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들이 모여 족두리처럼 보이는 풍접초
오래전 파리 베르사유 궁전 뜰을 거닌 적이 있었지. 여름이었고 정원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 어느 곳 하나 시선 뺏기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단다. 이름난 궁전의 정원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곳에서 무엇보다 마음이 간 꽃이 있었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나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족두리꽃으로 더 기억되는 꽃, 바로 풍접초였어. 풍접초는 내 어린 시절 마당에 피던 꽃, 마을 어디나 한 여름을 밝혀주던 꽃이었어. 어른이 되어서는 거의 볼 수가 없던 꽃을 파리 베르사유 궁에서 만나다니, 그러니까 세계의 도시 파리에서 이 꽃이 내게 고향을 보여준 거지.
흰색의 풍접초
언젠가는 내가 일하는 사무실 안에서 풍접초를 키운 적이 있었어. 꽃을 피울 만큼 좋은 환경이 아니니 꽃이 필까 했는데 결국 꽃은 피었지.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나이 지긋한 직원이 내 자리로 오셔서 말씀하시는 거야. 밖에서 꽃이 보이더라고. 어릴 적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이 보여서 와 봤노라고 하며 풍접초를 신기하게 바라보셨어. 그분은 곳 아닌 곳에서 이 꽃을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셨던 거야.
베르사유 궁전 정원 풍접초
파리에서 풍접초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꽃이 우리나라 토종 꽃인 줄 알았어. 내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던 꽃이었으니까. 그런데 풍접초도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귀화식물이란다. 그 나라에서는 거미를 닮았다고 해서 거미 꽃(spider flower)이라고 해.
한 줄기에 하나씩 탐스러운 꽃이 피었구나 하고 다가가보면 그 한 송이는 또 꽃잎이 4장 있고 암술과 수술이 길게 나와 있는 작은 꽃들의 집합이란 걸 알 수 있지. 모여있는 모양이 우리 전통 혼례 때 신부가 머리에 인 족두리 같다고 해서 어른들은 족두리꽃으로 더 많이 알고 있는 꽃이야. 흰색, 붉은색, 연보라색으로 다양한 색을 보여주며 화려한 것 같기도 하고, 수수한 것 같기도 한 풍접초는 알수록 재미있고 아름다운 꽃이란다.
사무실 화분에서 자란 풍접초
풍접초는 한해살이니까 봄에 꽃씨를 뿌려야 해. 만약 작년에 꽃이 핀 자리라면 씨가 떨어져 씨를 뿌리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풍접초가 자라나겠지. 내년 봄엔 할머니 집 마당에 풍접초 씨앗을 뿌려보는 거 어떨까? 마당이 없다면 화분에 심어 보는 것도 괜찮아. 풍접초 꽃은 어쩌면 나비가 되고 싶은 꽃의 마음이 아닐까, 꽃을 보며 너도 꽃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