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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정치, 행복한 국민
글 : 이진우 /
2021.01.01 14:57:4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존경받는 정치, 행복한 국민

 

 

얼마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이 화제가 됐다. 베를린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끌며 장을 보는 모습이다. 수행원 없이 혼자 쇼핑하는 그를 누군가 찍어 페북에 올렸다. 여느 시민과 다를 바 없는 소탈한 모습에 많은 이들은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다. 마르켈의 소박한 행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는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다. 가스, 수도, 전기, 전화요금을 모두 직접 부담한다. 부자 나라, 독일을 이끄는 총리가 보여주는 소박한 행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 경제는 메르켈 집권 이후 순풍이다. 독일은 EU에서 맏형 노릇을 하며 유럽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연간 수출만 1,550억 달러에 이른다. 메르켈은 2005년 이후 16년째(4) 독일을 이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중요한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소탈한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메르켈은 같은 옷을 번갈아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이런 메르켈을 독일 국민들은 무티(엄마)’로 부른다. 국민들이 보내는 최고 찬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정치인들은 어떤가.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를 돌아보자. 정장차림 국회의원과 보좌관, 관료들로 국회는 북새통을 이뤘다. 그런데 국회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권위적이다. 반듯한 가르마, 검은색 정장, 검은색 승용차 일색이다. 소탈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유럽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말해봐야 부질없다.

 

얼마 전 2030 초선의원 두 명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둘 다 중형 승용차와 카니발 승합차를 탄다고 했다. 지역구 일정을 소화하려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역행사를 쫓아 다녀야 하는 우리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됐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의정활동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젊은 나이에 권위적인 문화부터 배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서민이 처한 현실은 헤아릴까. 솔직히 회의감이 들었다. 위임 받은 권력일 뿐인데.

 

피감기관에 대한 갑질도 여전했다. 21대 첫 국정감사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국회사무처 공무원과 보좌진 또한 갑질 대상이었다. 사무처 공무원을 하급자로 여기고, 보좌진은 파리 목숨취급하기 일쑤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보좌진이 1명이라도 나간 의원실은 130곳이다. 무소속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은 각각 6, 5명이 그만뒀다. 반년도 안됐는데 절반 이상 그만둔 셈이다.

 

보좌진 급여를 돌려받아 편법 전용하다 사법처리 되기도 했다. 이군현 전 의원(20)은 이런 혐의로 징역 2,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정작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임면권을 무기로 한 갑질이다. 보좌진을 동료라고 생각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일 교수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여러분과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로서라고 한다. 이런 탈권위주의가 우리 국회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정계를 은퇴한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 그는 소박하고 파격적인 정치행보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재임 기간(2010~2015)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그를 상징한다. 취임 당시 재산은 현금 1,800달러(200만원), 1987년산 폭스바겐 비틀 한 대, 허름한 농가, 그리고 농기구 몇 대가 전부였다. 그리고 재임 기간 중 월급의 90%를 기부했다.

 

또 대통령 관저는 노숙자, 별장은 시리아 난민과 고아들에게 내주었다.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대통령 관저까지 낡은 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로 살았다. 그가 재임할 때 우루과이 경제는 연 평균 5.7%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무히카를 국민들은 페페(아빠)’라고 부른다. 그는 취임 당시(52%)보다 높은 지지율(65%)을 받고 퇴임했다. 정계를 떠났어도 국민들 가슴에 행복한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권위주의에 찌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을 되풀이하는 우리 정치에 메르켈과 무히카는 좋은 거울이다. 무히카는 수 십년간 내 정원에는 증오를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리도 이런 정치인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을 무티(엄마)’, ‘페페(아빠)’라고 부르는 독일, 우루과이 국민들이 부럽다.

 

탈권위주의, 소탈한 행보, 정치보복이 아닌 관용. 우리가 기대하는 정치, 정치인이다. 어느 기자가 메르켈 총리에게 물었다. “기억하세요. 10년 전에도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내 책무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 모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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