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각 팀당 144게임을 치러야 하는 일정의 2024 프로야구가 그 막을 열었다. 광주를 연고로 하는 기아 타이거즈 팬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그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덕후 수준은 아니지만, 그리고 예전만큼 몰입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월요일을 제외하고서 한 주에 6게임을 치르는 기아 팀의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에는 40대 초반의 젊은 이범호 감독이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기아 타이거즈 팀이 개막 이후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흔히들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에 비유하곤 한다. 이번의 독서 칼럽 대상 텍스트로 김양희 기자의 <인생 뭐, 야구>를 소환하게 된 것도 그 비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5년차 스프츠 기자가 야구를 보며 떠올린 사람들과 질문들’이라는 부제가 명시하는 바와 같이, 이 책은 야구라는 프리즘을 통해 존재와 세계에 대한 김양희 기자의 단상을 톺아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시합 도중 우천이나 아주 심한 미세먼지와 같은 특별한 변수가 아니라면 항상 9회로 진행되는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야구를 인생에다 견주는 그 비유는 크게 틀린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다른 종목들과 마찬가지로 야구 또한 입장이 정반대인 상대편 팀이 있기 때문에 내 마음 같지를 않은데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점은 전체 생애 서사 내내 내 마음 같지를 않은데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타자(他者)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또한 야구는 양 팀이 공수를 갈마들며 9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회 한 회 위기와 기회가 반복되면서 별다른 일 없이 순탄하게 지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야구는 하루하루 매사가 이런저런 일들을 갈무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납뛰어야만 하는 일상으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과 닮은꼴이 아닐 수 없다. 마운드에 서서 1구 1구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투수나 한 타석 한 타석 안타나 홈런을 치기 위해 집중하는 타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투수 교체나 대타⸱대수비 등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감독들의 지략을 보고 있노라면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뒤처지거나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악착의 안간힘을 다하는 우리네 인생의 분투가 겹쳐지면서 새삼 연민을 느끼게 한다.
한편, 야구를 ‘멘탈의 경기’라고들 하는데 ‘일체유심조’라는 불가의 지혜가 아니더라도 우리네 인생에서 마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더라도 야구와 인생은 적지 않은 유비를 이루고 있어 보인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을 앞두고서 혹시 망치거나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서 그라는 선수들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당일 시합에서 결정적인 실책이나 부진으로 경기를 넘겨주는 경우 그 선수는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거의 잠을 못 이루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불펜에서 몸을 풀 때는 ‘언 터쳐블’의 강속구를 ‘쓩쓩’ 던져대던 투수가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기만 하면 심리적인 긴장과 압박으로 인해 ‘베팅 볼 투수’처럼 난타당하는 투수의 경우는 막상 실력을 발휘해야 할 발표회장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발표를 망치고서 자책하는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또한 우리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야구에서도 적지 않게 운이 작용하는 것을 보면 야구와 인생은 여러모로 닮아 있어 보인다. 구체적으로 투수의 경우 단 공 하나만을 던지고서도 승리의 과실을 챙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완투를 하고서도 패전의 멍에를 쓰는 경우도 있고, 타자의 경우 배트 스팟에 정확하게 맞혀도 상대팀의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병살타가 되기도 하는가 하면 빗맞은 게 운 좋게도 팀 승리에 기여하는 안타가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인생에서도 그러한 경우는 적지 않다.
야구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운동도 하면서 돈도 많이 버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더구나 유명 선수들의 경우 인기 연예인들 못지않은 대중들의 관심이나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경기장에서나 티브이 중계를 통해 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 선수들의 모습은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그러한 자리나 자격을 얻게 되기까지 어떤 노력이나 고통 그리고 좌절이 있었는지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전혀 모른다. 그리고 알 도리조차 없다. KBO 리그에서 기념비적인 기록으로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수들도 보면 처음부터 순탄하게 탄탄대로를 걸었던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현재 불혹의 나이 이후에도 기아 타이거즈의 해결사 칭호를 받으면서 ‘클러치 히터’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최형우 선수의 경우는 ‘삼성에서 방출된 이후 막노동으로 소일하던 때가 있기도 했으며’(73면) 두산과 삼성의 좌타 거포로 활약 중인 김재환과 오재일의 경우 두 선수 모두 ‘데뷔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풀 타임 주전으로 뛴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48면) 또한 ‘LG 트윈스의 심장으로 불리면서 영구 결번(33)의 영예를 누리면서 현재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용택 선수의 경우 2018년에는 성적에 대한 부담과 압박으로 인해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으며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내딛는 발까지 계산할 정도로까지 루틴에 강박적이었다고 한다.’(23-26면) 또한 인체의 자연스러운 구조에 역행하는 반복되는 투구 동작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 투수들의 팔은 온전히 정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야구 팬들에게는 ‘어린 왕자’로 잘 알려진 김원형 선수의 경우 오른 팔꿈치는 보통 사람처럼 곧게 일자로 펴지지도 않고 안쪽으로 90도 이상 접을 수도 없고 어깨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아 세수를 할 때도 왼손으로 한다고 한다.’(29-30면)
한편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로 지명될 확률은 10퍼센트 남짓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그 선수들 중에서도 1-2년 사이 프로 데뷔할 확률은 50퍼센트도 채 안 되며 2군 리그를 전전하거나 아예 2군 리드조차 못 뛰고 방출되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167-168면) 타고난 재능과 성실한 노력, 그리고 운도 가세하여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고 해서 그게 계속 순탄하게 보장되라는 법은 없다. 매년 질풍노도의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밀려날 수도 있고 경기 도중 예상치 않은 심각한 부상이나 불의의 사건 사고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해야 하는 불운을 격기도 한다. 또한 잘못된 판단으로 저지른 한순간의 일탈이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어 곤욕을 치르거나 심지어 그게 빌미나 언턱거리가 되어 은퇴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한 경기 한 경기 그리고 한 시즌 내내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긴장과 집중을 유지해야 하는 게 야구인 것처럼 인생 또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이어야 할 것이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새로운 경기가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195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경기에 졌다고 해서, 그리고 오늘 실수로 일을 그르치거나 원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끌탕으로 안달복달하거나 전전반측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 마련. 내일에는 내일의 시합이 기다리고 있고 또 내일에는 내일 감당해야 할 몫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실수하거나 실패했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일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단 하나, 중요한 것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선 성실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파우스트>에서 괴테는 파우스트 박사의 입을 빌려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또 열심히 노력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으리리고’.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육성) 선수로 입단했다가 방출되며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입단 테스트(트라이아웃)를 통해 넥센(현 키움)히어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2014년 KBO리그 역대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 기록을 세우며 정규리그 MVP에도 뽑히는’(47-48면) 성공신화를 쓴 바 있는 서건창 선수(현재는 고향 팀인 기아 타이거즈 소속)의 말로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다. 100퍼센트 가지고는 안 된다. 100퍼센트를 가지고도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분명히 100퍼센트를 발휘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절반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00퍼센트 이상 준비해 놓아야 그나마 100퍼센트에 근접할 수 있다. 당장 내일이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미리 준비했으면 한다.”(121면) 서 교수라는 별명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건창 선수의 말은 후배 야구 선수들에게는 물론 인생에게도 유익한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