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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임나왕국을 아느냐?_박성구의 삼한사(三韓史)이야기
글 : 온승조(칼럼니스트) / gsforum@hanmail.net
2011.06.01 00:00: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2009년 삼한사(三韓史)를 저술한 박성구 대야초등학교 교감선생을 만나 삼한사의 주요내용을 간략히 소개받는 시간을 가져봤다.  한반도의 역사의 그 중심에 우뚝 선 전라도의 위상을 다시금 조명하고, 임나왕국의 중심으로서 군산지역을 재구성한 ‘삼한사’는 군산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견해인 만큼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간략한 삼한사(三韓史)의 주요내용이란

   삼한사란 삼한이라 불렸던 마한, 진한, 변한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를 소개한 책이다.  
   변한은 가야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하류인 경상남도 지역으로 비정되어 왔다.
   변한은 가야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하류인 경상남도 지역으로 비정되어 왔다.​

 

그러나 ‘삼한사’에는 삼국사기가 우리의 역사를 펼치는 기원전 1세기 중엽을 기준으로 하여 삼한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비정한다.  이때는 마한의 부속국이었던 백제가 융성해지면서 마한과 백제가 분리되어가며 마한의 영역이 축소되는 시기로 삼한의 영역이 좁아진다.  삼국유사가 삼한의 강역을 사방 백리로 기록할 때이다.  마한은 금마를 중심으로 한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땅으로 익산, 군산, 충남 강경에, 진한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땅으로 전주, 김제, 완주, 임실, 순창, 남원, 무주, 진안, 금산에, 변한은 동진강 이남의 땅으로 부안, 고창, 정읍, 전남 영광에 비정한다.  이는 삼한을 전라북도 지역으로 한정한 것으로 종래의 학설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삼한사’는 삼한왕의 땅이며, 진한의 중심으로 활약해 온 삼국사기의 우두성(또는 가야)을 전라북도 전주의 동고산성으로 고착하였다.  전주를 중심으로 한 진한은 기원전 1세기의 중엽 해모수 시대에 이르러 대내외적으로 국토를 확장하여 신라(B.C. 69년)와 야마토(B.C. 60년), 고구려(B.C. 37년), 동옥저, 동예를 세운다.  신라의 진한6부란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진한(삼국사기는 우두주라 함) 부족이 이주하여 세운 나라였다.  그리고 신라의 박혁거세 왕과 일본의 진무천황 그리고 고구려의 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한다.  해모수를 진한의 왕으로 규명하는 대에는 해모수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버지이며,  고구려가 기자조선에서 발흥한 내용을 근거하였다.  삼국유사가 삼한의 강역을 사방 4천여 리였다는 기록도 해모수 시대에 삼한이 최고로 강성하였음과 우리 역사에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국왕이었음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  위의 해모수와 기자조선에 대해서는 지면상 제한으로 상세하게 접하기 어려운 관계에 있어
‘삼한사’를 참고하면 좋겠다.

 

‘삼한사’를 정리하면,  우리 역사의 장을 열었던 나라들은 고려를 제외하고 삼한에서 발흥하였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기자와 단군조선 계열이 결합된 나라이다.  신라는 박씨와 석씨(야마토의 기자계열)가 기자조선의 계열이며, 김알지는 석씨와 단군계열이 결합된 나라이다.  가야의 김수로는 위만계열이고,  백제는 초기 주몽의 계열이었다가 중엽 근초고왕 시기에 단군계열로,  후기에는 기자계열로 나라가 이어왔음을 살필 수 있다.  이후의 고려는 단군계열이었으며,  조선(전주 李씨)은 기자계열이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위만에 쫓겨 내한하나,  후손이 없어 기자의 법통을 잇지 못한다.  이후 기자의 직할국이었던 삼한은 기자의 법통을 다시 이어 제2의 기자조선으로 전라북도에서 그들의 세력을 유지한 나라였다.  그렇기에 전라북도는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살아 숨 쉬는 기자의 땅이며,  기자의 산실이다.  전라북도를 뿌리로 하여 일궈진 우리문화는 고대황하문명을 일군
하 · 은 · 주나라의 문화를 전승하여 발전시켜 온 고장이라는 점이다.  삼한사의 또 다른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바로 회현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임나왕국(월지국)이었다는 주장이다.

