다소 낡은 이미지가 컸어요. 이런 산업군을 엮어 6차 산업을 지향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고 보았죠. 1차 산업에서 4차 산업까지 아우르는 생산적 구조를 만들면 지역 발전과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정치인의 영역과 사업의 영역은 전혀 다르다는 걸 그 때는 잘 알지 못했다. 무언가 출구가 필요했다. 

평소 품었던 사업 구상, 그리고 도의원 시절에 냈던 흰찰쌀보리를 주원료로 하는 특허가 나오면서 그는 창업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6년 전의 그 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뛰어 들었으나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걸 아는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업은 냉정한 세계였다. 뻔 한 길인데도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허송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헤쳐 나가는 그 길이 쉬울 리가 없었다

“사업을 구상할 당시에는 이 지역의 특산물 흰찰쌀보리를 원료로 당뇨나 성인 질환에 필요한 건강식품을 만들거나 반려 동물들의 영양식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소 막연했는데, 정치적인 선택에 의해 그 시기가 빨라진 셈이죠.” 

창업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구나 하는 생각으로 물 불 안가렸으나 돌이켜보면 ‘사업은 사업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창업하지 않아야죠. 맨 바닥에 헤딩하면서 시행 착오를 너무나 많이 겪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제조업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없이 무모했다는 걸 그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거든요.”

그러나 그는 도전했으며, 오늘날 창업 6년만에 1백만 불 수출탑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100만 불 수출탑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짧은 기간에 한 사업체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그 미지의 세계를 최인정이 걸어간 것이다. 

 

 

사업 첫 해 매출 3만8,000원

 

농업회사법인 유한회사 영인바이오. ‘영인’이라는 회사명은 새롭게 싹이 돋아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 초심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바이오라는 건 당뇨와 팻 푸드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을 엮는 차원에서 이름을 지었다.

2018년 6월에 (유)영인바이오가 창업을 했는데 첫 번째 펫 푸드 시제품이 11월에 나왔다. 그런데 첫 해 매출은 3만8,000원이 전부였다. 

펫 푸드는 강한 마케팅 능력이 있어야 소비자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 그 당시 시장에는 수많은 제품이 나와 있었다. 방향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기업이든 특별한 아이디어 혹은 제품으로 투자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세 가지의 시련에 직면하게 되거든요. 첫 번째가 자금이고요. 두 번째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아이템(콘텐츠)이 있느냐고요. 세 번째는 짧은 시간 안에 개발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니즈가 있느냐’,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팔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느냐’였다. 

이런 모든 게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사업체는 치열한 생존 싸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너무 무모했기에 이런 걸 알 까닭이 없었다. 고생길이 훤했다. 그러면서도 고비 고비 넘기면서 6년여를 잘 버텨왔다.

 

 

순살 게장 레시피의 탄생

 

자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가 매출이었다. 매출이 없으면 지원 사업은 아예 생각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졌던 펫 푸드 사업. 그래서 군산 지역과 연관되면서 처음의 사업 구상과 맞아 떨어지는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 때 출구를 만들어 준 게 동생 최인선 셰프였다. 

유명 셰프로써 활동 중인 동생의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을 하고 싶냐’였다.

“일본인이 먹고 싶어 하는 3위 안에 들어가는 식품이 게장이었어요. 현지에 가서 직접 먹어 보니 꽃게장 한 마리와 단무지가 나오는 데 가격이 3,500엔, 한화로 3만5,000원 정도였거든요. 당시 국내에서는 1인분에 25,000원 정도였고요.” 

짜고 단단한 껍질이 있는 게장으로는 호불호가 갈리고 유통이 어렵다는 현지 시장 조사를 설명하자 셰프인 동생이 레시피를 짜서 꽃게의 순살을 원료로 하는 게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 노력으로 창업 2년째에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식품사업으로 성장해 나갈 동력이 생겼다. 이런 배경을 업고 해외 진출을 위해 뛰게 된다. 

 

 

도전, 그리고 실패

 

영인바이오 식품 사업의 태동이 된 순살 게장. 매출이 나오게 되자 중진공이나 기술신보에서 여신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다. 

“수출 중심으로 창업했고, 이 지역 분들과 경쟁 하려고 창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상인들과의 경쟁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장사치로서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초심을 지키자’ 라고 생각했죠.”

