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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도둑맞은 배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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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15:10:4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몸이 좋지 않은가 보구나.”

놈이 안타까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

사실대로 말하기가 싫었다.

“나한테까지 숨길게 뭐냐?”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 나섰다.

“폐가 좀 안 좋다.”

“불쌍한 새끼. 살만 하니까 마가 끼었구나.”

근섭이가 아주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자존심이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영심씨가 고생이 많겠습니다.”

이제 영심이를 제 마누라 부르듯 하고 있다.

“아무 걱정을 마시오. 이제부터 내가 이 친구 병을 아주 뿌리 체 뽑아 줄 겁니다.”

제법 비장한 목소리다.

“정말이세요?”

“영심씨 앞에서 헛소리하겠습니까? 내가 이번에 K제약 영업소장을 맡아서 내려왔지 않습니다.”

“어머머,”

나도 처음 듣는 소리다.

“폐병쯤은 병도 아닙니다.”

원래 허풍이 좀 심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친구 병줄을 놓고 장난이야 칠까?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영심이가 잽싸게 달려가 술상을 챙겨 들고 왔다. 내가 옆에서 오징어 다리를 씹고 있는 동안 녀석과 영심이가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벌써 소주가 세 병째다.

“염려 푹 놓아라.”

근섭이가 벌 개진 얼굴로 해죽거리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그래.”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아니 영심이 말대로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주병이 바닥이 났을 때는 꽤나 깊은 밤이었다. 엉기적거리던 근섭이가 마지못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술 얻어먹었습니다.”

“왜? 벌서 가려고?”

졸고 있던 나는 다행이다 싶었지만 인사치레로 말했다.

“오라는 곳 없어도 바쁜 사람이다.”

“숙소가 어디냐?”

“여관이지.”

“이 늦은 밤에 어떻게 가세요?”

인사로 대작을 해준다고 제법 마신 영심이가 풀어진 눈으로 해롱거렸다.

“신혼을 방해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신혼은 무슨?”

쑥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였다.

“우리 한잔 더 해요.”

영심이가 어디다 숨겨 두었던지 다시 술병을 찾아 들고 나왔다.

“좋지요.”

근섭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은 남남이에요.”

술 취한 그녀가 이제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아예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근섭이가 물기 흐르는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흘끔거리면서 다시 술상 앞으로 다가앉는 것이었다. 나는 피곤해서 더 앉아 있기도 귀찮았지만 어떻게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의 근본이 어디로 가겠는가?  어릴 때부터 교활하기로는 유명한 인간이 아니었던가? 왜 내가 잠시라도 그걸 잃어버렸었는지 모를 일이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했던가? 정말 그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근섭이의 행실을 보자면 함께 자랐던 고향 마을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금숙이 엄마라고 혼자 사는 여인이 있었다. 시체 말로 과부로 딸만 하나 데리고 살았는데 행실이 좋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모두 그녀를 화냥년이라고 했다. 끼 있는 마을 남자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터놓고 지내는 것이 근섭이 아버지였다.

그녀 집 뒤에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었다. 햇볕이 좋은 봄날 내가 놈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그녀 집 뒤 언덕에 올라섰다. 장독대가 훤히 보였다. 마침 봄볕에 익히느라고 장독 뚜껑을 모두 열어 놓았다. 근섭이가  싱긋 웃더니 갑자기 바지를 끌어내렸다.

“뭐 하려고?”

“잘 봐라?”

놈이 장독대를 향해서 냅다 오줌을 갈기기 시작했다. 오줌줄기는 거세게 날라서 직통으로 고추장 단지로 떨어져 내렸다.

“어어, 큰일 났다.”

나는 기절할 듯 놀라서 놈을 쳐다보았다.

“금숙이는 내 꺼다.”

“무슨 소리여?”

“히히히.... 내 오줌 먹었응게 내 꺼라 이 말이여.”

