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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안 해 본 월​급쟁이 생활, 그래도 자생력이 있습니다  

소도시 예술가들② 군산 ‘시민예술촌’ 촌장, 문화기획가 박양기

“옛날에는 공부를 조금만 잘 하면 서울로 유학 보내잖아요. 제가 전북 정읍 태인 사람인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갔어요. 큰형이 군대에서 제대하면서 올라간 거예요.”

박양기씨는 그의 아버지 나이 마흔일곱 살에 태어난 늦둥이였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장구를 가장 잘 치던 어른. 아버지의 흥과 리듬은 작은형 박상현씨가 물려받았다. 1970년대에 잘 나가던 그룹 ‘서울 패밀리’의 오리지널 드럼 멤버가 양기씨의 작은형이었다. 시골에서 장구 가락을 듣고 자란 양기씨가 서울 가서 듣게 된 건 드럼 소리였다.  

10대 소년 시절, 그는 ‘들국화’나 ‘송골매’의 음악을 접했다. 외국의 락밴드 음악도 즐겨 들었다. 작은형이 하는 밴드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가 가장 가깝게 여긴 악기는 말 하지 않아도 타악기, 어느새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저는 대학을 안 가고, 음악을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스무 살 때였어요. 악기점 사장님이 ‘서대문에 기타 잘 치는 친구’라고 태원(그룹 ‘부활’의 리더)이를 소개시켜 줬고요. 그때는 밴드 이름도 없었어요. 음악이 좋아서 했죠. 밤업소에서 연주할 때, 손님이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는 락밴드니까 ‘우리 연주’를 한 거예요. 하루 만에 쫓겨난 적도 있었어요.”  

1980년대 초반에는 대규모 라이브(공연 문화)가 드물었다. 전두환 정권은 사람들이 데모할까 봐 모이는 것 자체를 못 하게 막았다.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티 나지 않게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서 외국 밴드들이 공연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봤다. 툭 터진 야외에서 관중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볼 때, 양기씨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는 될 거라는 희망, 양기씨는 가슴에 품었다. 우선,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버터를 샀다. 계속 먹으면, 외국 가수들처럼 발음이 좋아질 것 같아서 진지하게 실행에 옮겼다. 치즈까지 먹으면 영어 발음을 더 잘 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싸서 포기했다. 어느 날, 양기씨의 친구 태원씨가 말했다.

“여의도 광장에서 10만 명 모아놓고 하자. 우리도 외국 사람들처럼 공연 할 수 있어.”

양기씨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걱정이 앞섰다. 음악할 거라고 말했던 담대한 배짱은 평범해져갔다. 외국으로 나가서 음악 할 기회가 왔는데도 물러섰다. 음악성보다는, 돈 벌 수 있는 곳에 갔다. 밤무대에서도 연주했다. 가수들의 지방 투어 콘서트에 세션으로 참여했다. 지금으로 치면, 기획사들의 프로젝트 그룹에 참여한 셈이었다. 

가수들은 히트곡 한 곡을 가지고도 평생 동안 음악을 할 수 있다. 드러머는 생명력이 짧다. 당대 최고라고 손꼽아주는 그룹에서 드럼을 연주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오래 남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골에 혼자 남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와서 같이 살면서도, 그는 여전히 음악 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서른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가 사는 군산에 왔어요. 1997년도예요. 근데 ‘직장인 밴드 모집’을 본 거예요. 가보니까 연습장이 천막이에요. ‘진포 축제’에 참여하려고 준비하더라고요. 축제 끝나고는 우리 밴드가 아예 ‘진포문화예술원’의 직장인 밴드로 들어갔어요. 어쩌다보니 직장인 밴드의 회장을 제가 맡고요.”

2001년, 군산 진포문화예술원은 ‘청소년 락 페스티발’을 열었다. 박양기씨가 맡아서 했다. 그는 유명인이 된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에게 “군산에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와서 심사 좀 해주라”고 말했다. <심사위원 ‘부활’의 김태원>이라고 써 붙인 포스터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근사한 공연 뒤에는 “박양기가 준비했구만”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2002년부터 진포(문화예술원)의 사무국장을 했어요. (웃음) 무보수죠. 다 직장에 나가니까 상근자 할 사람이 없잖아요. 진포의 전통은 ‘정월 대보름 굿’이에요. 그거 하려면 두 달 전부터 백여 명을 만나야 해요. 달집에 쓸 이엉도 만들고, 대나무도 꺾어야죠. 요즘에는 지푸라기로 소 사료를 만드니까 아는 농가에 미리 부탁을 해요. 지푸라기 남겨놓으라고요.

프로그램도 매년 똑같이 할 수는 없죠. 부스 자원봉사자도 관리하고, 시 공무원 만나서 일정도 조정하고요. 교통비도 많이 들어요.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대보름 굿이나 청소년 행사 하면 돈 많이 버는 줄 알아요. 행사 예산이 이삼백만 원이에요. 남을 수가 없어요. 돈 못 벌죠. 그러면 저한테 또 물어요. ‘돈도 안 되는데 뭐 하러 하냐’고요”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웃고 어울리는 힘으로도 산다. 그때 필요한 게 문화다. 양기씨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환호할 때면 쾌감을 느낀다. 힘들게 준비했던 기억은 사라진다. 그래서 진포문화예술원 사무국장을 12년간 했다. 그 자리를 내려놓고는 진포문화예술원 원장이 되었다. 직함만 바뀌었을 뿐, 양기씨는 여전히 1인 실무자로 일한다.