그 당시에도 주력 사업이었던 팻 푸드는 1,000만원 정도의 매출에 그쳤다. 불루오션이었만 강력한 마케팅 능력을 갖추지 못하자 그림의 떡이었다. 삐약이 사업자 영인바이오는 소비자의 구매에는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최인정은 2019년 추석을 앞두고 ‘딱 한 번’ 지인들에게 구매를 부탁하는 문자를 드렸다. 순살 게장 등을 추석 선물용으로 판매하였는데, 나름의 큰 매출을 올렸다. 창업 2년차까지 외부에 의존했던 자금난도 점차 풀리게 된다. 

2020년에 도쿄에서 한국의 식품류를 취급하던 서울식품과 협의해서 약 2천~3천만원 상당의 2파레트의 수출품을 실었다. 그런데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나라가 제외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출항하는 배에 선적했던 CJ, 농협 등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의 수출품들이 모두 되돌려 보내졌다. 

“장류 식품은 일반균(유익균 포함)이 굉장히 많이 증식하지요. 한국에서는 대장균 위주로 기준치를 검사하지만 일본에서는 대장균과 일반균을 모두 검사했어요. 국내에서 생산된 장류 제품의 경우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였고요.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되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식품의 수출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간신히 통관된 건 간장게장뿐이었다. 그 제품은 완판 했으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꽃게 무침의 경우 현지에서 전량 폐기했다. 

사업에는 운이 따라야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두 번씩이나 똑같은 일을 겪게 되면서 일본 시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세균 증식 문제로 우리 회사 제품에 대해 부적격 통보를 하면 우리나라의  식약처에서 점검을 나오게 되거든요. 현지에서 폐기 처분하느라 피해가 막심했지만 그 보다도 힘든 게 관련 국내 기관에서 점검이었어요. 이런 저런 서류와 준비 과정이 정말로 힘들거든요.”

나름 노하우가 있었지만 때론 불가항력이 있다는 걸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미국 등 수출 길을 다변화하기 위해 또 다시 뛰었다.

꽃게장 등의 제품을 미국 FDA에 등록을 하고 2021년에 한화로 3,000만원 어치를 수출했다. 호사다마랄까. 또 다시 시련이 왔다. 바로 코로나19였다. 

시련의 파고가 연이어 닥치면서 그는 고개는 점점 숙여졌다.

 

 

침몰 직전의 회사를 살린 ‘코로나19’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저녁이 없는 삶에서 저녁이 있는 삶으로 변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영인바이오 또한 큰 위기를 겪었다. 위기가 기회일 수 있을까 시험대에 섰다.

“코로나19 직전에 우리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쿠팡 로켓 배송이나 마켓컬리 등으로 판매를 모색하기 시작했죠. 진입 장벽이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려웠어요. 최소 10번 이상 판매를 타진하였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간신히 들어갔거든요. 국내 시장에서 온라인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죠.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영인바이오의 꽃게장은 낮은 염도를 가진 제품이다. 다른 회사의 꽃게장의 염도가 3.0 이쪽저쪽이었다면, 이 회사 제품은 1.8~2.0 이하였다. 

군산 사람은 물론 일반적인 꽃게장 애호가들의 경우 ‘이 게 무슨 꽃게장이냐’라고 할 정도로 짠기가 없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싱겁게 음식을 먹는 식문화를 가진 서울, 경기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첫 해에만 6억 5천만원,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13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 시대에 200%~300%의 매출 신장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유)영인바이오 이름이 온라인 시장에서 어필하기 시작했으며, 온라인 판매를 통하여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반면 수출 길은 완전히 막혔다. 샘플을 보낼 길도 없었으며, 바이어를 만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인바이오에게는 코로나19라는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 한 게 세상 일이다.

 

 

세계 시장을 향하여 ‘걸어서, 걸어서’

 

2023년 ‘안심 댕면’ 이라는 강아지 전용 라면 시제품을 완성했다. 아시아 3대 박람회 중의 하나인 서울식품 박람회에 출품했는데 큰 호응을 받았다.

현장에서 20만 불을 계약했다. 소비자 반응이 좋아지면서 팻 푸드의 수출이 급격히 늘었다. 코로나 비대면이 풀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해외를 향해 뛰었다. 

