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회현중학교가 뜨고 있다. 아직도 그냥 평범한 시골 학교로만 알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요즘 회현중학교는 군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전학 상담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불어난 학생들로 이미 T/O가 없다. 수년전 학생 급감으로 폐교 위기까지 내몰렸던 그 학교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며칠 전 회현중학교를 방문했던 날은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교사(校舍)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걸으면서 교장실을 찾았지만 눈에 띠지 않기에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마주친 어느 선생님이 이곳이 교장실이라면서 ‘교육상담실’이라 쓰인 방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잠시 후 어느 분이 들어오면서 명함을 건네며 자신이 교장이라고 소개하는데 대개의 경우처럼 커다란 집무실에 적당히 근엄함을 갖춘 교장을 상상했던 필자는 보기 좋게 한 방 맞고 말았다. 명함을 보니 아무런 직함도 없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아름다운 회현중학교 이항근’ 이라고만 인쇄되어 있고 집무실도 교장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용모나 차림새부터가 교장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시골 동네 복덕방 아저씨처럼 너무도 수수했기 때문이다. 낡은 구두에 흙이 많이 묻어 있는 걸로 봐서는 그가 집무실보다는 주로 밖에서 발로 뛰는 일을 즐겨하기 때문인 듯 했고 아무런 가식이나 꾸밈없는 외모에서는 상대에게도 편안함을 주는 소탈함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되면서 학교와 교육 이야기로 들어가자 그는 나직하면서도 차분한 말씨, 그러나 자신의 교육 철학과 신념을 말 할 때의 분명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에서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평교사 중에서 선출된 공모제 교장이다. 수학 선생님인 그가 서흥중에서 회현중학교로 전근된 것은 지난 2007년도다. 군산이 고향이기도 한 이교장은 공주사범대를 졸업 후 83년도에 군 제대를 마치면서 바로 교직에 몸을 담았으니 어언 30여년의 경력이 쌓인 셈이다. 그 30여 년 동안 일선 교육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수많은 체험들은 하나같이 그의 피와 살이 되어 교육자적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그만의 자산으로 축적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가 회현중학교에 부임했던 5년 전 상황은 3학년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고작 70여명 남짓 되는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학교였다. 회현중학교는 지난71년도 전국 각 면단위마다 중학교를 설립하라는 당시 군사정부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개교를 한 후 어느덧 39회 졸업생을 배출한 해묵은 학교지만 수년전 학생의 급감으로 인하여 학부모나 동창회, 그리고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러다 폐교를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이었고 대안도 없어 보였다. 그러자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학부모회에서 내 놓은 자구책이 교장을 공모제로 선출하여 학교 운영을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임기만 채우고 떠나는 임명제 교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공모제 교장 후보로는 평교사 중에서 이항근 포함 3명이 출마했는데 심사위원회에서는 이항근을 선출했다. 그래서 그는 2008년도 9월 1일자 평교사에서 일약 임기 4년의 교장 발령을 받기에 이른다. 필자가 짐작컨대 교장으로 선출됐을 당시 그의 속내는 기쁨보다는 어쩌면 중병이 든 수술 환자를 눈앞에 둔 집도의의 심경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항근은 교장이 된 후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교육 철학은 근본적으로 성적보다는 성장을 지향함으로서 ‘밝고 바른 인성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자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것은 성적 위주의 경쟁 교육에만 전력하고 있는 국가적 교육 방침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추종하고 있는 여느 학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모험으로도 여겨질 만한 대단한 전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경쟁 위주의 교육은 그간의 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듯 학생들을 지치고 병들게 하여 최근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한 교내 폭력, 집단따돌림, 성적을 따라 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울증, 또한 이에서 비롯한 절망 끝의 가출 내지는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으나 교육 정책은 저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서 백가쟁명 식의 담론만 무성할 뿐 기존의 무사안일 적 답습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학교 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에서 이항근 교장을 선출한 의미는 문제투성이인 기존의 획일적 운영 틀을 깨고 소신껏 학교를 바꾸어보라는 주문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는 중책을 떠안은 설렘을 뒤로 한 채 무거운 사명감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교장은 우선 부족한 학과목을 보충할 수 있는 교과보충시간과 학생 개개인이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과후 특기적성프로그램’을 설치했다. 