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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하강한 선녀가 따로 없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2.05.01 11:22:5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문씨중종 가옥(가운데 큰 기와집)이 있는 남내마을의 1920년대 초여름 풍경. 
문씨중종 축하연이 있는 날 앞산에서 찍었다고 한다. 

 

봄 햇살이 따사로웠던 지난 7일(토) 오전 11시, 전통혼례 체험행사가 열리는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 대봉산(大鳳山) 자락 남향에 자리한 문(文)씨 종중가옥 앞마당은 부모를 따라온 꼬마에서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구경꾼들로 시끌벅적하다.  문씨 중종가옥(1400여 평)은 고종 23년(1886) 문한구의 처 제주 고(高)씨가 콜레라로 하루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여의는 슬픔 속에서도 훗날 거부(巨富)가 되어 1908년, 1911년 흉년 때 가난한 친척과 마을 주민들을 구휼하며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그에 보답으로 마을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으며, 2010년 후손들이 군산시에 기부해서 지금은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좌)진포문화예술원 풍물패가 마당에서 풍물놀이를 신나게 펼치고 있다. 

(우)교배상이 차려지고, 오방장 차일을 쳐놓은 초례청 모습  

 

남내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40분. 마당에 들어서니 구수한 멸치국물 냄새가 코끝을 훔치고 달아난다.  처마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청사초롱과 음양오행 문화와 조상의 사상이 담긴 오방색 차일, 그리고 풍물패가 펼치는 풍물놀이는 곧 시작될 전통 혼례식 분위기를 돋운다.  전통혼례를 치른다는 소문에 마을 할머니들은 연지곤지 바르고 수줍어하던 새색시 때 추억이 생각나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마당으로 모여든다.  대문 앞에서는 남색 조끼에 초립을 쓴 건장한 가마꾼 네댓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신부를 기다린다.  마당에 차려진 교배 상에는 부부를 상징하는 예쁜 표주박 두 개와 홍초와 청초가 켜져 있다.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長壽), 순결(純潔) 등을 상징하는 소나무에는 홍실이, 불의나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사람'으로 군자의 행실에 비유되는 대나무 가지에는 청실이 걸려 있다.

 

'결혼'보다 '혼인'이 옳은 이유


 

전통혼례 절차와 전안례에 대해 설명하는 안태석 집례. 

 

전통혼례는 오전 11시 15분, 안태석(67·성균관유도회 전북본부 총무국장) 집례의 거례선언(擧禮宣言)과 함께 시작된다.  안태석 집례는 시작에 앞서 혼례식 절차와 혼인의 의미가 적힌 홀기(笏記)를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여 읽어내려 간다.  혼인(婚姻)이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혼(婚)은 남자가 장가든다는 뜻이고, 인(姻)은 여자가 시집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결혼'이라 하기보다 '혼인'이라 해야 옳다고 한다.  음과 양이 합해 삼라만상이 창조되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을 혼인이라 한다.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짝을 찾는 순수한 인정에 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을 혼인이라 했다.  혼인은 반드시 이성 간의 결합이어야 하며 적령기에 달해야 하고, 근친의 복상 중에는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혼인에는 '평등정신'과 '삼서정신'이 깃들어 있다.  평등정신이란 남녀는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서로 동등한 입장으로 남자가 높으면 여자도 높아진다는 뜻.  삼서 정신은 신랑 신부가 혼인 전 집에서 부모에게 은혜를 기리는 '서부모례(誓父母禮)', 음양의 상징이자 창조의 절대자인 하늘과 땅에 불변의 부부사랑을 서약하는 '서천지례(誓天地禮)', 서로 배우자에게 서약하고 상대방 서약을 받아들이는 '서배우례(誓配偶禮)'를 일컫는다.

 

신랑이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

이날 혼례는 신랑·신부가 2011년 11월 신부 친정(필리핀)에서 례를 올렸기에 부모의 교훈을 받고 서약하는 의식, 즉 자기를 있게 해준 조상과 부모에게 은혜의 무거움을 기리며,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서약하는 '서부모례'는 생략하고 전안례(奠雁禮)부터 시작됐다.  "오늘 신랑 신부는 서부모례를 각 가정에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치르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해서 오늘은 전안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이영순 여사의 둘째 아들 김영주(43) 군과 로헬리오님과 밀라 여사의 여섯째 딸 저너린 사이아(25) 양의 혼인예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랑 입장해주세요." 

