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재미나고 따뜻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온 월간지 <매거진군산>(이하 ‘맥군’)이 창간 한 돌을 맞았다. 가정에서 아기 첫돌에 돌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무병장수를 빌듯, <맥군>을 아끼는 독자들과 함께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1백 호, 아니 1천 호로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맥군>은 이진우(43) 발행인과 진정석(41) 편집인, 박유경(디자이너) 실장 체제로 움직인다. 이 발행인 본업은 산업디자인 전문회사(ICM)를 운영하는 '아트디렉터'(예술감독). 진 편집인은 무역업이 본업으로 '포토그래퍼'(사진작가)이다.
<맥군>은 자신이 취재할 대상을 정하고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필진과 편집진이 매월 초 원도심 중국음식점 [빈해원]에 모여 합평회를 곁들인 편집회의를 연다. 필진은 군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유기고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소설가, 객원기자, 시민기자 등 10~15명. 그들이 기사를 작성해서 송고하면 편집부의 최종 편집을 거쳐 인쇄에 들어간다.
창간호(2011년 4월)와 2012년 3월호, 무엇이 달라졌나?
열두 번째(3월호) 발행된 <맥군>을 손에 쥐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다. 창간호(2011년 4월)는 표지까지 40쪽으로 얇아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몇 달 후 44쪽(8월)으로 늘더니 9월엔 껑충 뛰어 68쪽, 10월에는 80쪽, 11월부터 계속 84쪽으로 두툼하게 발행되고 있다. 시민기자도 3명이나 확보하고, 필진도 4명(창간호)에서 11명(3월호)으로 늘면서 월간지로써 위상을 갖추었으니 아기 같았으면 ‘천재!’요, ‘신동!’이라 불렀을 게다.
창간호 표지모델은 KB중공업(주) 유현동(46) 부사장. 유 부사장은 경기도 출신이면서 전북 군산에서 발행되는 잡지 표지모델로 뽑히는 행운을 안았다. 이진우 발행인은 “이웃에서 흔히 보는 중년의 아저씨로, 군산출신보다 더 군산스러운 경기도 사나이여서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3월호 표지모델은 미래를 선도하는 군산JC 김종서(38) 회장으로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두 아이를 둔 아빠이자 건설회사 대표로 모든 면에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라는 김 회장 표정에서 카리스마가 넘쳐났고, 그동안 모델 중 가장 젊어서 그런지 과수원에서 갓 따온 복숭아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3월호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언제부터 이렇게 성숙해졌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창간호 표지모델의 숨은 얼굴을 찾는 독자에게 식권을 제공하는 <현동이를 찾아라!>만 봐오다가 “이달부터 맥군의 오탈자를 찾는 분께 추첨을 통해 상품을 드리겠다”는 설명과 <맥군의 오타를 찾아라!>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작은 이벤트이지만, 자신의 흠집을 발전의 자양분으로 산화시키려는 편집진의 지략(智略)을 동시에 느꼈다.
창간호에서는 구 역전 새벽시장을 생생하게 전달한 이화숙 자유기고가의 <도깨비 시장에는 희망의 도깨비가 산다!>가 특별 기획기사로 다뤄지면서 이 시대 서민을 대표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도깨비 같은 이야기가 희망과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지면이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3월호는 오성렬 자유기고가의 <인장도(印章刀)와 함께한 애환의 60년>을 메인스토리로 올렸다. 주인공은 군산 중앙로의 좁은 골목에서 도장포를 운영하는 김병문(75) 어른. 기사는 6쪽 분량으로 고통과 애환으로 점철된 김 어른의 인생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애틋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읽었는데, 젊게 사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제가 워낙 속없이 살아서 그런가봅니다’라며 겸연쩍게 웃는 김 어른 모습을 표지모델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군산은 농업과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은 농어촌 복합도시여서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축산농가 피해를 앞두고도 소(牛) 문제는 시민에게 외면당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아버지 농사일을 도와드리다가 7년 전부터 소를 사육하고 있다는 신만재(36)씨와의 인터뷰 기사 <소는 누가 키우냐고!>는 작은 감동을 주었다. 편집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 ‘젊은 나이에 축산업을 시작한 배경’, ‘최근 일어났던 소 파동’, ‘수입산 소와 한우의 차이’, ‘축산농가의 어려움’, ‘축산업의 비전’ 등을 현장감 넘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
