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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허원무 씨를 만나다
글 : 이소암 / lsa246@hanmail.net
2024.10.01 10:12:5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사랑의 울타리

 

흔히 재능과 재주는 타고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재주가 없더라도 노력으로써 탁월한 결과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YMCA 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인 허원무 씨는 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충남 금산 출신이다. 아버지는 엄격하셨지만 따뜻한 분으로서 금산에서 3대째 인삼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 또 인삼 전문가로서 TV에 출연하실 정도로 인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분이다. 요즘 한류 열풍으로 인삼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삼재배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초대까지 받으실 정도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를 도와 함께 인삼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홍삼 제품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고 계신다. 그의 어머니는 활달하고 밝은 성격으로 단골이 많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온라인 판매도 하고 계신다.

 

종로인삼사(아버지, 남동생)

 

타고난 재능, 노력으로 키워나가다

 

그는 이러한 부모님 아래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합창단이 창단되어 오디션을 거쳐 단원이 되었다. 합창 노래 중 솔로파트를 도맡아 하여 더욱 노래에 흥미와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예술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집안 형편상 예중에 진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가서도 각 반을 돌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종종 있었고, 처음으로 성악콩쿨에 나가 지역예선을 통과하여 도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중3 때 결국 도대회를 통과하여 본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였다. 그 당시 성악전공을 반대하셨던 그의 아버지께서 성악공부를 한 번 해보라고 허락하신 것도 이 때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으면서 성악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당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레슨비를 충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꿈을 포기할 법했지만 굳은 의지를 더욱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 지원을 받기 어려워져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고3 때부터는 주말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여 어렵게 레슨비를 마련하여 레슨을 받곤 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서 아마 지금까지도 모르실 거예요.”

그는 당시 레슨선생님의 추천으로 원서를 썼던 대전 목원대와 서울 추계예술대 두 군데에 다 합격하여 어디로 진학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서울로 가게 되면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께서 서울에서 공부해야 재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하시며 없는 형편에 서울에 방을 얻어주시고 첫 학기 등록금도 마련해 주셨다. 그는 대학 진학 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장학금을 받아야만 다음 학기에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가장 먼저 연습실에 가서 가장 늦게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그는 매학기 장학생이 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성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학교 오페라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아 공연하였고 대학 졸업 후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꿈을 이어나갔다. 

 

남편 바리톤 문용재

 

성악가 부부의 탄생, 그러나 다가온 시련의 시간

 

그는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4년 연애 후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 역시 성악을 전공하여 연주 전 컨디션 관리나 평소의 관심사 같은 것들이 워낙 잘 맞다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바리톤 문용재 씨이다. 그의 남편은 군산 제일고, 서울대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결혼한 뒤 독일에 있는 뉘른베르크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수석 졸업하였다. 그 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과 바이마르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하지만 허원무 씨가 독일 유학 시절 학교 입시준비를 하는 도중 편도선절제수술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노래하기 어렵게 되어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독일에 오자마자 학교에 합격하고 극장에서 활동했어요. 그런 남편을 열심히 응원했지요.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나도 활동하고 싶은데 너무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매년 조금씩 회복되어 음악활동을 점점 늘려가며 연습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2009년 남편과 독일에 가서 2018년 귀국할 때까지 다양한 오페라와 교회음악회 등 연주 활동을 하였다. 한국에 귀국한 뒤 남편은 군산대학교 예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후학 양성을 하고 있으며 많은 공연활동도 하고 있다. 

“저와 남편 사이에 아들 둘이 있습니다. 첫째는 문사무엘, 둘째는 문다니엘입니다. 첫째는 현재 군산아리울초등학교 전교회장을 하고 있을 만큼 굉장히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주위 친구들을 잘 챙기는 아이입니다. 둘째 문다니엘은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과학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지휘자가 되다

 

그는 독일에 있을 때 우연히 한글학교의 음악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워낙 아이들의 순수함을 좋아하기도 하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오랜 기간 일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한국 귀국 후 여러 기관에서 성악을 가르치다가 리틀트리 선교어린이합창단과 인연이 되어 지휘를 맡았다. 다양한 연주활동을 활발히 하던 가운데 갑자기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합창단 연습과 연주들이 중단되었다. 그 후 군산YMCA소년소녀합창단에서 지휘자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지휘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소년소녀합창단 합창대회

 

 

길잡이가 되어주신 분을 기억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을 기억하거나 추억하지는 않는데, 그에게는 긴 시간이 지나도 마음 깊이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 재학시절 대학원과정을 졸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어주셨던 윤명자 교수님이 늘 생각납니다. 음악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며 응원을 아낌없이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부모님과도 같은 교수님이셨지요.”

 

엔젤스어린이중창단

 

곁에서 내뿜는 향기, 또 다른 향기를 잉태하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시부모님을 통해, 나누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옆에서 직접 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머릿속에도 이런 행복한 미래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곁에 어떤 사람이 머무는지를 살피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곁에는 향기로운 사람들로 차 있다. 허원무! 그가 음악인으로서 이 나라, 이 지역의 또 다른 향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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