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 속에서 사랑으로 자라다
한세상, 외길을 걸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특별한 이상이나 목표, 굳은 의지,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나름 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말이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진삼복 씨, 그는 34년째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험하기 이를 데 없다는 보험시장에서 현재 DB손해보험 군산산업단 하나로 지점(군산시 문화로 77 K타워빌딩 4층)의 지점장으로 우뚝 서 있다. 이 하나로 지점은 전라남북도를 통틀어서 가장 큰 지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의 고향은 정읍시 산내면 두월리 사교로 휘문산 자락과 옥정호가 맞닿은 곳으로, 한국전쟁 때 빨치산 전북도당이 자리할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그는 이 오지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었던 아버지는 엄격하셨으나 교육열이 매우 높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7남매를 모두 고등 교육을 시키기엔 한계가 있어,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 졸업이라는 특혜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돌밭을 일구어 칠남매를 키워내실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신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동네는 산악지역이라서 산나물이 많았는데, 왜소한 몸으로 남들보다 산나물을 두 배로 채취할 정도로 일을 잘하셨던 분이다.
자신감으로 리더십을 적립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6학년 전체 졸업생이 38명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시골 초등학교였지만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어요. 또 육상선수 생활을 시작으로 배구, 축구도 수준급으로 잘해서 주말이면 산내면에 있는 각 초등학교와 원정 축구시합을 하여 거의 승리를 거머쥐곤했죠. 그래서인지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자존심도 무척 강한 아이였어요.”
“칠보중학교에서도 실장으로서 네 개 반 중 한 반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컸죠. 그래서 학업에 더 열중하여 상위권 1%를 유지하게 됐고,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고교생활은 무난하게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나 2학년부터 시작된 사춘기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3학년 때 신경성 고혈압과 저혈압을 판정받았어요. 뒷목이 뻐근해지는 통증으로 인해 30분 이상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지나친 긴장감으로 인해 학력고사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해 학력고사는 아주 실망스런 결과를 낳게 되었죠.”
그는 학력고사를 망친 데다가 많은 등록금 때문에 서울 소재 대학은 국립대 아닌 사립대는 진학할 형편이 안 되었다. 또 7남매라는 힘든 가족 구성원 때문에 재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사대에 진학해서 편안한 삶을 살라고 권유하셨지만 뿌리쳤다. 이때 ‘공부에 미련이 남아 있으면 영문과에 진학해라. 길이 많을 것이다’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좇아 못다한 공부에 열중해서 교수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북대 영문과를 선택했다.
무너진 자부심, 도전으로 일으켜세우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방대 진학이 주는 실망감은 나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어요. 자칫하면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앞섰지요. 무엇인가에 몰두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과대표에 출마하여 선출이 되었고, 과 리더로서 바쁜 시간 속으로 저를 밀어넣었죠.”
그가 대학 4학년, 취업시기에는 기업체 인기가 많아서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는 은행원, 공무원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기업이 최고라 생각했다.
“가족 중 혼자만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채무가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경제적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도전적이고 연봉이 높으며 또 손해보험업이 장기적으로 성장산업임에 확신을 가져 기업체 입사를 선택했죠. 사실 보험업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기였죠.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아버지는 저의 직업 선택이 무척 못마땅했을 겁니다.”
풀피리는 꺾여도 부는 자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보험회사의 특성상 매달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장 환경을 예측하고 영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한 수치와 싸움 속에 긴장상태로 근무해야 하는 영업관리자의 스트레스는 타직종에 비해 높고 업무 강도도 세다. 특히나 신인설계사를 시험에 합격시키고 교육시켜 성장시켜야 하는 증원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12년 전에 회사 감사로 인해 모시던 직속상사가 징계면직을 받았고, 부하 직원이던 저도 1개월 감봉을 받아서 진급이 누락된 것입니다. 상사의 처벌 강도에 비하면 부하 직원인 저의 처벌은 경미한 겁니다. 하지만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더욱이 감사 수행자의 기준이 지금처럼 객관적이지 않았고, 친분 정도에 따라서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감사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보람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60대 초반의 남성 설계사가 입사 후 활동을 망설이고 있을 때 ‘보험은 필요한 보장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가입시키라’라는 나의 말을 믿고 배우자의 보험을 가입시켰어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배우자가 암 진단을 받게 되어 암수술, 항암치료까지 충분히 받게 되었죠.”
정도正道만이 살 길이다
그의 인생관은 ‘규칙이나 법을 잘 지켜 마음 편안한 삶을 살자’이다. 이것은 부모님의 엄격한 가르침의 영향인데, 사회생활하면서 거짓말을 못해 손해를 본 적이 많았다.
후회는 없다
“어려서부터 자신감으로 리더십을 쌓았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 같습니다. 남들이 도전을 꺼리는 보험업에서 다이나믹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고 원하는 성과도 이루었기에, 이제는 조금 느리지만 여유로운 생활도 하고 싶습니다. 책도 맘껏 읽고 싶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보험 관련 책을 쓰며 봉사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청정한 그의 목소리, 휘문산 자락의 푸른 풀내음과 옥정호의 맑은 물빛이 어우러져 4월을 먼저 부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