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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카페 이야기> 세 번째
글 : 이진우 /
2020.08.01 09:35:1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카페 <음악이야기>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 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의욕이나 희망 대신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절망의 끝에서 만난 카페 <음악이야기>. 그들이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이 소설을 통해 함께 웃고, 같이 울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 배경, 인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01. 잃어버린 꿈

 

현우 (2)

 

하루가 꿈속에서처럼 지나갔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하루 종일 하청업체 사람들의 전화에 시달렸고, 연락이 되지 않는 정대표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웠다.

현우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깜박 잠이 들었다. 악몽에 시달렸다. 눈을 떴다. 예기치 않은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누워있던 현우가 몸을 일으킨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어지럼이 그를 덮쳐왔다. 다시 침대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느낌으로 멍하니 누워있는데 침대가 뱅글뱅글 회전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구토를 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슴에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금방이라도 가슴이 양쪽으로 빠개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가슴을 움켜쥔 현우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음 직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를 불러야 할까?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 할까? 핸드폰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순간, 현우는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으면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살아서 고통을 겪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예 목숨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점점 명료해졌다. 그저 얼른 이 고통이 끝나고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바랐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눈을 감았다.

20분쯤 지났을까. 아니, 30분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았다. 어느새 어지럼증과 가슴 통증은 사라졌다. 온몸은 맥이 풀렸고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이불을 칭칭 감아 몸을 감싸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눈물이 솟구쳤다. 어떤 의미의 눈물인지 알 수는 없었는데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지나온 세월 속에서의 일들이 장면 장면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현우의 가슴에 회한을 안겨주었다.

불면의 시간이 흘렀다. 현우는 애써 잠을 청하려 하지 않았다. 밤이 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면 마주해야 할 일이 두려웠다. 그래도 어제까지는 견딜만했는데 이미 소문이 퍼져버린 까닭에 오늘부터는 더 가혹한 일들이 생길 것이 뻔했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현우의 생각은 점차 변해갔다. 심해와도 같은 새벽의 시간이 현우를 감성적으로 지배했다면 아침의 시간은 그를 보다 이성적이며 엄격한 사람으로 변모시켰다. 하청업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두려움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이 더 끔찍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하청업체들의 전화와 항의를 신미숙 과장 혼자서 감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현우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마의 돈과, 회사 사무실 보증금을 합하면 절반은 되었다. 나머지 절반은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먼저 죽마고우 윤호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 아닌 윤호라면 해줄 것만 같았다. 같은 마을에 태어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정을 지속해온 두 사람은 형제와 다름 아니었다. 지난 50여 년의 세월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막역한 사이였다. 처음으로 돈 얘기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윤호라면 분명히 해줄 것이라고 현우는 의심하지 않았다. 나이 60 될 때까지 열심히 돈 벌어 고향 마을에 나란히 집 짓고 여생을 함께 보내자는 굳은 맹세까지 한 사이였다.

"현우야, 니 딱한 사정은 알겠는데... 나는 우리 사이에 돈문제가 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야."

얼마나 필요한지조차 묻지 않은 윤호가 그렇게 말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쉰둘에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 사실을 처음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다. 생사를 같이 할 수는 있어도 우정을 위해 돈 문제는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살아오면서 그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괴로웠다. 열심히 돈 벌어서 나란히 근사한 집 지어 여생을 함께 보내자고 말하곤 했던 자신이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윤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맞장구를 쳐줬을까. 그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으리라. 차라리 말을 하지나 말 것을 하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하청업체 사람들에게 기다려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정대표는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일까. 이 정도의 돈은 스스로 조절할 능력이 있었을 텐데. 혹시 도박에 빠져있는 걸까? 아니면 무슨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현우가 정대표의 횡령 이유를 이리저리 생각하며 추측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들도 나름 예의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이른 아침에는 조용하던 전화기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현우는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또 다른 나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회사 출입문에 이르렀을 때 문 앞에 있는 설비업체 김사장의 모습을 보았다. 회사문은 잠겨있었다. 이미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난 시각이지만 신미숙 과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현우는 마음이 서늘했다. 신과장이 판단하기에도 회사는 회복이 어려워 보였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가 험한 일들을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 출근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문 도어록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등줄기를 타고 뒷머리까지 올라왔다. 혹시나 싶어 신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도대체 누가 번호를 바꿔놓았다는 말인가. 곤혹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건물주가 나타났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를 황회장이라고 불렀다. 예기치 않은 이 미묘한 상황에 현우는 까닭을 모르면서도 섬뜩함으로 몸을 떨었다.

