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손편지를 써 본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학창시절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펜팔 편지를 띄워 놓고 우체부 아저씨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렸던 기억나지요? 어두침침한 백열등 아래서 수십 번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던 편지는 지금쯤 누구의 가슴에 아련히 앉아 있을까요?”
의사전달을 하는 데 있어서 말 보다는 글을 쓰게 되면 쓰는 이의 신중함과 따스한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는 게 바로 편지이다. 손으로 쓰는 손편지. 현대에 들어서는 손편지를 써 본 기억이 가물가물,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우체부 아저씨의 손에는 편지보다는 공과금, 세금 고지서뿐이다.
눈만 뜨면 손에 스마트폰을 찾고 그 기기가 모두 알아서 해결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종이 위에 또박또박 글을 쓴 편지 문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때에 ‘손편지 축제’가 열리는 곳이 있다. 바로 2024. 9. 27~9. 28.까지 열린 군산 우체통거리 손편지 축제이다.
우체통거리 손편지 축제가 탄생하기까지
구도심 1996년도 시청, 법원 등 관공서가 조촌동으로 이전하면서 이전에 활성화 되었던 중앙동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2015년 황폐화 되어가는 도심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도란도란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공동체에서는 길거리 청소, 꽃 심기, 군산시장과 경관협정 체결 등 큰 성과를 거두며 2018년 제 1회 손편지 축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토부 소규모도시재생 공모사업 선정되면서, 전북 마을축제 선정에 이어 2020년 대한민국 우수사례발표대회 최우수상을 받는 등 명실공히 전북지역특화형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누렇게 퇴색해 가던 도심이 새 옷으로 단장하고 이 곳을 ‘우체통거리’로 명명하게 되었다. 현대화의 물결로 잊혀져가던 감성의 문을 두드린 결과 사람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느린 엽서가 뭐지요?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시대에 느린 엽서쓰기는 1년 365일 우체통거리에 가면 언제나 써 보낼 수 있다. 엽서를 써서 4 군데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받아볼 수 있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매우 이색적인 엽서이다. 물론 받는 대상은 부모님, 연인,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주문을 하면 더 짜릿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느린 엽서를 쓴 뒤에는 1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세대들에게는 너무 길지 않을까. 맞아, 한 달 후 혹은 3개월 후에, 또는 남편 생일에 배달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편지 축제 내용으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우체통거리 손편지 축제장을 들어가니 노란 현수막에는 손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한 수상작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각 체험부스에는 나만의 우체통 그림 그리기 대회에 참여한 작품들이 손님을 마중 나온 청사초롱처럼 걸려있다.
물론 손편지 축제라고 해서 아이들만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다. 행사장에 동행한 어머니도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편지를 쓴다. 손편지를 직접 써서 우체통에 넣자 나눠준 체험권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바구니 꾸미기, 호박파우치 만들기, 보온에코백 만들기, 다육아트, 나만의 차 블랜딩, 나만의 화분 만들기, 수제 쌈장 만들기 등을 체험하면서 어느새 보관용 가방은 부풀어 올라 득템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말하는 우체통 체험하기, 나만의 우표 만들기, 우체통거리 캐릭터의상 체험하기, 내가 그리는 우체통 출품작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개막식과 금빛초등학교 아이들(사진)의 맑고 청아한 합창소리에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고 강임준 군산시장님이 참가한 가운데 손편지 쓰기 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내가 그리는 우체통 그리기대회 수상자들은 군산우체국에서 준비한 선물로 BTS 기념우표를 받아 들고 폴짝 뛰어 오르며 기뻐했다. 나도 갖고 싶은 우표인데··· . 수상자들에게 힘껏 박수를 보냈다.
우체부 아저씨가 파란 우체부 의상을 입은 채 환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손편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보자 여고시절 학교가 파하면 마루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기다리던 우체부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그 때 그 아저씨는 중년의 우체부 아저씨였는데 오늘 만난 우체부 캐릭터 청년은 너무 젊어 풋풋하기까지 했다.
이밖에도 버블쇼와 풍선아트, 가을운동회를 열어 어른도 아이들도 함께 즐거워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가며 가슴을 담아 채우는 것이니 받는 사람의 감동 또한 두 배가 되지 않을까. 바로 손편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상시 쑥쓰러워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편지 한 통 보내는 것은 어떨까.
우체통거리를 위해서 동분서주
우체통거리는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40여개의 상인들이 직접 참여하여 매주 수요일마다 주민회의를 열어 운영한 결과 많았던 공실들이 거의 채워져서 이제는 약 5% 정도로 크게 줄어 상가도 살아나고 추억도 소환했다.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 배학서 회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타 지역의 모범사례로 꼽힌다”고 말하였다. 누구보다 우체통거리에 맨발로 뛰는 분이 또 있었으니 바로 신상철 부회장이다. 행사의 전반적인 기획에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추진하고 있었으며 곳곳의 축제 내용을 촬영하여 바로 네이버블로그에 올리는 등 우체통거리와 군산 알리기에 노력해오고 있다.
우체통거리 숨은 맛집을 투어하면
우체통 거리에는 숨은 맛집들이 오랜 시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맛집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가성비 또한 후한 인심과 함께 발길을 이끌었다.
- 스윗트인디아 : 인도전통 인도 커리
- 군산사오정 김밥 : 사오정김밥(3,500원)
- 일오삼식당 : 묵은지 갈비찜, 갈치찜
- 우체통찰보리칼국수 : 도토리칼국수
- 호연식당 육회비빔밥
- 장보고 분식 : 다양한 메뉴를 가성비 좋음
- 영동반점 : 짬뽕, 짜장면, 탕수육
- 군산 리오카페, 카페 동행, 커피콩콩, 네일샵, 편의점, 주민들 상품을 공동 판매하는 홍보관 등이 성업 중에 있으며 그 밖에도 글라스안경점, 그린스모어카페, 동인전자, 라복임플로체 꽃가게, 홍차이야기 등 저마다의 명인들로 오랫동안 골목을 지키고 있는 우체통거리의 주인공들이다.
우체통거리에 들어서면 우체통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익살스럽게 말을 걸어오고 꽃들이 환하게 답해준다. 중앙로에는 빈 가게 많으나 우체통 거리는 생동감이 넘치며 젊은이들이 창업하러 들어오는 거리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회의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성되는 구도심이 꿈틀꿈틀 살아나고 있어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 하는 사례로 이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바라는 점, 편지 한 장 쓸 수 있는 ‘종합체험관’ 필요
필자도 주 1회 이상 우체국거리를 찾게 되는데 그 거리에 가면 추억을 소환하여 편지를 쓸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영업하는 가게에 들어 갈 수도 없고 부득이 차 값을 지불 않아도 편지를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성을 일깨워 편지 한 장 쓸 장소, 종합체험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체험관이 들어선다면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군산 시내가 월명동 중심 근대사거리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골목과 골목을 연결하여 관광할 수 있게 된다. 군산에 가면 빵을 사고 우체통거리에서 편지를 쓴 다음 근대유물을 돌아 본 후, 말랭이 마을까지 연계가 된다면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가 관광객들에게 군산에서 1박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축제 중 우체통거리 주민들의 행복한 미소가 방문객들에게 오래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