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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빛을 닮은 산꾼의 눈빛을 만나다
글 : 이소암 / lsa6246@hanmail.net
2024.02.20 18:24:5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산빛을 닮은 산꾼의 눈빛을 만나다

 

이 소 암

운명의 역마살, 산으로 이끌다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그 이끌림의 힘을 인간은 거부할 수 없는 걸까.

그가 처음 산행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농번기방학 때였다.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기로 했는데 사전에 알아차린 아버지께서 무슨 이유에선지 가지 못하게 막으셨다. 새벽 두 시, 일곱 장 장문의 편지를 써놓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첫 날부터 34일 내내 비를 맞고 종주를 했다. 장터목산장에서의 마지막 밤, 오로지 친구들뿐인 칠흑 같은 어둠 속, 흔들리는 촛불 하나와 산장 모서리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밤새 괴성을 지르고, 장대비가 벽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다시피 붙어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끝내고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산이 학년 말쯤 되자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친구 몇 명과 산악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하면서부터는 각자의 일에 쫓겨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고, 결국 혼자만의 고독한 산행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십대 솔로 활동을 하던 등반은 전문 등반에 한계가 있어 산악회 활동을 했다. 운 좋게도 당시 도내에서 가장 유명한 파이오니어스산악회에 입회하여 활동했다. 전문등반(,빙벽)을 하는 열정적인 산꾼들에게 하얀산(히말라야)에 대한 열망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기는 게 인지상정이라 한다.

산악회에서는 1992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맥의 미답봉인 루프가르사르 동봉(7,200m)을 원정 등반하였으나 마지막 캠프4에서 눈사태로 두 명의 대원이 실종되는 사고로 실패하였습니다. 그 후 1995년 두 번째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2006년 세 번째 도전을 하였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후 해외등반은 1999년 유럽의 최고봉인 코카서스산군의 엘부르즈(5,642m)등정, 2004년 중국 사천성 오타이나(5,210m)등정, 2008년 운남성 하바설산(5,396m) 등반, 2011년 사천성 당령설산 하강납(5,474m), 하강날아 패스(4,810m) 등반, 2013년 옥룡설산 (4,800m), 2016년 네팔 히말라야 랑탕트레킹(4,773m), 2018년 네팔 안나프르나 트레킹(4,100m) 등을 했습니다.”

엘브르즈는 고산병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사흘을 굶은 채 후배들을 엘브르즈 동봉과 서봉의 중간지점인 새들포인트(5,416m)까지 인도하고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후배들(4)이 아무도 올라오지 않아 체력 고갈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유일하게 정상에 올랐다.

오타이나는 한국인 최초 등정이었으나 등반당일 악천후로 예상보다 두 시간 늦게 진눈깨비를 뚫고 정상 등정했다.

201312월 교통사고 후 후유증으로 철심을 박은 상태에서 온전치 않은 다리에 철제보조기를 차고 2016년 랑탕과 2019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완주했다.

 

인생의 최대 협곡을 건너

 

내 인생에 고비는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IMF 때 누님 보증 빚으로 전 재산이 날아갔고 그 후 18년 동안을 반토막 봉급으로 살았습니다.”

두 번째는 크리스마스 이브 귀가길,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역주행해 오는 차량과 충돌하여 죽음 문턱까지 갔던 일입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왼쪽 다리에는 쇠 파이프와 나사못으로 지지하고 있고, 무릎 관절이 굳어 접혀지지 않으나 법적으로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는 장애인입니다. 이 사고로 균형감각을 잃어버려 전문 등반은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고, 등반 능력도 반감되어 사고 전과 같은 도전정신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세 번째는 절망 같은 암 덩어리가 찾아왔습니다. 신장을 하나 적출해 냈지만 암세포는 이미 임파선을 타고 나가서 그 후 두 번의 전이와 한 번의 부작용 수술 등 해서 삼 년간 네 번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죽기보다 싫은 항암의 고통도 맛보았고, 떠도는 암세포를 잡 으려 아직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2018년 안나푸르나 트래킹

 

 

돌아보는 먼 길

 

그는 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강력계 형사로 공을 인정받아 내무부 장관상을 받고 승진한 경찰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퇴직을 하시고,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건축업)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자본금이 사라졌고, 이후 사업은 빚잔치여서 중학교 시절부터 생활고를 겪을 만큼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실업계고등학교 3학년 취업을 준비하던 중 친구가 공무원시험 원서를 사러 간다는 말을 듣고, 그 친구에게 원서를 한 장 더 부탁해서 시험을 치렀는데 운 좋게도 합격이라는 행운을 얻어 졸업 전 만18세에 군산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내는 군산시청 같은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가 당신을 산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으므로 나보다 당신이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면 되었고, 주말엔 산을 가는 데 반대하지 않는 것이면 족하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그가 산을 다닌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산에 대한 이해는 더이상 구할 필요가 없었다.

 

산이 나를 거부하지 않을 때까지

 

2021년 그는 40년 공직생활을 군산시청 수도과에서 퇴직하였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예전 육 할 수준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지리산 자락에 있으며 끊임없이 산을 오르고 있고, 2021년 지리산둘레길 285km, 2022~23년 제주올레길 437km를 완주하였다. 2023년에는 중앙아시아 키르키스탄 텐샨산맥의 알틴아라샨(Altyn Arashan 3,810m)를 다녀왔다.

하늘이 허락한 잔여 생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올해는 더 늦기 전에 파키스탄 루프가 르사르 BC에 가서 아직 만년설 속에 묻혀있는 악우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동판을 설치하는 일과 안나푸르나 서킷(5,416m)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내년쯤엔 코로나로 미뤄진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산빛을 닮은 그의 눈은 이미 만년설에 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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