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인간 승리를 쓰다
작은키 연합회 회장
‘현 건축사사무소’ 김현수 건축사
글 오성렬(主幹)
절망을 이겨낸 성장기
김현수 건축사, 그는 익산군 춘포면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부께서는 6.25때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고 경찰관이었던 부친과 보건소 간호사로 근무하는 모친 밑에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첫돌이 지난 직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설사가 시작되면서 몸이 마르고 머리는 커지며 등이 굽는 괴질로 기형의 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에 매달렸으나 호전의 기미가 없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모친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심 속에 눈물과 한숨의 나날을 보내며 다니던 교회도 발을 끊었다. 이후 어떤 약, 어떤 치료법이 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설사가 멈추고 살이 조금씩 차오르면서 고개를 쳐들 수 있게 되고 남보다 늦은 3살이 지나면서 조금씩 걷게도 되었다.
7살까지 시골에서 자라던 그는 8살이 되어 군산으로 발령을 받은 부친 따라 이주하게 되었고 군산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작고 왜소한 관계로 1년을 휴학, 다음 해에 동생과 같이 학교에 다니게 된다. 책가방은 늘 동생이 들고 다녔고 대신 숙제를 도맡아 해주는 상부상조의 형제애를 보이며 그는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군산중학교를 거쳐 군산고등학교에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입학한 그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학창생활을 했으나 사춘기가 되면서 남들과는 너무도 다른 자신의 신체로 인해 비관에 빠지게 된다. 이로써 성적은 100등 아래로 급전직하 했고, 공부보다는 교회생활에 빠져 마침내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3학년 담임이었던 류경수 선생님과 황삼인 선생님의 관심과 격려로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열중하게 되는데 그 은사님들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껏 잊지 못하고 있다.
건축설계사의 꿈을 쫒아
그는 키가 140cm가 채 안 되는 왜소증 장애인이다. 그러한 까닭에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명성 있는 대학보다는 어떤 학과를 선택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한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약학대학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비교적 힘들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지만 그마저도 난관에 부딪쳤다. 실험실습이 불가능하고 특정인을 위해 실험받침을 맞춰줄 수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이유였다. 그러면서 전공을 바꿀 것을 권유받게 되는데 의약계열이 아닌 다른 학과를 가면 장학금까지 지급하겠다는 얘기에 최종 택한 것이 건축공학과였다.
그의 대학생활은 고교 선배이자 스승인 원광대학교 건축공학과 김광서 교수의 배려와 지도편달 덕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며, 특히 3학년 재학 중에는 도립 미술대전에서 우수상까지 수상하는 등 자긍심을 북돋으며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 1급 기사 자격증은 물론 조경기사, 소방기사 등에 도전,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고 군산 D건축사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끝에 1999년 12월, 드디어 건축사 자격을 취득, 현재의 사무소를 개설하기에 이른다.
건축 설계에 대한 소신과 철학
그는 건축사로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그가 분명한 어조로 들려준다. “세계적 건축가인 르꼬르뷔제가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했는데 저는 100%공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건축물을 만들며 그 건축물 안에 몸을 담고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지요. 어떤 이는 비뚤어지고 모나게, 어떤 이는 선을 베풀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삶이 어떤 형태냐에 따라 삶이 풍요로워지기도 하고 반목과 질시로 다투기도 합니다. 조금은 비워진 그릇에 누군가가 더 나은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삶, 이것이 저의 건축 철학입니다. 현재 제 아들이 저와 같이 건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애가 제 그릇 안에 제가 못 다 이룬 꿈을 채우고, 덜 다듬어진 그릇을 잘 다듬어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건축사가 아니면 절대 설계도면에 날인할 수 없으며 인허가를 득할 수 없습니다. 10년 넘게 공부하고 어렵게 얻은 자격임에도 믿지 않으시겠지만 현실적 상황은 제살 깎아먹기가 만연한데다가 처우도 열악한 편이어서 제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소신과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려울지라도 앞으로 전도가 양양한 우리의 후배들은 합당한 대가를 받고 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향후로도 10년 정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만큼 앞으로는 전통 건축과 한옥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수입보다는 따뜻한 건축, 편안한 건축,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를 담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신념에 차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 할동
그는 국제라이온스클럽 회원이자 지역 부총재로 활동하면서 다문화가정 결혼식과 결손가정 아이들의 돌봄, 그리고 다자녀 집짓기 후원활동도 펼쳐왔다. 더불어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어린이들,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산행 활동을 비롯하여 한국작은키연합회 회장으로서 같은 처지의 이들을 위한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상 경력
2010 전라북도지사상
2011 군산시 아름다운 건축문화상(동상)
2017 군산시장상
주요작품
-김제 벽골제 민속놀이 참여 체험장
-전주 한옥마을 내 완판본 문학관
-여산 하예성 노인복지시설
-개복기도원 명석교회(사랑의교회), 성암교회, 수송동교회, 신흥교회 등
-수송동 청담빌딩, 삼성로얄병원, 메디베베병원 등
-군산철새조망대, 차량관리사업소
-군산라마다호텔, 동경모텔, 비응도 에플트리호텔 등 다수
현 건축사사무소
군산시 조촌동868-8 송학빌딩3F
T.063)451-9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