현재 회현중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요일에 따라 교과보충학습(1,2학년: 영,수,국어논술/ 3학년: 국,영,수,사,과,기,도)을 비롯해서 자기주도학습(전문적 지도에 의한 학생 인성, 진로, 학습계획 수립, 학습방법 지도 및 실천여부 확인)외에 심화학습(영어, 수학, 심화내용 수월성 교육)시간을 설치하여 학력 신장과 협동학습능력 배양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특기적성 프로그램으로는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영어회화, 컴퓨터, 디베이트 토론, 시사NIE, 독서동아리, 독서치료, 바둑, 영화제작, 로봇발명 등을 운영하고 있고, 예체능 프로그램으로 클래식기타, 피아노, 국악관현악(대금,소금,태평소,피리,해금,가야금 등)과 방송댄스, 밴드, 사물놀이, 창의미술, 탁구 등을 운영하는가 하면 또한 토요 프로그램으로는 칠보공예를 비롯해서 도예, 제과제빵, 축구, 야구 등을 시행 중인데 모든 학생이 각자의 소질이나 취미에 따라 3가지 이상의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방학 중에도 심신을 바르게 하고 지적 성장도 도모할 수 있는 외부 프로그램(예:온 나라 걷기대회, 안철수 연구소 등)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여 해당 학생에게는 일정한 장학급도 지급하고 있는데 단, 외부 학원은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서 오는 심신의 피로가 가중될 수밖에 없어 귀찮게 여겨질 법도 하겠으나 그러기는 고사하고 모두가 교장의 생각과 방침을 잘 이해하고 때론 교장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선생님들에게 이항근 교장은 한없는 동료애와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의 기를 맘껏 펼 수 있게 된 학생들은 학교생활이 즐거워졌다. 학생이 즐거우니 학부모도 즐거워졌고 선생님들도 즐거워졌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회현중학교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5년 전 이교장이 부임했을 당시 전교 70여명에 불과했던 학교가 이제는 학년 당 2학급씩 전체 학생 189명으로 학생 수가 불어나 더 이상 전학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학교에는 활기가 넘쳤고 동창회에서도 이런 발전적 변화에 고무되어 매년 2천만 원씩의 운영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자녀가 밝아진 모습을 보게 된 학부모들도 학교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2~3년 전만 해도 타교로 전학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지만 예상했듯 대부분 성적 위주 교육, 그리고 규제 일변도의 천편일률적 교육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 한명도 타교로의 전학은 커녕 오히려 전학을 오고 싶어 하는 학부모의 상담 요청이 넘쳐나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경이다. 작년에는 회현중과 자매결연을 한 중국 청도(靑島)시의 모 학교 관계자 일행이 방문을 온 적이 있었는데 시찰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남긴 찬사가 인상적이다. 그들이 감명을 받은 부분은 타 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이 인사도 잘 할뿐만 아니라 어찌나 활기차고 표정들이 밝은지 자신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는 것이다. 인사는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있다 쳐도 표정은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 일까. 또한 회현중학교만의 독자적 교육 프로그램의 성공적 정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서 부러움에 찬 시선과 함께 ‘만일 후진타오 주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중국 전역에 회현중학교를 롤 모델로 하는 학교를 설립하라’는 지시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니 군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덩달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회현중학교가 이렇게 변신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데에는 교장을 위시한 전 교사들의 교육 철학이나 전환적 사고, 그리고 이를 실천해 내는 질적 콘텐츠도 우수했거니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믿음과 열의를 가지고 추진한 결과로 보인다. 사실 회현중과 같은 전원 학교는 3년 전 정부 시책에 따라 전북의 13개교 포함, 전국적으로 130여개 학교가 지정되어 3년간 약 15억 원의 운영 지원금을 받기도 했는데 이 중 80%는 시설비로 쓰도록 되어 있어 지금의 신축 강당도 그 지원금으로 지은 것이며 도교육청 교부사업에 프로그램으로 응모, 지난해 자율형 창의학교로 선정되어 6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나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약 30여명의 외래강사 수당 등은 별도 지원이 없어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하는 어려움도 일정부분 안고 있다. 또한 교과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특별교부금사업으로 매년 3천개 학교에 1~5억씩 차등 지원하고 있는데 기초수급대상자가 많을수록 수혜의 폭이 크지만 회현중은 대상이 적어 수혜가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130여개 전원학교 중 떠나는 학교가 아니라 ‘돌아오는 학교’ 라는 당초의 취지에 맞게 성공을 거둔 경우는 회현중이 유일하다. 바꾸어 말하면 회현중을 뺀 129개 학교는 이미 실패했거나 성공의 싹이 안 보인다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로써 최우수 전원학교로 선정된 회현중학교는 심의를 주관한 공주대학교에서 이항근 교장이 참석하여 사례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상기 교부금사업을 기피하고 있는 큰 이유는 국비를 지원받을 경우 이에서 수반하는 업무적 스트레스와 회계감사의 부담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사히 지내다 임기만 채우면 될 일을 굳이 귀찮은 일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 법하다. 하지만 모두가 마땅찮아 하는 그 일을 이항근 교장은 과감히 추진했고 결국 학교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며 성공을 이끌어 내고 있다. 도대체 이항근 교장의 교육 가치관이나 지향점이 어떻기에 이렇게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해 내는 것일까.