군산의 식도락가들이 즐겨 먹는 짬뽕을 총망라한 '짬뽕大戰' 기사로 한때 인터넷상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맥군>에 먹을거리 기사가 빠졌다면 그것은 거짓말. 봄철 달아난 입맛을 잡아주는 냉이 된장국과 송이향이 그윽한 간장게장 소개는 깊숙이 가라앉았던 식탐을 솟아나게 했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영화동 시장을 발품을 팔며 취재한 서진옥 문화평론가의 <아날로그 감성여행, 영화동 나들이>가 '짬뽕 大戰'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다. 백반집, 통닭집, 분식집 등을 소개하면서 가장 시골스러워서 농사철 논두렁 새참을 떠오르게 한다는 ‘이모네 집’의 걸쭉한 반찬 설명은 음식이 보이지 않음에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습도가 낮고 바람과 먼지가 많아 쉽게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지기 쉬운 봄철 피부 관리법을 다룬 김민정 시민기자의 <변화에 두려움 없는 아이리스>는 유용하고 참신했으며, 돌을 깎아 그리움과 사랑을 조각하는 황순례 교수와의 인터뷰(편집부)는 접하기 어려운 예술 장르여서 호기심이 동했다. 특히 입학식을 앞두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폭력사건에 경찰의 지나친 개입과 학교폭력을 은폐하는 교사에 대한 무거운 징계로 나타날 부작용 등을 우려하는 온승조 칼럼니스트의 <학교폭력 근절에 경찰이?>와 군산 청소년문화센터 김은정 센터장의 <청소년 성폭력 해결 중장기적 로드맵으로 추진되어야>는 시의 적절했고, 교내 성폭력 근절에 대한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3월호 독자의견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권은숙 독자는 지난 1월 ‘매거진군산이 만난 사람들’ 사진전을 감상하고 편집진의 노고와 결실에 격려와 찬사를 보냈다. 경기도 군포에 거주하는 이춘우 독자는 “전주에 출장 내려왔다가 KBS TV에서 ‘매거진 군산’ 얘기가 나오는 프로를 보고 발행인과 편집인의 애향심에 깜짝 놀랐다”며 “군산에서 발행되는 <매거진군산>은 <선데이 서울> 이후 최고의 잡지입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활짝 웃고 있는 현동이를 찾았다”며 “정답이 맞으면 선물을 쏘시라!”는 서재신 독자의 익살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선물 타령을 해서다.
<맥군>은 2012년 1월 16일(월)~29일(일)까지 <매거진군산이 만난 사람들>이란 주제로 군산시 월명동 소재 ‘여인숙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맥군>에 기사화됐던 인물 94명이 모델로 등장했으며 독자와 관람객들의 성원으로 보름 이상 연장(2월 16일) 전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행사를 총괄한 진정석 편집인은 “밑바닥 인생부터 군산 시장(市長)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사진에 담았다.”며 “시민들이 모델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CBS라디오 정관용 “<매거진군산>은 제대로 된 잡지입니다.”
<맥군>은 창간호부터 3월까지 열두 달 동안 인물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해왔다. 모델들 직업도 회사 간부에서 국립대 총장, 교수, 영아원 원장, 소설가, 화가, 최고 경영자(CEO), 군산 시장(市長) 등 가지가지. 나이도 30대에서 70대까지 층층이다. 다만, 남성과 여성 모델 비율이 11대1이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흐르는 노동자나 농어민을 대표하는 모델이 보이지 않아 조금 서운했다.
그럼에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정관용(51) 진행자는 2011년 9월 이진우 발행인과의 인터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식지, 이런 게 아니에요. 아주 생생한 기사와 인터뷰, <매거진군산>은 제대로 된 잡지입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무료잡지라서 돈이 되지 않고 돈을 그냥 쏟아 붓고 계신 것 같아요. 출판 전문가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지역민들을 위한 잡지를 펴낼 생각을 했을까요?”라며 물음표를 붙이기도. 필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가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투자를 크게 안 해도 잡지(맥군)를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매거진군산>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인물잡지입니다. 옆집 아저씨도 표지모델이 되고, 옆집 누나가 갑자기 잡지에 나오니까 독자들이 관심을 더 두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무료로 만들 생각입니다. 유료화하면 구독자 수에 맞춰야 하니까 발행 부수도 제한을 받을 것이고, 독자들이 편하게 보실 수 있게 만들지 못할 거 같아서입니다.”
이진우 발행인은 “처음 계획은 1년 정도만 무료구독을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장기구독을 신청한 독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 같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며 “부족한 부분은 광고로 채워야 하는데 마음 같지 않다.”라고 인사를 덧붙였다.
“언제나 푸근하고 편한 <매거진군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침마다 한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진우 발행인과 진정석 편집인. 그들은 온종일 함께 움직인다. 새로운 <맥군> 8천~1만 부가 출간되는 월초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쌀가마보다 더 무거운 수천 권의 잡지 더미를 차 트렁크에 싣고 공급처에 일일이 배달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두 40대의 열정적인 모습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맥군>의 무한한 가능성도 엿보인다. <맥군> 탄생에 가장 힘든 산모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박유경 팀장은 필진과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1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독자들의 격려와 칭찬은 저에게 값진 보상이었습니다. 항상 애쓰시는 발행인, 편집인, 그리고 필진과 독자들에게 계속 관심 둬달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곁에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편해지는 사람처럼 <매거진군산>도 언제나 푸근하고 편한 소통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