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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무지개’ - 무지개 활어수족관 정태호 부부
글 : 채명룡 /
2019.09.01 14:30:2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내 인생은 ‘무지개’

- 무지개 활어수족관 정태호 부부

- 봉사와 기부, 소상공인의 귀감




 

 32년 동안 수족관에 무지개를 그리며 살아 온 정태호·김점덕 부부. 살면서 힘들다 타박하지 않았던 아내였고, 아내의 말이라면 그대로 따랐던 남편이었다.

 

 토끼가 발맞추는 남원 운봉과 인월이 고향인 부부가 군산에 마음 붙이기까지는 힘든 세월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자석처럼 붙어사는 천생 인연이었고,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았다.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넘어 이제는 ‘수족관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부부의 삶이다. ‘무지개 수족관’하면 군산은 물론 전국에서 다 알아주는 이름이다. 관상어에서 활어수족관까지 한 시대를 주유해 온 부부의 이야기는 참 남다르다.  

 


 


 

 

 

 “일을 끝낼 때쯤이면 동네 할머니들이 어둠을 가르며 새벽기도에 나서는 걸 바라보았어요. 그렇게 일할 때가 다반사였지만 힘든 줄 모르고 했어요.” 

 

 열대어, 해수어, 수초, 산호 등등을 유리관 안에 넣어 시원한 그림을 만들어 판매하는 관상어 사업이란 보기만큼 녹녹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일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땐 참 열심히 살았어요.” 첫째 딸 주연, 둘째 아들이 공무원이 된 동준이다. 도로 변에서 일을 하였기에 어항 안에 아이를 놀게 했다. 

 

 정 사장은 일곱 살 때 고향 산골의 ‘대성당’ 이라는 서당에서 공부하면서 자랐다. 청년 때 배추, 사과 장사를 하면서 눈에 담아 둔 인월 처녀 점덕씨. 피 끓는 청춘들의 인연은 서울에서 이어졌고, 오늘까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 

 


 


 

 

 “군산에 1989년 2월에 처음 내려와 시작했는데, 그 때도 가게 이름도 무지개 수족관이었고 그 이름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어요. 앞으로도 무지개로 남을 겁니다.” 

 

 군산과의 인연 또한 참 독특하다. 80년대에 좌석버스 기사를 했던 남편 월급이 25만원, 알뜰했던 아내이지만 참 힘들었다. 2년만에 그만 두고 네온오크라고 하는 사업체를 잠깐 할 당시의 원재료가 군산 백화양조에서 ‘베리나인’을  숙성하고 난 빈 오크통이었다. 

 

 군산의 백화양조가 없었더라면 정 사장 부부의 군산행은 아마도 없었을 거다. 빈 오크통을 잘라서 유리관을 씌우면 어항이 되었고, 유리와 받침을 만들면 장식장이 되었다. 그런 소품들을 만들어서 현대백화점에 납품도 하고 일반 가정에 팔았다. 

 


 

 

 “오크통으로 소품을 만들던 시기에 수족관을 오래한 친구를 만났고 거기에서 아이템을 잡았지요. 군산에 내려와 빈손으로 시작했는데, 오늘날 건물 몇 채와 부동산도 있고, 가족들이 모두 제 자리를 잡았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  

 

 정 사장은 나름 학구파이다. 소리 없이 예절학교인 ‘공주 도령서당’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군산에 서 빈손으로 사업을 할 때에도 10년 동안 해외 교육 연수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끈기를 지녔다. 

 

“독일의 테트라 등 회사에서 관상어 사업 하는 이들을 초대했는데 비행기만 타고 가면 먹고 자는 문제는 물론 교육도 받게 해줬어요. 그렇더라도 그 당시 100만원이 넘는 비행기 값은 큰돈이었는데 아내가 그 돈을 마련해줘서 공부할 수 있었지요.” 

 


 

 

 관상어 일이란 열대어 등 물고기에 모래, 수초, 산호 등 장식물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주느냐의 일이며,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감각이 중요하다. 그 걸 외국 연수 다니면서 눈에 익히고 감각을 세계화 하면서 남들보다 앞서서 나갔으니 전문가로 일어서는 건 당연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시작해서 막막했는데, 해외 초청 교육이 정말 도움이 됐지요. 견문을 넓히면서 수족관 관련 기술을 많이 축적했는데, 그 때의 공부가 부족하나마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시절

 

 “활어 수족관이 유행한 건 비브리오 패혈증이 수온 15도 이하에선 옮겨지지 않는다는 게 알려지면서 횟집마다 냉각 수족관을 들여 놓은 게 단초가 되었어요. 요즘은 낚싯배에도 이런 수조관을 놓는 게 유행이고요.”

 

 부부는 2013년부터는 금동(해망로) 사업장에만 전념하고 있다. 활어수족관업을 하면서 광어 축제 등에 수족관을 임대해주는 업체로 유명해졌다. 다른 집에서는 못하는 걸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려면 대형 수족관이 몇 십개 씩 필요한데, 그런 물량을 갖춘 업자가 없었어요. 저는 금동과 미장동에 창고가 있었기에 그런 장비를 갖출 수 있었고 맞춤형으로 물건을 대줄 수 있었지요. 아마도 전국 활어 행사의 절반 이상은 무지개에서 대주는 시설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군산의 경우 활어수족관과 관상어를 하는 업소를 합하면 다섯 집 정도인데 모두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부. 여러 모임과 봉사도 하지만 군산소상공인협회의 일원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소상공인 모두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무지개 수족관’ 시절이나, ‘무지개활어수족관’ 시절이나 정 사장 부부는 가족 경영이다. 처음엔 아내와 둘이 일했고, 그 이후엔 처제가 도와주고, 시간이 지나니 사위와 딸이 일을 돕고 있다. 아들은 공무원이고 딸은 군산의 체육인 박영민씨 며느리이다.

 

 현대중공업에서 사업하던 사위는 요즘 재기 중이다. 공장이 문을 닫자 직원들과 함께 산다고 고생고생 하다가 가진 걸 모두 잃은 후의 일이다. 

 

 “사위가 이 일을 해보더니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지켜보고 있거든요. 어쩌면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위가 직원들을 위해 온 몸은 던진 그런 기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남자의 의리인데, 그런 아픔이 이 사업에 힘이 되리라고 보거든요.” 

 


 

 

 관상어 사업이 힘들지만 딸과 사위가 사업을 잇는다고 하니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부는 오늘 아침에도 비응항에 나가 냉각 수족관을 설치해 주고 왔다. 낚싯배의 서비스도 이렇게 진화했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부부 또한 손 놓을 시기를 생각하고 했다. 하나씩 하나씩 자식들이 뒤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모두가 한 가족이니 천천히 이야기 나눌 일이다.

 

 “사위가 일하고 다니는데, 거래처에서 ‘아빠를 닮았는가,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똑같이 혀’라는 소리를 해줄 때가 가장 기분 좋다.”고 말하는 정 사장 부부에게서 오색 빛 무지개를 본다.

 


무지개활어수족관

군산시 해망로 275(금동 55-1)

(063)443-1595

010-3671-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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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5 12:31:39) rec(15) nrec(16)
성실과 신용 형제애가 돈독하신 정 태호대표님
늘ᆢ사업 번창하시고ㅡ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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