이항근 교장은 교육을 ‘아이들 모르게 어른들이 행하는 기획’ 이라고 규정한다. 성적 향상만을 위한 지나친 경쟁이나 오로지 정답만을 암기하게 하는 주입식 교육, 그리고 규율과 규제 위주의 획일적 교육 방식은 아이들이 눈치를 채게 되어 반항에 직면하는가 하면 오히려 사고력이 뒤떨어진 멍청한 아이로 만드는 등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사나 교육은 아이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만큼 국가나 교육담당자, 그리고 학부모 등 어른들의 눈높이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아이들 입장과 관점에서 많은 부분이 개선될 때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케 한다는 교육 본래의 가치로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일방적 지시나 꾸지람만을 받고 자란 아이보다는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의 심성이 훨씬 곱고 밝다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문화 예술 부문을 많이 설치한 것도 그를 통하여 인성을 순화시키고 감성을 풍부히 길러줌으로써 올바른 자아 형성을 도모한다는 취지인데 그 효과는 대단히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학생 아이들에게서 반항심과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사리에 대한 판단력이나 올바른 자아 형성이 미 성숙된 상태여서인데 이것을 방치할 때 자칫 고위험 군의 아이로 변하기도 하는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하여 흥미가 유발되고 아이들의 심성이 밝아짐으로써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살아나 결과적으로 학과 성적 향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은 질병과 가난을 구제할 수는 없어도 위로할 수는 있다’는 말처럼 문화 예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계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 회현중의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 지시나 꾸지람에 익숙해진 아이보다는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자란 아이의 성장 과정은 후일 크게 대별되는 상반된 모습으로 나누어 질 수밖에 없을 터인데 어느 방식을 선택할지는 교육담당자 각 자의 몫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겠다.
이교장은 시간이 날 때 가끔 운동장에 나가 학생들과 어울려 축구도 즐기는데 요즘엔 혹시 자신에게 패스가 올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면서 웃는데 그 엄살이 소년처럼 순박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목공 일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전문가에게서 지도를 받은 후 학생들과 합작으로 청소함, 책장을 비롯해서 교정 벤치까지 만들어 설치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설치물들은 학생들이 어찌나 아끼는지 몇 년 째 전혀 손상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한 방법도 산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엇엔가 참여하는 데서 소속감과 안도감을 갖게 되고 자신의 노력과 손때가 묻은 것에 애착을 갖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를 바꾸어 최근 교육계 일각에서 학생 인권조례가 공론화되고 있는 추세이나 반면에 지나치게 학생 인권만 내세운 결과 오히려 학생이 교사에게 반항하거나 폭력적인 현상이 빈발함으로서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큰데 이것은 체벌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이 역시 정답은 없는 채 의견만 무성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더니 이항근 교장은 주저 없이 말한다. “저는 체벌은 반대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효과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가 더 크니까요. 저는 교직 생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학생에게 손찌검이나 체벌을 가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체벌은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자 가장 무능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체벌은 절대적으로 안된다가 아니라 가장 저급한 교육방식이라는 말이지요. 저희 학교는 체벌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학생들 모두 얼마나 밝고 명랑한지 모릅니다. 단 한명의 문제아도 없고요. 한 예로 저희 학교 선생님 중에 학생의 잘못이 눈에 띠면 크게 야단을 치는 분이 계신데 언제부턴가 방식을 바꿔 부드럽게 달래고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더니 그 이후로 그 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학생이 먼저 다가와 밝게 인사하고 애교스럽게 선생님의 팔짱을 끼기도 하는 등 변화된 모습에서 감동을 받아 자신도 반성과 함께 지도 방법을 바꿨다고 하더군요. 결국 선생님 자신이 바뀐 것이며 그렇게 변한 자신에게 놀랍기까지 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비단 학교생활에만 적용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바꾸는 것은 억압이나 폭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해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필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학생자치회 회장과 부회장 선거가 있는 날이어서 출마한 학생들이 기호와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참모들(?)을 대동한 채 열심히 각 교실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감 넘치는 밝은 표정에 나름 열심이었는데 마치 자치단체장 선거의 축소판을 보는 듯도 하여 필자의 소싯적과 너무도 달라진 양상에서 격세지감이 들기도 하였다. 회장은 3학년생만이 출마할 수 있고 부회장은 2학년에서 선출하는데 출마한 몇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출마의 변이나 공약도 나름 차별성이 있다. 부회장에 출마한 2학년 조수빈양에게 학교 자랑과 자신의 공약을 소개해보라고 하자 활달한 목소리로 3학년 선배들이 상급생이 아니라 마치 친언니 같은 느낌이 들만큼 편안하고 허물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너무 좋다는 것과 어느 학교보다도 청결한 화장실 문화, 그리고 타 학교와는 차별화된 특기적성프로그램의 운영으로 자신도 시사NIE 와 국악관현악 활동에 참여, 해금 연주를 하고 있다 하며 자신이 선출되면 현재의 도서관을 좀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구조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말과 함께 선후배간 맨토, 맨티 맺기 운동을 펼치겠다는 공약도 들려준다.