 

이대표님 워쩐 일로 오셨당가요?”

어쩐 ... 일이라니요?”

황당하기 짝이 없는 황회장의 물음에 현우는 서늘해진 간담으로 대답했다.

오메, 모르셨는갑소? 이 사무실 오늘 아침부로 계약 끝났는디?”

현우는 아찔했다.

사실은 그저끄가 계약일인디 정대표가 이틀만 시간 달라고 으찌나 사정사정을 흐던지, 여그 있는 짐 어찌케 흐든 일체 상관하지 안흐겄다고 도장 찍고 계약 해지혔는디 몰랐는갑소 잉. 그 머시냐 여그서 일흐던 여자분이랑 같이 왔었는디 이대표님은 모르셨던가비.”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여기서 일하던 여자분이라면....?”

, 왜 그 있잖으요. 신 머시기 과장이라고 아지맨지 아가씬지.”

현우는 일순 또다시 악몽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허 참, 이대표님만 모르고 둘이는 다 알고 있었고만. 완전 짜고 쳤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사장이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을 때에야 현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가까스로 생각해낸 것이 정대표와 신과장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이제야 강한 의구심으로 떠올랐다. 정대표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을 깨고 이번엔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이혼한 거 모르셨어요? 그 인간이 현우씨한테까지 속였군요. 그 인간 여자한테 미쳐서 부모고 자식이고 다 팽개치고 도망갔는데 모르셨어요?”

여자.... 여자.... 그 여자가 혹시 신과장이란 말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 보증금을 보탤 생각이었던 현우는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현우는 정대표와 신과장의 배신에 더 큰 충격으로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현우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후배 수민을 불러 낮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수민은 연신 너무 걱정하지마라고 하면서 위로를 했다. 술자리는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맨 정신으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버티다가는 정신이 이상하게 될 지경이었다. 어떻게 집에까지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현우는 자신의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12. 고요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이 평온함 속에서 그는 문득 죽음을 생각했다. 그 의식은 매우 깊고도 진지한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죽음에 대해 이만큼 강한 의식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죽고 싶은 이유를 떠올렸다. 무엇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지조차 현우는 분별하지 못한 채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저 사람이 좋고, 예술이 좋고, 가치 있는 것을 향유하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자 도움을 청하면 그는 언제나 기꺼이 응했다. 물질보다는 정신을 사랑했고,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누려왔다. 정대표와 회사를 경영함에 있어서도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만 돈을 챙기는 일에서는 똑부러지지 못했다. 후회는 아니었지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의 태도와 자세가 이제는 한낱 몽상가의 허망한 몸짓에 지나지 않게 여겨졌다. 생사를 같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우정을 지녔다고 믿었던 친구에게서도 현우는 더 이상 막역지우가 아닌 무능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이 무모하게까지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현우에게는 더 이상 살아갈 가치도 용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끝났다. 현우는 술이 덜 깬 몸을 일으켜 오디오 기기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원을 켜고 블루투스 연결 메시지가 뜨자 핸드폰 유튜브에서 노래 한 곡을 찾았다. 독일 출신의 프로그레시브락 밴드 오우겐바이데(Ougenweide)’죽음)>이라는 곡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음산하면서도 어둠을 싣고 점점 크게 거실을 채웠다. 현우는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 눈을 감고 온 정신을 끌어 모아 음악을 들었다.

 

 

, 죽음, 잠들게 해 줘.

조용히 쉬게 해 줘

지친 죄 없는 영혼을 보내자

내 비참한 가슴에서.

통행료를 내야지

내 어리석은 녀석을 불러내

내 죽음의 소리가 들려

나는 죽어야 한다

치료법은 없다.

나는 죽는다.

 

현우는 같은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희부연히 여명이 올 때까지 그 의식을 계속했다. 그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옷을 입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거나 중요한 장소에 갈 때처럼 그는 정장을 입었다. 현우는 음악을 듣는 동안 내내 자살 방법을 생각했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는 5층이라서 자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목을 매는 것은 흉측하게 나와 있을 혀가 끔찍해서 싫었다. 문득 수영을 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결정했다. 인근에 있는 다리 위에서 투신을 하는 것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는 3분 안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다리 건너였다. 하지만 계획대로 다리 중간쯤에서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택시기사가 의아해했지만 현우가 강력히 요구하자 내려주었다. 택시가 떠나고 보이지 않자 현우는 다리 난간에 섰다. 난간은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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