 

 

신랑이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를 올리고 있다. 

 

풍물패를 따라 기러기 아범과 함께 입장한 신랑은 두 집사(수모)의 도움을 받으며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를 올렸다.  기러기는 새끼를 많이 낳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정절을 지키는 새로 알려졌다.  때문에 전안례는 신랑이 신부에게 자손 번창과 부부화합, 백년해로 등을 다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다.  전안례가 끝나고 신부가 입장한다.  집례는 하객을 향해 어여쁜 신부가 꽃가마를 타고 입장을 하고 있다며 힘찬 박수를 보내달라고 당부했고, 너른 마당에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진다.  부모 손을 잡고 있던 꼬마들은 초립을 쓴 가마꾼들이 신기하게 보이는지, 가마를 향해 달려간다. 

 

 원삼족두리 차림의 신부가 수모의 도움을 받으며 가마에서 내리고 있다. 

 

원삼족두리 차림의 신부가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에서 내리자 한 할머니가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가 따로 없네"라고 감탄한다.  토방에 앉아 구경하던 다른 할머니들도 곱게 화장한 신부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부모가 참석하지 못한 관계로 양측 수모가 교배상 앞으로 가서 촛불을 밝힌다.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교배례'


 

교배례를 올리는 신부. 수모로부터 술잔을 건네받고 있다. 

 

신랑 신부의 첫인사 의식으로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맞절하며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교배례(交拜禮)와 부부가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며 하늘과 땅에 영원불변하는 사랑을 서약하는 서천지례(誓天地禮)가 이어진다.  신랑은 표정관리 하느라 진땀을 빼고, 신부는 '혼례를 올리면서 웃으면 첫딸을 낳는다'는 옛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서천지례 때 신랑 신부는 술잔을 눈높이로 받들어 올려 하늘에 서약하고, 아래로 내려 바닥에 내려놓고 땅에 서약한다.  신랑 신부가 술과 안주는 받되 마시거나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하늘과 땅에 서약하는 의식이지 인간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신랑 신부가 서로 배우자에게 서약하고, 상대방 서약을 받아들이는 서배우례(誓配偶禮)는 서천지례와 달리 양쪽 수모가 청실과 홍실을 손목에 감아 걸치고 따라준 술잔을 가슴높이만큼 올린다.  이유는 하늘과 땅이 아닌 배우자에게 서약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라는 것.

 

신랑의 오른쪽 수모가 근배상에 있는 소나무 가지의 홍실을 왼 손목에, 신부의 오른쪽 수모가 대나무 가지의 청실을 오른 손목에 감아 걸치고 술을 따라서 신랑 신부에게 전달하는 이유는 그 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신랑 신부가 상대방의 서약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수모를 통해 술잔을 교환한다.  집례가 "신랑 신부는 술잔을 받아 가슴 높이로 받들어 올려 배우자의 서약을 받아들이고 남은 술을 모두 마십시오.  그러나 서약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안 마셔도 됩니다"라고 해서 잔치마당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부부 화합을 의미하는 '합근례'


 

흐뭇한 표정으로 표주박 잔의 술을 마시는 신랑.

 

끝으로 남녀가 따로따로 태어났다가 다시 짝을 만나 부부가 됐음을 선언하는 합근례(合巹禮)를 올렸다.  합근례는 표주박 잔에 각각 술을 부어 마시는 의식으로, 박은 원래 하나였는데 두 개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해지므로 세상에 맞는 짝은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이날 혼례는 합근례를 마친 신랑·신부가 중앙으로 나가 허리 굽혀 하객에게 인사를 올리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모두 마치고, 군산 '알콩달콩 영농조합법인'(대표: 문정식)에서 준비한 잔치국수와 음식을 나눠 먹고 떡메치기 체험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지금까지 40회 정도 집례 경험이 있다는 안태석씨는 "전통혼례는 우리의 순수한 생활예절이자 생활방식으로, 최근 젊은이들이 관심과 호응이 높아져 기쁘다"며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냉수 한 대접을 떠놓고 치렀을 정도로 우리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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