그런가하면 역시 부회장에 출마한 2학년 오인영양은 전체 교실에 전자 칠판이 설치되어 있어 시각적으로나 건강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시사NIE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신문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작성과 더불어 적성에 맞는 라인댄스도 너무 재미있고 자기주도 학습시간과 교과보충시간을 활용하여 부족한 공부를 보충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자유 시간을 이용한 선후배간 야자타임도 꼭 실행해보고 싶단다. 역시 부회장에 출마한 2학년 박은서양의 경우는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너무도 좋은 분들이어서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말부터 들려준다.
그리고 숙제의 경우 주어진 답만 쓰기 보다는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이 좀 더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얼마든지 추가하여 작성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말로 미루어 사고의 폭이 유연하고 학구적인 면이 좀 더 발달한 학생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왔다. 회장에 출마한 3학년 이외솔군은 밴드부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공부중인데 교내 다양한 특기적성프로그램이 있어 등교 자체가 즐겁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단다. 그리고 굳이 공약이라면 학생들 모두 나부터 변하겠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좀 더 배려하는 학내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고 명랑 하다. 대개 뭔가 불만에 차있거나 주눅이 든 표정의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는 타 학교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필자는 이항근 교장에게 자치회 출마자들의 공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떤 공약이 됐건 가능한 한 다 들어줘야 된다는 말과 부연하여 공약이 실현되면 학생자치회에 힘이 실리고 권위가 섬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보람과 긍지를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치회의 공약이 헛구호로만 끝날 경우 학생들의 불신을 자초하게 되어 자치회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인데 충분히 공감이 가는 사안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 시간도 더 지나고 있어 향후 계획을 듣는 것으로 오늘의 대담을 끝내겠다고 하자 이교장은 우선 시민들께 부탁 말씀이라면서 회현중학교에 우호적 지지를 보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지지보다는 현재의 운영 프로그램의 이해와 더불어 여타 어려움이나 문제점은 없는지 좀 더 관심을 갖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후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 한다. 또한 자신의 임기가 금년 8월이면 끝남으로서 다시 평교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학부모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교장이 이임하게 되면 후임교장이 과연 지금의 맥을 잘 계승해 나갈지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앞으로는 교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이리 저리 달라지는 학교보다는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는 학교로 변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이미 성공적 프로그램이 정착된 회현중의 경우 어떤 교장이 오든 잘 해나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더불어 입학 정원을 늘리고 외지로부터의 전학 희망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학년 당 최소 한 개 학급씩의 증설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는데 교육청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학생과 교사가 더불어 성장하는 학교’ 이것은 회현중학교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표현이다. 밝아진 학생, 웃음과 자신감이 넘치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깊은 안도와 신뢰를 보이는 학부모, 힘은 들지만 보람에 찬 선생님들, 그리고 긍지를 되찾은 동창회, 지난 4년 동안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회현중학교는 이런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항근 교장이 있다. 이제 회현중학교의 명성은 우리 고장을 넘어 전국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아무쪼록 회현중학교가 오늘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모습으로 진화하여 중등교육의 표준으로 자리매김 받음으로써 우리나라를 넘어 외국에도 그 위상을 떨칠 수 있기를 바란다면 필자의 과분한 욕심일까.
방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는 멈췄고 천연잔디가 잘 조성된 드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노는 학생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그리고 머 언 산등성이 위에 걸쳐 있는 무지개가 회현중학교의 밝고 희망찬 모습과 오버랩 되어 반원을 그리며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군산회현중학교
전북 군산시 회현면 대위로 426 063-466-5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