 

 

군산은 467년간의 임나왕국 

박성구 선생은 저서 ‘군산시고대지명사연구’에서 군산이란 지명을 중세국어 ‘모    미’로 하여 ‘두 물(강)이 모아지는 곳’으로 해석한다.  이를 삼국사기에서 ‘두 물(강)의 합수지’란 뜻으로 사용된 원산(圓山,  발음 ‘두루미’)에 연계하고, 이와 동음인 ‘주류성’과 월지국을 다시 연계하였다.  서기 199년 목지국(무엽산과 마한의 동일어)이었던 진한은 고구려의 자치령이었다.  고구려는 태조대왕 4년(56) 이후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진한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때의 고구려는 형제의 난과 만주 공손씨와의 대립으로 대내외로 혼란이 심했다.  이런 정세로 고구려는 자치령 진한을 돌볼 수 없었던 틈을 노려 신라는 공손씨와 연합하여 진한을 점령하였다.  이에 앞서 백제와 야마토가 신라의 서진을 저지하였으나 신라와 공손씨의 공세를 막지 못한다.  신라의 점령으로 목지국의 유민은 마한의 원산을 빌려 서기 200년에 월지국을 세운다.  월지국이 군산시 회현면이다.  이후 월지국은 삼한을 지배해 온 진한의 목지국을 대신하여 제2의 진한으로 기자를 잇는 한민족의 종주국이란 역할을 유지한다.  이곳이 ‘왕의 나라’를 칭하는 ‘임나’이다.  임나는 200년에 왕국을 재건하고 667년 삼한, 백제, 야마토,  고구려가 연합하여 신라와 당나라군에 항쟁하였으나 주류성(군산시 회현면 대정리 회미고현성) 싸움을 끝으로 멸망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오늘날 임나가 경상남도 김해로 김수로가 건설한 금관국(또는 남가야)에 비정되었을까?  경상남도 창원의 봉림사터에 있다가 경복궁 옥외에 전시되어 있던 ‘진경대사비문(眞鏡大師碑文)’에 임나왕족의 기록이 발견된다.  ‘진경대사비문’의 진경대사(853~923년)는 금관국 사람으로 그의 선조가 임나왕족으로 원조를 흥무대왕(김유신)이라 전한다.  이 비문은 임나에 대한 내용이 풍족한 관계로 오늘날 임나를 김해로 비정하게 되는 사료이다.  그런데 오류는 여기에 있었다.  김유신이 흥무대왕으로 추봉한 것이 삼국사기에서는 신라 흥덕대왕(즉위 826~835년) 때라 하고, 삼국유사는 경명대왕(즉위 917~923년) 때의 일로 기록한다.  진경대사의 먼 조상이었던 김유신이 흥무대왕으로 추봉된 시기에 그가 생존하였던 관계로 그의 먼 조상 김유신이 임나왕이었던 일은 진경대사가 살았던 이전의 일일 수밖에 없다.  김유신의 행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앞서 삼한을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였다.  삼국사기 신문왕 편에도 “선왕 춘추는 자못 어진 덕망이 있었고, 더구나 생전에 어진 신하 김유신을 얻어서 한 마음으로 정사를 하여 삼한을 통일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경대사비에 진경대사의 선조가 임나왕족이었다고 기록한바, 이런 사실은 사료에 전해지지 않지만 진경대사비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사건을 찾게 된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김유신에게 삼한을 봉토로 주었으며,  그를 삼한의 왕으로 봉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김유신이 임나의 왕이 되었으며,  그의 후손이 임나왕족이 되었던 것이다.  임나를 경상남도 김해로 비정한 대에는 삼한이라는 해석의 부족이 있었다.

 

三 韓 史

우리문화가 중국의 한족과 융화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발전시켜올 수 있었던 기반은 삼한에 있었다.  만주지역의 초기 기자조선이 무너지고,  그들의 직할국이었던 삼한에서 진한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에 정착하고 있던 토착민과 단군 그리고 위만계열의 족속과의 대립 속에서 사방 4천여 리를 건설한다.  여기에는 대제국을 건설한 해모수의 타협과 협상 그리고 개척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영 · 호남마저 소통이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전라북도가 일궈낸 삼한에서 대제국을 건설한 해모수의 정신을 이어 나가는 길만이 우리민족의 제2성장기를 가져오리라고 본다.‘삼한사’의 저자 박성구 선생은 ‘삼한사’를 삼국사기 및 여러 사료 가운데 삼한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해독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대중화되기 어려운 책이라는 점에서 아쉬워하였다.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읽기 쉬운 책을 쓰고 싶어서 최근에는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편년체에서 기년체로 바꾸는 작업 중에 있다고 현재의 활동을 전했다.  ‘삼한사’가 백제의 모습을 보다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재편되어 군산 시민에게 군산의 역사적 의의를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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