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문화동 곳곳에는 골목을 사이에 둔 주택가가 있다. 어느 집의 카메라처럼 생긴 우편함에는 ‘찍사코상, 은탱, 어무이’라고 쓰여 있다. 그곳을 지나던 어떤 할머니가 “여기는 일본 사람이 사는 집이여?” 라고 물었다. 국적을 의심 받는 ‘찍사코상’의 본명은 김호상씨. 지적장애인들의 아름다운 보금자리인 ‘구세군 군산목양원’에서 일한다.
10여 년 전, 목양원에 사는 장애인들은 호상씨의 이름을 기억 못했다. 목양원 원장의 사모님은 “(코를 가리키며)코! (탁자를 가리키며)상!” 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코상’이 된 호상씨는 생활재활교사. 지적장애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생활했다. 군산대학교 공예과를 나온 전공도 살렸다. 그이들의 재활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도자기 수업을 했다.
“생활재활교사니까 이틀에 한 번은 가족(목양원에 사는 장애인)분들하고 같이 자요. 방 하나에 열 명(지금은 여덟 명)씩 지내요. 장애가 있으니까 밤에는 숙면을 못 취하세요. 간질도 있으시고요. 제가 깊게 자면 안 돼요. 간질 하는 분한테는 조치해 드려야 해요. 안타까운 게, 저는 한 달에 15일은 집에 가서 편하게 자잖아요. 가족 분들은 그럴 수가 없죠.”
사람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일한다고 하면, “아이구, 힘들겠네”라는 말부터 한다. 호상씨는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해요” 라고 말한다.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다. 생각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다. 고단하고 팍팍하기만 했다면, 진작 그만뒀을 일. 호상씨는 목양원 ‘가족들’이 좋았다. 10년째 일하는 이유라고.
목양원에도 축하할 일이 자주 생기고, 기념할 일도 있다. 그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때의 원장님은 사진 찍는 사람,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호상씨는 행사 때마다 원장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날, 목양원 원장님은 “김호상 선생님, 취미로 사진 해 봐요”라고 권했다. 호상씨는 30만 원 짜리 중고 카메라를 샀다. 2006년이었다.
“카메라에 완전 빠졌어요. 독학했는데 찍을수록 부족한 것 같았어요. 책도 보고, 다른 사람들 사진도 보고, 렌즈도 많이 바꿔봤어요. ‘이렇게 예쁜 사람들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연구하면서 매일 찍었어요. 근데 저장할 곳이 마땅치 않잖아요.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한 거예요. 포스팅 해야 하니까 피사체를 음식으로 정했어요. 하루 세끼는 먹으니까요.”
호상씨가 사진 찍은 지 2년쯤 됐을 때, 친구들이 “여기 모임 좋다더라. 물도 좋고”라면서 인터넷 카페 ‘군산사랑’을 알려주었다. 젊은 청년들이 어울려서 노는 모임이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모세스 영아원’에 가서 아기들과 놀아주고 청소를 했다. 그 활동을 조직하는 사람은 이은영씨. 호상씨는 그녀를 지켜봤다.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영씨의 남자친구가 된 호상씨. 자세부터 달라졌다. 그가 가장 즐겨 찍는 대상은 여자친구. 밥 종류를 즐겨먹던 그는 은영씨가 좋아하는 파스타, 돈가스, 스테이크, 치킨을 먹으러 다녔다. 남자친구의 배려를 아는 은영씨는 음식모델 분야에서 ‘망가짐’을 개척해 나갔다. 미모 걱정을 내려놓고서 포효하듯 먹는 포즈를 선보였다.
“먹을 때마다, 은탱(은영씨의 애칭)님이 익살스런 포즈를 잡아줘요. 저는 너무 재밌어서 배꼽 잡고 웃어요. 블로그에 사진을 포스팅 할 때, 한 번 더 뒤집어져요. 진짜 행복하죠. 은탱님은 한 번도 ‘창피해, 올리지 마’라고 안 해요. 제가 좋아하는 걸 아니까요.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도 은탱님의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시고요.”
호상씨는 목양원 ‘가족들’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즉석에서 포토 프린트를 써서 선물했다. 사진을 받아들고서 해맑게 웃는 ‘가족들’을 보는 게 좋았다. 그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의 결혼식 사진도 찍어주면서 “축의금 대신이야”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블로그 ‘손끝으로 전하는 찍사코상의 사진 이야기’를 통해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의뢰해 왔다.
작년부터 호상씨는 목양원 ‘가족들’ 대여섯 명과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그는 20-30만 원 대의 카메라 몇몇 기종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고르게 했다. 그 뒤로 각자 자기 소유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촬영하러 나갔다. 목양원 주위부터 찍었다. 차를 타고 10분만 가면, 근사한 풍경을 가진 청암산까지 있어서 좋았다.