“2023년에만 해외에서 200일을 체류했고, 그 다음해엔 100일 정도를 해외에서 보냈어요. 박람회 위주로 참여했는데, 팻 푸드 홍보를 위해 온 힘을 다했죠.”

식품 수출을 하려면 그 나라와 음식 문화가 비슷해야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간장이나 양념에 ‘날것’을 삭혀 먹는 식문화는 일본과 베트남, 중국 해안도시 등에 국한되었다. 한계가 분명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뛰어 넘기란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다. 

국내 경쟁력도 다시 점검해야 했다. 냉동 유통 제품만 해도 수백 종류 이상이었다. 너무나 경쟁이 심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 

“영인바이오만의 ‘1인분 제품’을 만들자고 결정했어요. 금형을 뜨는 데에만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어려운 결정이었죠. 그런데 해야만 했어요. 바이어들 또한 화구에 끓이는 제품이 아니라 전자레인지에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을 원했거든요.” 

3개월 동안 약 40가지의 간편식을 개발했다. 이미 개발해 놓은 제품들 중에서 김치두부찌게, 오징어국 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4가지를 선별했다. 

영인바이오가 만든 1인분 그릇에 냉동 간편식품이 절반 정도 들어가 있는데, 전자레인지에 4분 정도 돌리면 먹을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었다. 

곧바로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을 미국으로 수출했다.

 

 

500만 불, 1,000만 불 수출도 어려운 일이 아니죠

 

대한민국에서 100만 불 수출탑 수상은 이례적인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첫 발을 뗀 식품 제조업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인바이오는 지난 한 해 동안 25억여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그 중에 100만 불을 수출했다. 15억원 가량의 외화를 벌어들인 셈이다. 세계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사업의 초심이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또한 수출하면서 15개 제품의 포트폴리오가 마련되었으니 나름 준비는 갖추었다. 수출하면서 여러 시행 착오를 겪었으나 ‘함께 살자’는 생각은 더 두터워졌다. 

식품 사업의 높은 장벽에 도전하려는 사업자들과 ‘윈윈’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올해부터 새만금 공장을 짓는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시장에 진입하지는 못한 국내 식품 제조업자들의 아이디어를 보면 기발한 제품들이 많아요. 이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제품을 위탁 생산해주는 방법으로 완성도가 높은 상품을 만들고 이를 수출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죠.”

영인바이오는 2025년도에 60억 정도의 자금을 받아서 이미 부지가 확정된 새만금수출복합단지에 대형 식품 제조 시설을 완비할 계획이다.

해외 빅바이어들의 경우 수출 상담할 때 하루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가 묻는데 지금처럼 하루 몇 천 세트 능력으로는 말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10배 이상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진단.

“생산할 장소를 찾는 사업자들에게 ‘우리의 생산 역량은 100 종류가 넘는다. 인증도 다 받아 놓았다. 주문만 하면 대신 생산해 준다. 골라 보고, 먹어 보고, 주문만 걸어보라. 여기서 다 해결해 준다.’라고 하면 구름처럼 몰려들지 않을까요.”

소량의 제품이라서 생산해 줄 공장을 찾지 못한 사업자들에겐 희소식이다. 적당한 금액으로 OEM(주문자 상표를 부착하여 상품을 제작), ODM(주문자 생산 위탁을 받아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방식)을 대신 해준다면 국익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닐까.

이렇게 히트 상품이 나오면 500만 불, 1천만 불 수출 달성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군산을 ‘맛의 도시’로 공동 마케팅하자 

 

지역과 동행하는 사업가로서 군산과 함께 성장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최인정 대표. 

맛있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대량 생산할 시설이 없었던 군산의 소상공인들과 영인바이오가  ‘군산’을 함께 마케팅 하면 좋지 않을까. 

그야말로 먹기 위해서 어디든 가는 세계 각지의 식도락가들. 이들을 겨냥하여 ‘군산의 맛’을 공동 마케팅 하다보면, 군산이 짬뽕의 도시에서 한 차원 올라 서 진정한 맛의 도시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길을 함께 가보자.” 

세계를 누비고 있는 최인정 대표의 주장은 묘한 설득력이 있다.

 

농업회사법인 유한회사 영인바이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로 392 5층

(전화 063-468-8948)

 

채명룡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