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斷想>
‘식자들도 헷갈리는 갈팡질팡 우리말’
글 오성렬(主幹)
올해는 훈민정음 창제 574주년을 맞는 해이다. 문자의 조합에 있어 세계적으로 그 과학적 우수성이 입증된 한글, 이를 통해 우리의 조상들은 어려운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쉽고 편리한 표기 방식을 갖게 되었으니 이를 창안한 세종대왕의 그 혜안에 놀라울 뿐이다.
말과 글은 본시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있던 말이 사라지기도 하고 없던 말이 생기도 하는 법,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어문 역시 수백 년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변천을 거듭함으로써 옛 선인들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 특히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조합된 말을 듣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람은 겉모습을 아무리 고급스럽고 근사하게 꾸미고 타인을 흉내 낸다 해도 근본적으로 타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개인적 특성이 있으니 바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라 할 수 있다.
누구든 그가 사용하는 말투는 그 당사자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간단한 말투 하나만으로도 어느 지방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란 사람인지, 교육과 지성의 수준 등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연령대의 사람인지 판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정확한 단어와 품격 있는 어휘를 구사하는 것은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랄 수 있다하겠다.
자연계에서 모든 생물은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듯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용어)역시 지난 그 시대상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고 있어 이에 적응하는 것으로 지적 수준과 연령대가 가늠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변화에의 적응이 빠른 경우 새로운 용어에 대한 이해와 구사력이 뛰어나 대체로 나이에 비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로 작용하기도 하거니와 그런 점에서 시대에 뒤떨어져 이미 용도 폐기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 등은 가급적 지양해야 될 일이다.
또한 아직도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 시대 쓰이던 일본어, 예컨대 스끼다시(식사 전 곁들이 음식), 와사비(고추냉이), 다대기(다진양념), 노가다(막노동), 소바(메밀국수), 요지(이쑤시개), 오뎅(어묵), 기스(흠,상처), 겐세이(견제), 야지(놀림)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고 채소(菜蔬)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야채(野菜)라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미 25년 전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국민학교라 한다거나 베트남을 월남, 독일을 서독, 러시아를 소련이라 하는 등 좀처럼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그가 아무리 옷을 젊게 꾸며 입었다 해도 의식은 이미 지적 욕구가 상실된 노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진입해선지 언제부턴가 우리말과 외국어가 접목된 이상한 용어가 무분별하게 생산되어 기관, 단체명이나 상호 등에도 남용됨으로써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글이라는 독보적 문자를 가진 나라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외국어를 접목해야만 유식하거나 세련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언어사대주의의 한 단면일 뿐으로서 예컨대 00테크, 00아트, 00케어, 00커뮤니티, 00피트니스, 00크리닉, 00키즈, 00헤어, 00스파 00텔 등등은 다 예쁜 우리말이 있는 것들이다.
일상에서 대체로 잘 못 쓰고 있는 말들을 보면 극히 상식적임에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거나 일부 식자층에서도 습관을 떨치지 못하고 쓰는 경우도 많은데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가르치다/가리키다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한다는 뜻으로, ‘그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따위로 쓰이는 말로서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르치다’가 아니라 ‘가리키다’로 쓰는 경우를 보게 된다.
‘가리키다’는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집어서 보이거나 알리다는 뜻으로서
가르치다와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서/이 자리를 빌어서
식장이나 행사장에서 연사로 나온 사람의 인사말 중에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데 자리는 비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리는 것이므로 ‘이 자리를 빌려서...’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되는데 아직도 ‘빌어서’라고 쓰는 일이 빈번하다.
삼가다/삼가하다
‘~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는 어떨까, 삼가하다는 ‘삼가다’가 표준어로서
~을 삼가시기 바랍니다로 써야 맞다. 따라서 ‘삼가하고는’ ‘삼가고’, ‘삼가 할 것’은 ‘삼갈 것’으로 표기해야 어법에 맞다.
설레다/설레이다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릴 때 가슴이 설레인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설렌다의 잘못된 표현이다. 따라서 설레임은 설렘, 설레여서는 설레서로 써야 된다.
날아가다/날라가다
‘날아가다’는 공중으로 날면서 가다라는 말로 바람에 모자가 날아갔다 등으로 쓰는데 이를 모자가 날라갔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날다와 나르다는 엄연히 쓰임새가 다르며 나르다는 물건을 나르다 따위로 쓰는 말이다.