그게 끝이었으면 다행이었다. 온 동네에다가 금숙이가 근섭이 제 오줌을 먹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마을사람들은 그 아비에 그 아들놈이라고 수군대면서도 아무도 혼자 사는 과부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싹수부터 노랗던 근섭이를 깜박 잊어버리고 친구라고 받아 준 것이 잘못이었다. 저녁에 밥까지 먹여 주었으면 그만 돌아갈 줄 알았다. 한데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고 있는 근섭이를 보면서 문득 옛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돌려보낼 명분이 없을까? 하고 영심이를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이었다. 금반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의 기 투합해서 다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미 밤 열두시가 넘어 통금이 시작 된지 오래다. 이제 간다고 해도 보낼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나는 피곤해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근섭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부부사이에 끼어들어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몸은 피곤했지만 출근을 해서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을 때 어이가 없었다. 근섭이가 제집 찾아오듯이 나보다 먼저 퇴근을 해서 아랫목에 당당하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 근섭씨가 당신 약을 가져왔어요.”

    영심이가 호들갑스럽게 큼지막한 약병을 하나 내밀었다.

“무슨 약이냐?”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나를 생각해서 약을 가져온 사람에게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십 전대 보환이다. 보약이다. 한 병만 먹어도 네 병 따위는 씻은 듯 사라질 것이다.”

금반지에 보약까지 나도 나지만 영심이가 감격을 해서 눈물까지 글썽이었다. 그날 밤은 저녁상에서부터 술이 취해 또 함께 새웠다. 우리의 이상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영심이가 내게 십전 대보 환을 정성스럽게 챙겨 들고 왔다. 가져 온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정성스럽게 먹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과연 보약이었다. 며칠 먹지도 않아서 눈에 띄게 몸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첫째 그 지겹던 불면증이 없어 진 것이다. 초저녁부터 시작을 해서 잠을 자는 것인지 졸고 있는 것인지 비몽사몽을 하다가 먼동이 트면 무거운 몸으로 아침을 맞이했었다. 한데 십전 대보 환을 먹고 나면 삼십분도 되지 않아서 스르르 제풀에 눈꺼풀이 덮여왔다. 소변도 볼 시간 없이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밤새도록 뒤척이며 망상 속에서 시달리던 괴로움이 사라지고 보니 그만 병이 나아버린 듯 몸도 기분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저녁을 먹고 나면 졸리운 것이 TV도 볼 여유가 없었다.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떨어져 있으면 비가 오는지 천둥이 치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 근섭이가 오는지 가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지고 말았다.

연탄아궁이의 온기가 올라오는 아래 묵에는 영심이가 눕고 가운데를 내가 벽을 쌓듯 차지하고 윗목이 근섭이 자리였다. 한방을 쓰고 있었지만 이론상으로는 우리 부부 옆에 놈이 끼어 잠을 자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보약을 먹고 깊은 잠이 들면서부터는 근섭이와 동거 자체도 관심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졸음이 밀려오면서 사르르 눈꺼풀이 내려앉으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마는 것이다.

모두가 십전 대보 환덕이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푹 잠을 자고 난 다음날이었다. 가벼워져야 할 몸이 천근만근이 되는 것이다. 깊은 잠속에서 꾸어지는 꿈 때문이었다.

그 꿈이라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게도 근섭이가 나를 타고 넘어와 영심의 배위로 올라가는 악몽이었다.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내가 어이없게도 질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왜 이러나? 나는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친구 좋다고 좁은 방을 찾아온 친구도 그렇고 내 병을 낫게 해주겠다고 헌신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영심이를 의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래저래 나만 치졸 한 놈이 되고 마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마음을 다잡아먹어 보지만 잠이 깨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갈등으로 대 낯에 두 사람을 쳐다보기가 부끄러웠다. 빨리 병이 나아야 모든 것이 해결 될 것 같아서 지극정성으로 십전 대보 환을 챙겨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병은 낫지 않고 몸이 더욱 쇠약해서 인지 악몽에 더욱 시달리었다.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아니 더욱 심해져서 이제는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희미하기는 했지만 이상한 신음 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

환청까지 들리다니? 혹시 약 때문일까? 약이 몸에 맞지 않으면 이산증상이 나올 수도 있다는데? 갑자기 의심이 일어나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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