“셔터 누르는 것부터 가르쳐 드려요. ‘이 자리에서 찍어보세요' 도 말하고요. 가족 분들은 진짜 많이 찍으세요. 그러면 제가 거기서 선택을 해요. 저하고는 보는 관점이 다르죠. 그냥 찍은 것 같은데 멋있는 사진도 나와요. 출사 끝나도, 가족 분들은 카메라를 갖고 다니고 싶어 하시는데 금방 망가져요. 그래서 충전이랑 잘 해 놨다가 사진 찍을 때 꺼내서 드리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사진이 나오는 곳이 있다. 그래서 호상씨는 유명 출사지에 ‘가족들’과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작년에는 장애인 예술 활동 동아리 지원을 받아서 경기도 가평에 갔다. 파주 헤이리와 쁘띠 프랑스에도 갔다. 그 곳의 빛 터널을 지날 때, ‘가족들’은 걸으면서 셔터를 계속 눌렀다. 빛이 스미듯 찍힌 사진은 아름다웠다.
사진은 빛의 예술. 어떤 곳은 새벽에 가서 찍어야 한다. 어떤 곳은 밤까지 기다렸다가 찍어야 한다. 목양원 ‘가족들’과 그렇게까지 전문적으로는 못 한다. 그래도 호상씨는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군산 은파에 벚꽃이 필 때, 청암산의 억새가 바람에 보드랍게 날릴 때, 고창 선운사에 상사화가 필 때, 김제 청운사에 연꽃이 필 때면 함께 출사를 나간다.
“목양원에는 ‘꿈꾸는 달팽이’라고 작가 육성 프로젝트가 있어요. 미술심리치료사인 이상원 선생님이랑 같이 준비했어요. 군산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두 번 했어요. 가족 분들을 작가로 살게 해 주고 싶어요. 자활하는 작가로요. 안 될지도 모르지만, 꿈은 거기에 두고 있어요. 이번 전시회 때는 강성태씨의 사진이 한 점 팔렸어요. 5만 원에요. 그분이랑 단둘이 나갔죠. 작품 판매한 돈이라고 알려주면서, 먹고 싶다는 것을 사 드렸어요.”
전시회 때마다 작품을 세 점씩 낸 목양원의 작가들.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브이’자를 하고 환하게 웃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비장애인들이 지적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도 흔들 수 있는 전시회였다. 작품전을 해본 목양원의 사진 동아리 회원들은 확실히 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출사 나가는 날을 기다린다. 먼저 와서 말한다.
“코상! 사진, 사진 찍으러 가~”
호상씨는 연애 시절부터 아내 은영씨와 군산 구석구석을 다녔다. 크고 작은 식당의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맛집 지도 ‘코상여지도’를 만들었다. 여행지와 사진 찍기 좋은 곳도 넣어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한다. 군산 사람들은 ‘오늘 뭐 먹을까?’ 검색하다가 호상씨 블로그까지 가게 된다. 자영업자인 음식점 주인들은 호상씨를 조금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제 블로그에 포스팅 올리고 대박 난 가게들이 있어요. 음식점 사장님들이랑 친해지죠. 저는 개인적인 혜택을 안 받으니까 ‘목양원’에 후원을 하고 싶다는 분도 계세요. 우리 가족들은 52명이니까 많잖아요. 다 가면 너무 미안하죠. 그래서 열 명씩만 가요. 한 달에 한 번씩 장보기 프로그램을 하러 나오거든요. 그때 가요. 다들 엄청 행복해하시니까 저도 좋죠.”
호상씨는 인터넷 카페 군산맛집스캔들(군맛스)에서도 활동한다. 정기모임과는 별개로 7-8명이 모여서 자원봉사를 다닌다. 한 달에 한 번씩 밥 먹을 때는 1만원씩 걷는다. 그때 구시가의 한 생선구이 집에서 밥값을 후원한다. 회원들은 그 돈으로 통닭 사고, 과자를 산다. ‘모세스 영아원’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먹이고, 이빨 닦이고, 낮잠 재우고, 청소한다.
‘코상’이었다가 사진을 찍으면서 ‘찍사코상’이 된 호상씨. 목양원에서 생활재활교사로 일하면서 미술치료사 과정을 공부했다. 그때 ‘모자원’으로 처음 봉사활동을 갔다. 그 한 번의 경험은 강렬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 자원봉사 속에 담겨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모가 없는 아기들을 돌보러 ‘모세스 영아원’에 가는 은영씨가 무작정 좋았나 보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행복했어요. ‘목양원’에 와서도 그래요. 제가 가족들을 돌보고 있지만 가족들도 저를 챙겨줘요. 정말 마음씨들이 고와요. 때가 안 묻었어요. 사소한 거 하나 바뀌어도 다 알아봐 줘요. 좋다는 표현도 진짜 많이 해 주시고요. 애기들이 글자 배우면 엄마한테 끊임없이 편지 쓰잖아요. 가족들이 저한테 써 준 편지가 박스로 한 가득이에요.”
칼국수 집 아들로 자란 호상씨. 출근하면 52명의 ‘가족들’이 있다. 퇴근하면, 아내 은영씨와 어머니가 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저녁밥 먹으러 나갈 때가 많다. 사람들은 호상씨를 알은 체 하며 “어디가 맛있어요?”라고 묻는다. 음식은 개인의 취향, 추천하는 게 어렵다. 그때는 만고의 진리를 내세운다. 지금, 좋은 사람이랑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