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1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모행사(2015 김대중 평화캠프)에 다녀왔다. 행사는 광주 5·18 민주묘지,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하의도 김대중 생가 등에서 이틀 동안 열렸다. 반가운 얼굴들과 조우했는데, ‘DJ 분신’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도 오랜만에 만났다. 기자가 “지금은 전북 군산에 거주한다”고 하자 박 의원은 대뜸 “군산은 김관영 의원 지역구죠. 김 의원은 호남 출신 의원 중 최고죠. 차기 지도자입니다”라고 했다.
박 의원은 “김관영 의원은 앞으로 호남을 대표할 청년 지도자”라고 거듭 강조하며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고, 조금 더 용감해지고, 그래서 대한민국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 박지원이도 뒤에서 돕겠다”고 덧붙였다.
김관영, 박지원 두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나이도 정치 입문도 박 의원이 훨씬 선배다. 나이 차는 많지만, 같은 당 소속이니 한편 생각하면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역구를 확인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극찬하다니 이례적인 일이어서 놀라웠다. 외지에서 만난 사람이 ‘군산’이라는 말만 꺼내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칭찬 선물을 받으면 발걸음이 경쾌해지듯 행사 내내 즐거웠다.
박 의원 말마따나 김 의원은 초선으로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3년 연속 국회 헌정대상, 제2회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2013 백봉 신사상 등 ‘우수국회의원 7관왕’의 위엄을 달성했다. 19대 국회에서 총 97건 대표발의 중 31건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는 제18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새만금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공약개발 1단장을 지내는 등 고향에서도 새만금 시대를 열어나갈 ’뉴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학창시절 별명은 오락부장, 성적은 중간 정도
김관영(46) 의원은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 출신이다. 시골 농사꾼의 다섯째 아들(6형제)로 태어났다. 군산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성균관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012 총선에서 고시 3관왕(행정고시, 공인회계사, 사법시험)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의정활동 3년 동안 서울과 군산을 오가며 지역민들과 호흡을 함께해온 그를 지난 14일 오후 군산 미즈커피에서 만났다.
김 의원은 타고난 장난꾸러기였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시험 성적은 50명 중 12등. 철부지 김관영은 그만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들은 ‘우리 집에 너같이 공부 못한 놈은 없었다’, ‘밥 먹을 자격도 없으니 한 끼 굶어라’라며 놀려댔다.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고 ‘권토중래’ 자세로 열심히 노력, 상급 학년이 되면서 5등 안에 들고, 졸업식 때는 ‘면장상’을 받는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에서 1등도 한다.
학창시절 별명은 오락부장. 실제 오락부장을 하면서 학교 대표로 노래자랑, 웅변대회 등에 나간 경험도 있다. 입상권에 들어 상도 받았다. 그래서인지 급우들에게 '무대 체질'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가슴에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새벽시장에서 채소장수로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가 시내버스 기사와 짐(배추) 때문에 입씨름을 벌일 때, 창피한 마음에 외면했던 게 평생의 빚으로 남아 있단다.
김 의원은 자신을 스스로 ‘대기만성’형이라고 평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노래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웅변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학생 소리를 들으면서 성적이 완만하게 올랐고, 진짜 공부의 재미는 대학에 들어가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1987년 민주화 운동 열기로 민심이 들끓던 대학 1학년 1학기를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거리에서 보낸다. 그리고 실력을 쌓은 후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지적인 쾌감과 희열을 느끼며 공부한 끝에 대학교 2학년이던 1988년 제23회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최연소 나이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 후 공부에 부쩍 재미를 붙인다.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 재경직에, 1999년에 제41회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고시 3관왕을 달성하는 사법고시는 동생과 나란히 합격, 각종 일간지에 소개되고, 온 가족이 KBS <마침마당>에 출연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인생의 고비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도전을 거듭해왔다는 김 의원. 그는 '멀리 넓게 보는 정치', 더불어 사는 삶이 목표이자 과정인 '즐거운 정치'를 실현하고 싶단다. 그래서 깨끗한 정치인, 소통하는 정치인, 대안 있는 정치인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팀플레이를 잘 운영하면서 이해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평한다.
김 의원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리더십을 거론한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은 현장(민주화 운동) 경험이 없어 의원 발의를 하면서도 생각이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단다.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자신에게 온갖 핍박을 가했던 권력자들을 용서했으며, 당내 계파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슬기롭게 극복해온 DJ 리더십은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존경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군산시 국가 예산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현재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경제는 지금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2~3년 후가 더 걱정된단다. 끝이 안 보이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남북이 화해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 경제도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는 요지이다.
아래는 김 의원과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품고 도전하라
-회계법인 3년, 기획재정부 7년,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변호사 10년 등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국민을 즐겁게 하고 즐거운 나라를 만드는 정치(국회)에 입문한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 가족과 개인을 위한 시간은 부족하지만, 사회 시스템 개선, 지역민의 목소리 대변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였다. 국회의원이 되어 얻은 큰 보람은 주말에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밥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지역민들을 만나 민원을 듣고 해결책을 찾는 일도 즐겁다. 능력이 미치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권언은?
야망을 품고 도전하라. 자기 미래에 대해 개척 정신을 가져라.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라. 시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계획은 실현 가능한 것부터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학생들 특강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다. 시험장에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 준비 할 때 ‘나는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준비 기간이 짧더라도 ‘반드시 된다’는 자신감을 갖고 목표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 이루어진다.
-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아는데?
