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을 정도로 그냥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는 김훈의 글이 그러하다. 그의 글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김훈의 글에는 허영이나 허위의 분칠로 지싯거리거나 지분거리는 법이 없다. 위선이나 위악을 참칭한 윤색이나 과장의 혐의 또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식인 일반의 냉소로 적당히 눙치거나 애매한 둔사로 얼버무리는 법도 없다. 주로 목표를 향해 직핍하는 단문의 속도감으로 이어지면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발라낸 그의 글은 건조한 사막과도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이나 인상은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지 그 실상을 톺아보면 그러한 느낌이나 인상은 피상적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최대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의지로 도저한 그의 문장은 예술의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유와 감성, 논리와 감각의 혼효⸱착종이 장관을 이루고 구상과 추상, 직강(直强)과 곡유(曲柔)의 조화⸱공존이 화음을 이루는 그의 글은 그 어떤 스타일리스트의 글보다 유려하면서도 진중하다. 하여 김훈은 어느 누구도 모방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단독자의 성채를 구축한 빼어난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어로 문장을 쓸 때나 한국어로 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조사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머뭇거린다.....조사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한국어 문장을 쓸 수 없고 한국어 문장을 읽을 수 없다”(134면)로 시작해서 “조사 ‘에’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다”(141면)는 문장으로 아퀴를 짓는 「조사 ‘에’를 읽는다」와 “나는 인쇄된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책값을 내고 이걸 사서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이 자학적 수치심은 오래된 고질병인데, 증세는 악화 중이다”(142면)로 들머리를 열고 “형용사와 부사를 버리고, 버린 것들을 다시 추려서 거느리고 나는 직진하려 한다”(148면)는 문장으로 글을 매듭짓는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을 보노라면, 그가 우리말의 사용과 부림에 얼마나 섬세하면서도 예민한 감수성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저절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여 그저 탄복할 뿐이다. 무릇(大抵), 작가란 바로 이런 존재여야 하거늘 하는, ‘작가의 존재론’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게 따로 있을지 싶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하릴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김훈의 글이 발산하는 매력과 마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존재와 세계에 대한 묵직하면서도 웅숭깊은 통찰과 성찰의 깊이와 밀도,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치명적인 매혹의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명불허전. 5년 만에 김훈이 발표한 산문집 <허송세월>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평가가 억측이나 과장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움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과일을 먹을 때, 나는 그 소외감에서 벗어난다. 사과는 싱그럽고 자두는 에로틱하고 포도는 충만하다. 잘 익은 과일을 한 입 깨물어서 과즙이 입 안에 퍼질 때 나는 나의 살아 있는 몸으로서 식물의 질서에 참여하고 있음을 느낀다”(88면),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태초의 하늘에 내지르는 신화神話의 고함처럼 들린다, 라고 나는 쓰고 있는데, 이런 언설은 모두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자의 가엾은 수사일 뿐이다. 두루미의 자유 앞에서 나는 부자유를 느낀다”(100면), “키스는 현재의 폭발이고, 함몰이고, 신생新生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에 속박되지 않는다. 이것이 키스의 본질이다......키스는 천지창조 하는 날 새벽의 시간처럼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고, 종착이며 완성이다. 출발과 종착이 한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207-208면) 등 3부 40여 편의 글로 구성된 이번 산문집에는 김훈표 인장으로 약여한 순도높은 문장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다양한 세사와 속무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로 다기⸱다채롭다. 구체적으로 환경과 생태계 문제, 호수공원에서 마주치는 새를 비롯한 비인간 생명체의 생명 현상에 대한 곡진한 애정과 관심, 산업재해 문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의 소환, 세월호 참사와 자본의 탐욕, 전통 민속 공예와 생활 유물에 대한 단상, 갈수록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대한 성찰, 소통과 치유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과 대립의 불씨로 말썽을 부리기 일쑤인 언어의 오염과 타락 등 한마디로 전방위에 걸쳐 있다. 하지만 <늙기의 즐거움>이라는 글을 들머리로 앞세우는 것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번 산문집에서 주류를 이룰 정도로 도드라지는 것은 세수로 팔순을 지척에 둔 노년의 실존을 반영한 탓이어서 그런지 주로 노화와 죽음에 대한 성찰과 소회이다. 아무튼 이번 산문집의 지배적인 화두는 단연, 노화와 죽음의 문제이다.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43면)로 시작해서 “또 하루가 노을 속으로 사위어 간다”(48면)로 마감하는 「허송세월」에서부터 「말년」, 「재의 가벼움」, 「보내기와 가기」, 「다녀온 이야기」 등은 노화와 죽음을 축으로 화답⸱호응하면서 가족 친족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산문집을 통해 드러나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김훈의 태도나 입장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김훈은 노화와 죽음을, 인간 일반이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 서사의 자연스러운 과정 또는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조건이나 숙명으로 묵묵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그러한 태도나 입장은,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고무호수로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54면)는 진술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런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김훈은 이 세상과의 시절인연이 다하여 때가 오면 의미 없는 연명치료에 의지하는 생에 대한 악착이나 집착을 부리는 법 없이 이 세상 너머의 세계로 훌쩍 건너가고자 한다.
물론, “봄에 태풍전망대에 올랐더니, 먼 산천의 초록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선연했고, 수목의 향기가 시간 속에 녹아들었다. 이런 날에는 나는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싶다.”(97면)거나 “내 옆에 꽃이 피어 있었구나. 이걸 모르고 먼 데를 헛되이 헤매고 있었구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오길 잘했구나”(82면)와 같이 생의 의지나 생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후각은 시들어가는데 못한 일이 너무 많다”(328면)라면서, 노화로 인해 몸의 이곳저곳에 탈이 나면서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예전같지 않은 몸에 대한 자탄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남의 죽음을 문상 다니고 있다. 말더듬증만이라도 온전히 간직하면서 병원 다니고 문상 다니며 여생의 날들을 감당하려 한다”(62면)는 진술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김훈은 언제 닥치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세포의 노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당도하게 될 바로 그 죽음의 순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순명의 태도를 유지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가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라 입고 가자, 관과 수의는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 두자....(51면)라는, 묵직하면서도 발랄한 매력적인 진술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태도 때문이리라.
외람⸱참람되고 시퉁하고 시건방을 떠는 걸 무릅쓰고서 김훈 선생에게 바라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 나이들어 가는 몸을 건사하고 수발드는 일이 여간 번거롭고 수고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말과 글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나는 나의 사적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 독자와 사귀고, 그 사귐으로 세상의 목줄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한다. ”(331면)는 선생의 바람이 오래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