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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불 경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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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1 16:26: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나 황인구가 인구 이십만이 넘는 이 도시의 시장(市長)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시장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통솔력이라면 초등학교 때 반장은 기본이고 밀가루 대리점 사장부터 시작을 해서 막걸리 양조장까지 CEO를 두루 거친 요즈음 말하는 준비된 정치인으로 오히려 늦은 감조차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출마를 하라는 권고는 진작부터 받고 있었다. 비록 나에게 술을 얻어먹고 주절대는 주정뱅이들의 좀 과장된 아부였겠지만 그들도 엄연히 신성한 한 표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이다. 모름지기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보면 순전히 헛소리였다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지금껏 결심을 미루고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치는 많은 돈을 만져야 하기 때문에 숫자에 밝아야 하는 것이다. 한데 사실말해서 나는 셈이 좀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지방정치가 생기면서 너도나도 머슴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대감 집 청지기라면 몰라도 단순 머슴이라면 나도 해 볼만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이 도시에서 제일 잘난 사람을 뽑는 것도 아니다. 지역 당에 들어가서 중앙에 줄잡아 뭉치 돈 갖다 바치고 공천만 받고 나면 상황 끝나는 것이다.

  

지역 당 간판만 걸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당선되는 것이 이 바닥 정서다. 시민여론이야 무료로 전화기를 나누어주고 조작을 하면 된다. 그러고 보면 나의 가장강적은 현 시장이다. 전략공천 어쩌고 하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번 선거에서 집까지 팔아다 바치면서 한번만 하겠다고 울면서 매달려 공천을 따냈다고 하더니 고기 맛을 본 중처럼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서 흠집을 내보려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보았지만 힘과 돈을 함께 갖고 있는 현직이고 보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서기에는 이르다.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이 바닥이다.

  ‘남이 차려놓는 밥상에 내 명함을 돌리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가 제일먼저 외치는 구호다. 오늘은 구도심 기차역에서 명함을 돌리기로 했다. 철도로선 변경으로 신역(新驛)이 생기면서 지금은 텅 빈 건물로 남아 있다.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노숙자들에게 공밥을 준다는 소식이다.

  아무나 가면 주는 밥이다. 굳이 봉사식당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다. 보나마나 관공서 돈 갖고 현 시장이 하고 있는 선심정책일 것이다. 심부름을 하는 여자들이야 뻔할 뻔자다. 관청의 간부 마나님들이 여성 단체에서 나왔다고 헛소리로 설치고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가난은 나라도 구제를 못한다고 했다. 까짓 식은 밥 몇 덩이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얄팍한 속셈이 훤히 보인다. 탓하면 무엇 하랴. 역으로 이용하자. 선거 운동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니다. 아무나 차려놓은 밥상에 내 명함 돌리면 그만이다. 교활하게 머리 잘 쓰는 놈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 선거다.

  

흥선대원군 같이 높은 사람도 잔치판은 빼먹지 않고 찾아 다녔다고 하지 않았던가? 노숙자들과 함께 밥그릇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신문이라도 한 쪽 나 준다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가 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미래 시장과 함께 조찬을 나눈 거렁뱅이들은 가문의 영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론조사도 덤으로 오게 되어있다.

  

이른 봄 쌀쌀한 바람에 한기가 든다. 일부러 찾아 입고 나온 헌 잠바 덕분이다. 택시를 타고 가야겠지만 이런 날은 일부러 라도 걸어야한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장후보가 걸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후회들을 할 것이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역사 건물 앞에까지 왔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매일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공밥을 주는 곳이라지만 식당치고는 너무 썰렁하다. 깨어진 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함께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더미에서 퀴퀴한 냄새가 역겹다.

 

이 딴 곳에서 봉사식당이라니 기가 막힌다. 하기야 선거운동에 체면 지킬 일 있더냐? 이것도 공밥이라고 타 먹겠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양손에 식기와 수저를 나누어 들고 서있는 모습들이 구질구질하다.

  

나만 시장으로 뽑아라. 당장 난로부터 놓아주마. 아니다. 시청 광장에다가 가마솥을 걸어 놓고 아침부터 시작해서 새끼를 다 주겠다. 시장이 시민들 밥 주겠다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큰소리로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개 같은 선거법 때문에 참고 말았다.

  

밥을 나누어주겠다고 나온 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에서 따로 반찬만 챙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신문에서 취재를 나왔는지 젊은 기자가 카메라를 디밀고 그들 앞으로 달려들고 있다.

  “험!”

  은근 슬쩍 기자 옆으로다가 갔다. 기자가 알아보았는지 이번에는 내 얼굴에 카메라를 겨누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아찔한 긴장감이 이마를 스쳐가고 있었다.

  ‘무료 급식소에서 서민 과 함께 하는 미래시장’

  내일 신문의 사회면의 톱기사가 깜이다. 순간 나르듯이 달려가서 양손에 식기와 수저를 챙겨들었다. 기왕이면 노숙자들과 함께 밥을 먹는 모습으로 찍히고 싶었다.

  “그럼 그렇지!” 

  양손에 식기를 들고 줄 속으로 끼어들면서 포즈를 잡아주는 내 모습을 기자가 감동의 표정으로 계속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시치미를 떼면서 거드름을 피우다가 기웃 둥 나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갑자기 내 등 뒤로 누군가 밀치고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이 딴 곳에서조차 새치기를 하려는 무식한 놈이 있다. 기가 막힌다. 등을 돌리고 보니 못생긴 키 작은 영감이 미안한 기색도 없이 얌체 같은 얼굴로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험하게 노려보았지만 영감은 콧노래를 부르듯 아랑곳이 딴전 만 부리고 있었다. 뭐 이따위가 있냐? 생각 같아서는 한 주먹 쥐어박아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처지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짜증을 참고 억지웃음과 함께 한발 양보를 해 주는 척 했다.

  “어럽쇼?”

  분수도 모르는 영감이 오히려 나를 째려보았다. 욱하고 감정이 치올라 오는 것을 간신히 참다가 나도 모르게 등이 간질거렸다. 혹시 전부터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일까? 주춤거리는 내 앞으로 가뜩이나 한쪽으로 기우러진 머리통을 디밀던 영감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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