그가 LG 트윈스 감독일 때 군산 월명구장에서 KIA 타이거즈팀과 경기를 가졌는데, 그때 이성일 도의원(군산상고 포수 출신) 소개로 알았다. 김 감독은 의리도 남다르고, 배려심도 깊고, 멋도 있는 남자 중 남자다. KIA 감독 취임 전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셋이 식사를 함께 했다. 지금도 가끔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는 전화할 때마다 ‘김 의원 얼마나 고생이 많아, 힘내, 내가 응원하고 있으니까!’라고 하면서 상대를 파이팅 하게 해준다.
군산시 국가 예산 1조 원 시대 임박, 보람 느껴
- 2012년 국회에 입성, 3년 연속 ‘국회 헌정대상’을 수상하고,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입법 활동도 무척 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새정치민주연합 탄생을 주도하면서 당 수석대변인, 대표 비서실장 등을 경험했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로 최우수 법률상을 수상하는 등 영예로운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과분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경험이었다. 우리 당이 지지자들로부터 질책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막중한 책임감 속에 작년 12월에는 정부가 내놓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 반대 토론자로 나서 여당 의원들을 설득, 부결시키는 쾌거도 이뤄냈다.
그러나 국민의 염원과 변화를 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정치는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육아와 보육, 교육과 의료, 여성과 청년,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편에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 경제성장과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치밀하게 반문하겠다. 그래서 이기는 정당,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군산시 국가 예산 증액에도 남다른 활약을 보여줬다. 그 배경은?
3년 전 총선에서 당선되고 어떻게 하면 강봉균 전 의원님보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중앙부처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결과 2015년 군산시 국가 예산을 9,365억 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당선되던 해(2012) 기준 52.8% 증가한 금액으로 국가 예산 1조 원 시대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수치이기도 해서 보람을 느낀다. 예산확보 배경에는 관련 부처 면담은 물론 300개에 달하는 국가사업을 철저히 분석한 각종 데이터를 통해 가능했다.
새만금 개발의 토대가 될 방수제 사업과 관련 정부 반영이 2,800억 원이었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200억 원을 증액하고, 새만금 신항과 금강 2지구 농업개발사업, 수출전략형 미래그린 상용차 사업, 군산대 공동실습관 사업 등에서 513억 원을 증액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기획재정부 근무 경험이 예산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군산 발전에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 바쁜 일정에도 의정활동 소회를 담은 <즐거운 정치> 책도 펴냈다. 김 의원이 추구하는 즐거운 정치, 희망의 정치는 어떤 것인가?
즐거운 정치의 콘셉트는 먼저 정치를 하는 당사자가 즐거워야 한다. 하는 사람이 신명 나지 않는데 구경하는 사람이 어떻게 즐겁겠나. 두 번째는 정치도 서비스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의 수혜자인 국민에게 플러스가 되고 또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인을 만나 애로점을 얘기했더니 법과 제도가 개선되고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아지는 것이 즐거운 정치, 희망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DJ, <김대중 자서전> 읽고 더욱 가까워져
-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하고 부모님 농사일 돕느라 정신이 없었고,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알았다.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1987년이었다. 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사독재와 맞서 싸워온 대단한 정치인 정도로만 알았는데, 국회의원이 되고, 의정활동을 하면서 그분의 정신과 리더십이 필요한 것을 더더욱 느낀다. 실사구시 정신, 행동하는 양심 등 그가 남긴 말들이 지금도 유효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 DJ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는 이유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소신껏 살아온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상이 뒤집힐 줄 알았는데, 노태우 사람인 김중권을 비서실장에 기용하는 등 포용력도 대단하다.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투쟁할 때 <김대중 자서전>을 읽으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투쟁을 접고 국회로 복귀해야 한다.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을 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대목이 경종을 울렸다.
김한길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통해서도 드라마 같은 인간 승리의 정치 역정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DJ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적절한 타협, 실사구시 정신으로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대승적으로 양보할 줄 아는 폭넓은 정치인이었다. 성실 근면하고,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 자신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점등이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그중 ‘DJ 리더십’은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다. 초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당 대변인과 대표 비서실장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DJ 리더십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특히 '행동하는 양심'으로 표현되는 실천의 리더십과 '서생적 문제 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알려지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리더십은 DJ 경험과 실천을 통해 보여준 것이어서 교훈적이다.
서민경제 살리기는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가 그 첩경
- 대한민국은 서민경제도 남북 대화도 위기라고 진단했는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분단의 역사를 가진 나라,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뿐인가. 저출산에 고령화, 극심한 양극화 현상까지 보인다. 민주주의 후퇴와 최근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는 미래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그렇다고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열쇠 노릇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민경제를 살리는 길은 그 첩경이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다. 며칠 전 자유총연맹 군산지회 강연회에서도 남북 경제교류는 북한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가 원만해야 국민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에 활로가 트인다. 외국 투자도 늘어난다. 이는 남북 화해협력을 공약으로 내걸고 남북정상회담과 외환위기(IMF)를 앞당겨 극복한 김대중 정부 경제지표에도 잘 나타난다.
인터뷰가 끝나고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나가사키 18은행(근대미술관), 구 조선은행(근대건축관) 등을 돌아본 김관영 의원은 “예산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라며 “더 열심히 노력, 군산 발전과 서해안시대를 열어가는 데 앞장서겠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선도지역사업과 농림부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등 정부 공모사업 선정을 어렵게 이끌었다. 이를 통해 국비 165억이 도시재생사업에 4년에 걸쳐 투입돼 군산이 근대역사문화 관광도시로 거듭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