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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_도둑맞은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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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1 10:39:4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용천 배기 콧구멍속보다도 더 더러운 년 놈들이다. 임가 성을 쓰고 있는 놈이야 애초부터 더럽고 치사한 인간으로 치부하고 살았던 터였으니 그렇다고 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놈과 함께 부화뇌동을 해서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고 나서는 영심이 년은 백 번을 뒤집어 생각해도 용서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심이는 한때 내 인생의 전부였던 마누라였다. 비록 정식으로 예식장에서 주례를 세우고 기쁠 때나 슬플 때 함께 하겠다고 맹서를 한 처지는 아니지만 이불 속에서 함께 몸을 섞은 지 일 년이 넘었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는 말을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내 눈이 삐었던 것이 분명하다. 잠시나마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를 모두 던져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더러운 것이 정인가? 한데도 아직도 마음 한 켠으로는 미련이 남아있는 것은 무슨 조화 속일까? 아니 연민일 것이다. 한때라도 나를 사랑해 준 영심이의 진심만은 믿고 싶은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고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애초에 근섭이를 받아들인 것은 나였다. 너무나 정이 그리웠던 내 눈이 삐었던 모양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십 년이나 소식이 없던 근섭이가 찾아와 소주 한잔을 사달라고 했을 때 뿌리쳤어야 옳았다. 진작부터 근섭이의 행실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뿌리 칠 수가 없었던 것은 그 무렵 나는 참으로 고달팠다. 직장은 힘들고 몸은 아프고 아무 곳이나 몸과 마음을 뉘고 싶은 처지였다. 갑자기 고향친구를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아무 생각도 없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질금거린 것이다.      

 

   근섭이는 죽마고우로 동창생이다. 초등부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죽자 살자 붙어 살았던 처지는 아니었지만 무슨 인연인지 군대까지 함께 다녀왔다. 제대를 하고 근섭이는 대학에 진학을 했고 나는 어정거리다가 고향을 떠나 이곳 철공소로 취직을 했다. 

 

    진학조차 포기하고 낯선 도시의 철공소 공원이 된 나는 몸도 마음도 피곤해져서 웃음을 잃어갔다. 친구는커녕 사람들조차 만나기 싫어졌다.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무렵 내가 몰입했던 것은 돈이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어김없이 들어오는 월급으로 은행통장에 적립되는 액수가 늘어나면서 어쩌면 나도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영심이가 몸을 붙여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비록 고무공장 공순이였지만 그녀는 진실로 나를 사랑했었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여자 쪽에서 적극적으로다가 왔다. 

 

   극장표를 사서들고 오는가하면 자장면을 먹겠다고 중국집도 앞장서서 끌었다. 공원벤치에서 첫 키스를 하던 날 여인숙으로 앞장선 것도 그녀였었다. 황홀한 나른함에 젖어 있는 내게 그녀가 동거를 제안했다. 함께 살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 무렵 그녀는 내 전부였다.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 삼단 같은 머리를 걷어 올리면서 토실한 엉덩이를 흔들어 대면 뛰던 심장이 멎어 버릴 듯 숨이 컥 막혀버릴 듯 좋아 했던 것이다. 

    

   가방하나를 달랑 들고 내 전세방으로 들어온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일거양득이었다. 혼자 생활비로 둘이 함께 쓰고도 남았다. 알뜰한 살림솜씨 때문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하루 종일 떨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가 야근을 하는 날밤은 옆이 허전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 감격했던 것은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였다. 눈물이 날만큼 지극 정성이었다.  퇴근하면 발부터 씻겨주었다. 그 나긋한 손길을 따라 이불 속으로 함께 들어가면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 되어 황홀지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세상에 무엇인들 아까울 것이 없었다. 아까 울 것이 없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기꺼이 죽어 줄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쯤 나는 아들 딸 새끼들 하나씩 잘 낳아서 키우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아주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바람이었을 뿐이다. 

