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카페 이야기> 두 번째
카페 <음악이야기>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 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의욕이나 희망 대신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절망의 끝에서 만난 카페 <음악이야기>. 그들이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이 소설을 통해 함께 웃고, 같이 울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
***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 배경, 인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01. 잃어버린 꿈
현우(1)
노래도 못하는 현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라라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라
네 꿈을 펼쳐라 네 꿈을 펼쳐라
꽃신 신고 오는 아지랑이 속의 내님아
네 창을 열어라 네 창을 열어라
파란 하늘 가득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라라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라’
차에서 내려서도, 회사 건물로 들어가면서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엘리베이 터 안에서도, 회사 출입문을 열면서도 현우는 그 노래를 계속 흥얼거린다. 유쾌함이 현우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처음이었다. 경리과 신미숙 과장의 얼굴이 그렇게 어두웠던 것은. 건설회사 드림메이커의 기획 실장 현우가 출근했을 때 그를 맞이한 신과장의 표정은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심각함 그대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무슨 일.... 있어요?”
“그게......”
“말해봐요.”
“미주랑 금광에서 전화 왔었는데요.”
“무슨 일로요?”
“어제까지 지불하기로 한 공사 대금이 안 들어왔다고......”
“무슨 소리예요? 왜 입금을 안 한 건데요? 그거 진즉에 지불했어야 하는 거 거 아닙니까? 신과장님 업무 아닌가요?”
“그게.... 대표님이 오늘 입금하라고 하셔서.......”
“대표님이? 그럼 지금 입금하면 되잖습니까?”
“근데......”
섬뜩함이 목덜미를 타고 뒷머리의 신경을 찌르며 올라왔다.
“말해봐요.”
“통장에 잔고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번 달에는 대표님이 관리하셨는데, 오늘 새벽에 전부 인출하신 것 같습니다.”
신과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우는 핸드폰을 꺼내 정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다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마자 전화를 끊고 정대표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정대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형, 어디야?
“하청업체에 보낼 공사대금이 얼마죠?”
신과장에게 묻는 현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있었다.
“4억 2천6백입니다.”
“몇 군데죠?”
“일곱 군데요.”
경리과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신과장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틀림없이 하청 업체의 전화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대표에게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카카오톡에도 메시지를 남겼지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앞으로 닥쳐올 끔찍한 일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대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에 관한 궁금함과 아무래도 회사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신과장이 통화 중이던 전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현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주건설 대표님이 실장님 바꿔달라는데요?”
현우는 전화기를 받았다.
“이현웁니다.”
“이대표님, 이거 무슨 문제 생긴 거 아닙니까?”
실장이 아닌 이대표라는 호칭이 현우의 가슴을 자극해왔다.
“이대표가 아니라 이실장입니다.”
“그거야 그쪽 사람들이 쓰는 호칭일 테고요, 드림메이커는 이현우 실장님이 대표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사업자가 그렇게 돼 있을 텐데요?”
현우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몇 달 전에 정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업자 등록을 현우 이름으로 하자고 제안했었다. 현우는 그의 제안에 공감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현우의 이름이 회사의 대표로 등록되어있다는 사실은 이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불길함을 안겨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이대표님.”
그는 마지막에 현우를 또다시 이대표라는 호칭으로 애써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전화기를 신과장에게 넘겨주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정대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전화를 봤다. 금광전기 강사장이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 뒤로도 회사에는 공사 대금 입금이 되지 않았다는 하청 업체의 전화가 걸려왔다. 현우의 핸드폰으로도 업체 대표와 임원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대표의 집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회사에서 빠져나왔다. 아까부터 자꾸만 가슴에 통증이 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통증은 격렬해졌다. 통증은 차에 올라탔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에 없던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처음이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강렬한 공포감. 쉰두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공포감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과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발에서부터 온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니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곤란했다. 메슥거림으로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곧이어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역시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칼로 난도질된 상처에 고추 가루를 뿌려대면 그런 고통일까. 마취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수술 칼로 가슴을 쪼갠다면 그런 고통일까. 어떤 표현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강렬한 가슴 통증은 점점 더해갔다. 이렇게 죽어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심근경색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죽음이 눈앞에 와있다고 생각했다. 예고도 없었던 이 뜻밖의 일은 앞 차를 들이받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현우는 핸들에 얼굴을 묻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현우는 계속 정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기계가 가슴과, 팔, 다리에 부착될 때, 현우는 낯선 느낌으로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현우는 그것들이 마치 자신의 삶을 헤집어 놓을 것 같은 정대표와 한패거리처럼 느꼈다. 심전도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들려오는 기계 소리는 그의 온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할 때에도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했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언제 누가 연락을 했는지 옆에 와있던 후배 수민은 그런 현우를 만류했다. 검사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내시경 검사가 이어졌다. 수면 내시경을 권했지만 현우는 거부했다. 그렇게 한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검사를 하는 3분이 30분처럼 느껴질 만큼 곤혹스러웠다. 다 끝나간다는 간호사의 말을 믿었던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내시경 기계는 온 내장을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았다. 목구멍을 어찌나 자극하던지 현우는 계속 컥컥거리며 침을 질질 흘렸다.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귓속에까지 들어갔다.
"심장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습니다. 약간의 위염이 있긴 하지만 보통 이 정도로는 그렇게 가슴통증이 있지는 않을 테고요."
젊은 의사는 중얼거리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글쎄요......”
빌어먹을!
기계가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서인지 병원 문을 나서는데 속이 메슥거렸다. 여름 끝의 무더위가 몹시 불쾌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정대표인가 싶었는데 누나였다. 또 다른 알지 못할 불길함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엄마가 알츠하이머란다.”
옆에 살면서 구순의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지친 탓이었을까. 어머니의 불치병을 알리는 누나의 목소리는 지나칠 만큼 덤덤했다. 현우는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아흔살 노모이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치매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까닭에 현우는 충격으로 멍할 뿐이었다. 회사 공금과 함께 사라져버린 정대표와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극심한 가슴 통증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머니의 치매 소식까지 얹히면서 현우는 주저앉고 싶었다. 극심한 우울감에 온 몸과 마음이 점령당한 것 같았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 없었다. 얼른 정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민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정대표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신과장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가 일곱 번이나 찍혀있었고 하청업체 사람들에게서 온 빨간 색깔의 부재중 전화도 여러 개였다. 바로 그때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정대표였다. 가슴이 떨렸다.
-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 이 빚은 죽을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으마. 지금 중국으로 간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정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속에서는 <스탠 바이 유어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