그렇다면, 박양기씨는 어떻게 먹고 살까. 그는 진포에서 풍물을 알았다. 국악은 악보가 없다. ‘덩기덕 쿵 더러러러’라고 써서 익힌다. 때마침 난타 공연이 유행이었다. 드러머였던 그는 음표가 있는 난타 곡을 만들었다. 양기씨가 만든 화려한 곡은 저마다 악보가 있다. 조금만 배우면 바로 보고 칠 수가 있다.

“저도 진포 덕을 봤어요. 오래 전인데, ‘락페’ 하는 날에 비 온대요. 그래서 강당을 섭외 하러 서해대 음악과 교수님을 찾아갔죠. 나중에 저희 행사 보고는 놀라시더라고요. 실용음악 하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온다고요. 저보고는 ‘실용음악과 만드니까 학교 오라’대요. 2005년에 만학도가 된 거죠. 졸업하면 교원자격증 2급이 나와요. 음악 학원을 차릴 수가 있죠.”

서해대를 졸업한 박양기씨는 김제에 음악학원을 차렸다. 군산에서 하던 일은 그대로였다.  난타와 드럼을 가르치면서 진포문화예술원 일을 했다. 9년간 운영한 학원은 작년에 그가 ‘군산시민예술촌’ 촌장을 맡으면서 정리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군산 개복동 거리에 시민예술촌이 있다. 그는 거리에 활력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먼저 상설공연단을 뽑았다. 공연단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철길마을, 근대역사박물관, 은파에 가서 공연부터 했다. 차츰 팬이 생기면서 “시민예술촌에서 공연하면, 뭔가 볼거리가 있어”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죽은’ 개복동 거리로 찾아왔다. 상설공연단의 ‘두둥사운드’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그룹으로 성장해서 음반도 냈다.

“상설공연단이 은파에서 좀비 콘서트를 했어요.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보는 사람들도 다 좀비 분장을 하고 즐긴 거예요. 청소년한마음대회 때는 팝핀현준이 게스트로 와 줬어요. 몇 만 원을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은 공연을 다 같이 본 거죠. ‘나도 MC'라는 강의도 열었고요. 우리나라 MC 중에서 박사 출신 1호인 노동인씨가 사회 보는 법을 알려줬죠. 

아무 꿈이 없다는 ‘가온누리학교’ 아이들에게는 색소폰을 가르쳤어요. “니네 잘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애들인데, 가르치는 교수님이 잘 한다고 하죠. 얼마 전에는 공연까지 할 정도가 됐어요. 군산에도 실력 있는 사람 많아요. 오디션 봐서 판소리, R&B, 락, 발라드, 해금 연주하는 15팀을 뽑았어요. 옴니버스 음반을 내고 발매기념 콘서트도 하고요.”

양기씨는 공연할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전국 버스킹 대회는 세 번째 진행했다.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좀비콘서트를 했던 공연단은 오는 12월에 파자마 콘서트를 할 거란다. 친구들이랑 놀러온 기분이 들게 무대는 펜션처럼 꾸몄다. 소파와 침대, 냉장고가 있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는 파자마, 또는 헐렁한 옷이라고. 

양기씨는 월급쟁이로 산 적 없다. 딱 한 번, 군산시민예술촌 촌장이 되면서 받을 뻔 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기질은 야행성, 사람들은 밤에 더 찾아온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까지 일하는 직원 두 명으로는 부족하다. 예산도 한정되어 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명예직이 되고,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할 사람을 한 명 더 뽑았다. 

“제가 월급을 받았다면, 위탁해준 군산시하고도 갑을 관계가 돼요. 근데 저는 돈을 안 받으니까 할 얘기 있으면 다 할 수가 있죠. 저한테는 자생력이 있잖아요. 난타 수업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요. 월급만큼은 아니어도 먹고 살 만큼은 돼요. (웃음) 솔로니까 가능하죠. 100만 원이든, 200만 원이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가 있어요.       
제 고민은 여기를 살리는 거예요. 길 하나를 두고 월명동은 사람이 바글바글 하잖아요. 늘 연구해요. 여기에 극장이 있으니까 공연장도 되고, 인문학 강의도 할 수 있어요. 유시민 작가도 여기서 강연을 하셨잖아요. 시민들이 와서 쓰는 곳이에요. 직장인 밴드는 그냥 와도 바로 연습 가능해요. 악기가 다 세팅되어 있으니까요. 1시간에 5천 원만 내면 되거든요.”

양기씨는 스무 살 때 꿨던 꿈을 이루지 못 했다. 여의도 광장에서 10만 명 모아놓고 공연하는 드러머하고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음악을 놓은 적은 없다. 늘 생활을 고민하며 버텨야 하는 문화예술, 양기씨는 문화기획자. 햇볕을 쬐여주고, 물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음악은 그에게 생계수단이자 삶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