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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소학교는 돈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2.03.01 13:28:1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 화교소학교는 1947년 가을 장미동 시대를 마감하고 중앙로 2가 중앙초등학교 남문 부근으로 이전한다. 학교 건물은 일본인이 사용하던 병원을 인수받아 수리해서 사용하였다. 미군정청 시절이어서 이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에는 11명(2회)이 졸업했다. 각 도에 화교소학교가 설립되면서 학생 수가 140명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해 가을에는 군산 화교 교육의 선각자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던 록암정 회장이 지병으로 타계한다. 

 

1949년에는 재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2월 18일 화재로 학교 건물이 전소된 것. 그러나 임전갑, 손경정의 섭외로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에서 건축비 100만 원을 지원받는다. 당시 지원금은 서울에 화교 중학교를 설립할 자금이었다고. 

 

뜻있는 화교들의 성금도 이어져 1949년 11월 11일 일제강점기 고급 유곽이었던 명산동 적산가옥(대지 576평, 건물 1,2층 각 90평)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문을 연다. 유곽은 1925년경 향나무 등 고급 목제를 일본에서 가져다 지은 목조건물이었다.  

1950년 7월 초순에 졸업식이 잡혀 있던 4회 졸업생들은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졸업장 수여를 훗날로 미뤄야 했다.  재학생들도 수업을 중단했다가 사회가 차츰 안정되어가는 1951년 봄 부산으로 피난해 있던 동을신 교장이 올라와 수업을 재개했다. 당시 전체학생은 60여 명이었다.  1952년 3월 12일 주한 중화민국 왕동원(王東原) 대사가 군산을 방문하여 이사들과 학교 발전방향을 의논하고 후원을 약속했는데, 군산 화교협회에 들어온 모금액만 9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왕 대사는 4성 장군 출신으로 추진력이 강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1953년에는 중화요리점 빈해원을 운영하던 왕조석을 부회장으로 임전갑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1954년에는 군산 화교 100여 가구의 성금 54만4800원으로 명산동 유곽 건물을 불하받아 중화기독교 교회를 설립한 조계기(趙桂枝) 권사 앞으로 등기를 낸다. 당시 회장은 왕조석, 교장은 동을신이 맡고 있었다.

 

 


 

1958년에는 현재 서울에서 한의원을 경영하는 한성호(韓晟昊)가 교장을 맡아 2년 동안 재직했다. 그 후 20년은 중화요리점 중앙각(中央閣) 주인 형인진(邢仁進), 잡화상 홍풍행(鴻豊行) 주인 왕상국(王相國), 용성상회 주인 장경산(張慶山), 영화동 중화요리점 용문각 주인 여건방(呂建芳) 등이 돌아가며 교장과 회장을 맡았다. 

 

1980년에는 중앙각 형인진의 둘째 아들 형광의(邢廣義)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군산 화교회장이 되면서 화교소학교 운영권도 인수받는다. 그는 화교로는 드물게 중앙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약대를 졸업하고 1970년 영동에 ‘중 국 장수당약국’을 개업해서 운영해오고 있다.  형 회장은 31년째 학교일을 맡아보고 있다. 그는 1987년 학교를 법인체로 전환하여 개인(조계기) 앞으로 되어 있던 부동산을 기증받았고, 1998년에는 중화민국 주한 대표부에서 7000만 원을 지원받아 노후된 유곽 건물 맞은편에 교사(校舍)를 신축하였다.  2001년에는 신축 교사를 2층(1,2층 각 97평)으로 중축하고, 2002년 1월 12일 자로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 자녀는 물론, 혼혈아, 외국 시민권자, 영주권 소지자 등도 입학할 수 있는 ‘외국인학교’ 인가를 받는 등 학교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엔 인터뷰를 사양하던 형 회장도 과거사를 얘기하려니까 회한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는 긍지와 보람을 느끼지만,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며 회고했다. 가장 큰 아픔은 2002년 4월 7일 일어난 화재로 50년 가까이 교실로 사용하던 유곽 건물과 소중한 자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  중화요리점 중앙각(中央閣)을 운영하던 형빈의(邢彬義)를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학교를 어렵게 이끌어가고 있는 형광의 회장(11회 졸업)은 올해 67세이다.  그는 총무를 두지 않고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발로 뛰니까 비용이 훨씬 절약된다며 허허 웃었다.  운동장의 돌멩이 하나에도 애착이 간다는 형 회장은 학생이 줄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겠다고 하자 “화교소학교는 중국문화를 알리는 교육 공간이지 돈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라며 어른들이 가꿔온 학교를 유지 보존하는 데 모든 걸 바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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