찌개/찌게. 육개장/육계장. 무/무우
극히 대중적 음식인 ~찌개를 표기함에 있어 이를 ~찌게로 표기하거나 육개장의 경우 육계장이라 하는 등 엉터리 맞춤법이 아직도 눈에 띈다. 이는 예전에 개고기로 장국을 끓여 먹던 시절 일부 양반층 등 개고기를 기피하는 사람 사이에서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끓임으로서 육개장이라 한 것으로 육계장은 전혀 출처 불명의 말이다. 또한 무우는 예전 용어로서 현재는 ‘무’가 표준어이며. 이밖에도 잘못 쓰이는 말들로 ‘삼수갑산’을 산수갑산, ‘양수겸장’을 양수겹장, ‘복불복’을 복걸복, 소파(Sofa)를 쇼파로 말하는 것 따위를 들 수 있다.
신조어
최근 10여년 사이 특히 청소년층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통용되고 있는 신조어의 경우 재미있어서, 말이 간결하다해서 만들어지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신조어에는 은어, 비속어, 그리고 출처가 어디인지조차 불명확한 단어로 조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신조어는 온라인을 무대로 유튜브, 트위치 등 주로 학생들이 많이 접속하는 방송에서 범람하면서 점차 우리 일상생활로 번져들고 있는데 인성과 가치관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변형된 신조어를 먼저 접하게 됨으로써 맞춤법이 틀리는 건 예사인데다가 신조어 안에 내포된 부정적 뜻을 먼저 알고 사용하는 게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신조어는 초기만 해도 대충 뜻의 짐작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들도 많았으나 최근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억지스럽고 장난스럽게 조합된 말로 진화하고 있어 이러한 행위는 우리 한글에 대한 자해적 폭력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최근 사용되고 있는 신조어의 몇 가지 예만 들어보면 금수저(부유하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유로운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흙수저(가난한 부모를 둔 어려운 가정의 사람), N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에다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꿈, 희망, 그리고 삶의 가치까지 포기한 20~30대 세대), 헬조선(열심히 노력해도 살기 어려운 한국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 캥거루족(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 이케아세대(교육수준이 높고 스펙이 뛰어나지만 불안정한 고용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78년생 전후의 세대. 가격대비 좋은 품질의 가구 이케아에 빗댄 말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등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 문송합니다(기업에서 이과(理科)의 취업문은 넓은 반면 문과(文科)는 기피되는 현실을 빗댄 말, 즉 문과여서 죄송하다는 뜻), 욜로족(You Only Life Once의 첫 글자를 딴 말로 인생은 한 번 뿐이므로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뜻),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즉 외모보다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내적 매력을 가진 남자), 뇌순남(지식이나 교양은 다소 부족하나 순수하고 인간미가 풍기는 남자), 뇌피셜(뇌와 Official(공식입장)의 합성어로 자기 머리에서 나온 개인적 생각이 마치 공인된 것처럼 말하는 행위), 나심비(나의 심리+가성비, 즉 자신이 심리적으로 만족할 수 있으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소비한다는 뜻), 혼바비언(혼자 밥먹는 사람),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짐),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는 말로 눈치 없이 굴지 말라는 뜻)등도 보편화 된지 오래다.
이밖에도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만 입음),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멋의 메이크업이나 의상 트랜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핑프(자꾸 물어보는 게으른 사람) 등등 언뜻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도 범람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가졌다는 나라에서 자기 나라말을 정확히 배우고 구사하려는 노력보다는 한낱 장난거리로 삼는 것은 분명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자존감을 내팽개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하겠다. 필자는 과문함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자기나라 말에 외국어를 섞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쓰느라 애쓴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확한 단어, 주어진 상황과 격에 맞는 어휘를 선택하여 말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말이 너무 빠르거나 격에 맞지 않는 말과 습관적인 비속어, 자기 개인의 얄팍한 신념이나 경험이 절대적인 것인 양 우기는 태도, 남의 말을 경청하기 보다는 상대의 말을 끊고 끼어들거나 습관적으로 ‘거시기’라는 단어를 쓰는 애매모호한 말투는 상대에게 불편 감을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인품과 수준을 저하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