   재수가 없는 것일까? 내 운명이 그런 것인가? 어느 귀신이 질투를 한 것인가? 어려서 굽은 나무는 커서도 성장이 멈추는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하더니 입맛이 떨어지면서 몸이 수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와의 정사 때문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해만지면 그녀와 함께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온몸에 진땀까지 베어 나오는 것이 도시 일어나기도 힘이 들었다. 어쩔 수없이 병원을 찾아 나섰다. 청천 벼락이었다. 폐병이라고 했다. 철공소에서 쇳가루를 많이 먹은 탓도 있었겠지만 영심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신혼에는 흔치 않게 생기는 병입니다. 별거를 하십시오.”

   의사는 직장까지 그만 두고 요양을 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인생 최초로 얻어진 행복을 놓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 겨우 구름 걷히고 맑은 날만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폐병이야 몸보신하면 낳는 병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낫을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혼 어쩌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혼자 살면서 돈을 아끼느라고 돼지고기 한 근을 제대로 삶아먹지 못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옆에 있으니 걱정을 하지 말라. 죽어도 함께 죽자.

    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녀 때문에라도 죽을 수가 없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내조가 시작되었다. 하나도 둘도 몸보신이었다. 매일 밥상에 고기가 올라 왔다. 혼자 살고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해보지도 못한 밥상이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구해왔다. 개고기는 기본이고 개구리, 심지어는 뱀탕까지 끓여들고 왔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그녀였다.   

    나도 자신 감이 생겼다. 폐병쯤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먹을 쥐면 양손에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대로라면 폐병쯤 훌훌 털고 일어나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 때 근섭이가 나타난 것이다. 검정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곤 색 코트까지 팔에 떠억 걸친 친구를 보는 순간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그저 반갑기만 했었다.

    어떻게 이 구석까지 찾아냈을까?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철공소로 용케도 찾아와 반가워죽겠다고 덥석 나를 껴안더니 눈물까지 글썽이는 근섭이를 보면서 마음 깊숙이 감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콧물까지 훌쩍이면서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살아오면서 친구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콧마루가 시큰 해지고 있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던 있을 때여서 일 것이다. 너스레를 떨고 있는 근섭이를 보면서 가까이 있는 친구란 친척보다도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찾아 와 주어서 고맙다.”

    진심이었다. 모두 잊어버린 나를 이 구석진 곳까지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감격할 일이었다. 두 번인가? 아니 정확히 세 번째 왔을 때는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저녁이라도 한 그릇 먹여 보내고 싶었다. 영심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다소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친구가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도 하고 싶었다.

    내 걱정은 기우였다. 근섭이가 오히려 영심이를 감격시키고 만 것이다.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선물까지 준비를 해들고 온 것이다. 놀랍게도 두 돈이나 되는 순금 금반지를 그녀 앞에 턱 내놓으면서 목소리를 깔고 나섰다.

   “결혼식에 참석을 못해서 미안하다. 늦게나마 축하한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영심이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졌다.

   “뭘, 이런 것까지?”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죽을죄를 지었다.”

   “우린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예쁜 마누라와 살면 됐지 형식적인 결혼식 따위가 무예 중요하냐?”

   “어머머.”

   생전처음 받아보는 금반지에 미인이라는 소리까지 서슴없이 쏟아놓는 근섭이의 아부에 영심이는 완전히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너무 멋지다.”

   금은커녕 구리반지도 끼워보지 못한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폴짝대는 그녀를 보면서 눈물이 날만큼 기뻤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는지 몰랐네.”

   별 볼일 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모처럼 함께 사는 여자 앞에서 내 자존심을 살려준 근섭이가 너무 고마웠다.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

    근섭이가 가뜩이나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술을 못한다.”

    조금은 미안했지만 지금의 내처지가 술까지야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머. 그건 인사가 아니지요.”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영심이가 가로 막고 나섰다.

    “내가 있잖아요.”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다소 당황되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놈의 눈에서 스쳐가는 광채를 보았다.

     “영심씨는 말이 통해요.”

     언제 보았다고 영심씨 인가?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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