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오래되고 큰 나무)를 통해 보는 군산이야기
아홉 번째 – 소룡동(少龍洞) 은적사의 나무
글ㅣ김태휘(스코트라 미래기획실)
macwon@naver.com
소룡동은 군산시의 북서부에 위치합니다. 북쪽으로 금강 하류 및 서해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넓은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군산 국가산업단지와 군산항 등이 있으며, 관내의 점방산은 조선 시대 봉수가 있던 곳으로 봉화재, 천방산, 봉대산, 의송산 봉수로도 불립니다. ‘소룡' 지명은 조선 후기 고문헌 및 고지도에서 확인되지 않으나 조선시대 전국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호구총수』(옥구)에 북면 소록리(小鹿里)가 등재되어 있어 이 기록이 '소룡'의 단순한 음차표기인가를 의심하게 합니다. 한편, 한국의 마을·내·산 등이 지녀온 고유한 이름을 조사·수록한 책으로서 1986년에 간행되었던 『한국지명총람』에 "솔고지[少龍]는 소룡동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많았음."이라는 기록이 있어, 소룡동의 다른 명칭인 '솔고지'와 촌락 지명인 '소룡'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연 마을로는 솔고지 이외에 사장일구, 사장이구 등이 분포했음을 『한국지명총람』(군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옥구현 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군산부 북면의 사장리·신풍리·돌산리 등을 병합하여 옥구군 미면 신풍리로 편제되었고 1973년에 옥구군 미면의 일부를 군산시에 편입시켜 소룡동을 신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8년에는 옥구군 옥도면의 오식도와 비응도를 오식도동과 비응도동으로 편제하여 소룡동 관할에 편입시켰습니다.
보호수(팽나무,느티나무)를 만나러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가다
은적사(隱寂寺)는 설림산(雪琳山) 서쪽 기슭에 자리합니다. 조선 중종때 발간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613년(백제 무왕 14)에 원광(圓光) 국사, 또는 원종(圓宗) 화상이 최초로 창건하였다고 전해내려 옵니다.
이곳 은적사의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들어서면 세 그루의 노거수를 만나게 됩니다. 좌측에 느티나무 한 그루, 우측에 팽나무와 느티나무 각 한 그루씩 입니다. 그러나 좌측의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아 보호수 표석이 없습니다. 군산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은 두 그루입니다. 우선 우측의 첫 번째 나무는 팽나무인데요,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300년 정도로 추정이 되는 이 나무는 청나라에서 서해 바다를 건너 불상을 가져온 후 불법의 설법과 전파를 위해 소룡동 팽나무를 심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팽나무란 이름은 나무의 열매에서 빌린 것입니다. 팽나무의 열매를 작은 대롱에 넣고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공기 압축을 이용해서 탁 치면 팽하고 날아가는 것을 ‘팽총’이라 하는데, 팽나무는 열매가 여기에 쓰여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페르송(1762-1836)이 붙인 학명 중 속명 ‘켈티스Celtis’는 ‘단맛을 가진 열매’에서 온 말이며,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슈거 베리Suger berry’도 열매를 강조한 것입니다. 팽나무 중에서 열매가 검게 익는 것을 검팽나무라 하는데 한국 원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어 이정표로 삼았던 것처럼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1리마다 심어 거리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팽나무의 한자는 박수(朴樹), 박수(樸樹), 박유(樸楡)등으로 사용하는데, 이러한 한자 이름은 주로 한의학에서 사용합니다. 모두 나무의 껍질을 강조한 이름입니다. 재질이 좋은 느릅나무과에 속해서 인지 이 나무로 통나무배인 ‘마상이’를 만들었습니다. 팽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삼고 있는 곳이 많은데, 특히 영호남의 곡창지대에 나이 많은 노거수가 많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팽나무의 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해의 풍작과 흉작을 점쳤기 때문인데요. 새싹이 일제히 나오면 농사가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라 믿었습니다. 당산나무로 여기는 대표적인 팽나무가 경북 예천군 용군면 금남리의 ‘황목근(黃木根)’입니다. 황목근의 성은 황색꽃을 피워서 붙인 것이고, 이름은 나무의 근본이라서 붙인 것이라 합니다. 이 황목근은 세금을 내는 나무로 유명한데요, 황목근이 살고 있는 땅이 팽나무의 소유이기 때문이라네요. 500년 된 이곳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군산에도 이에 못지않은 팽나무가 있는데요. 매거진군산 2021년 11월호에서 다루었던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의 600년 팽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2021년 6월에 전라북도 기념물(제148호)로 지정되었는데, 나무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도 존재하는 나무이기에 차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편, 느티나무처럼 천년을 살 수 있는 나무인 팽나무는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주로 바닷가에서 많이 살고 있습니다.
팽나무 뒤 계단 우측경사지에는 느티나무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원산지가 한국으로 전국에 분포합니다. 낙엽활엽교목으로 수형은 뚜껑 모양이고 붉은 빛, 노란 빛으로 단풍이 드는데, 조선 시대 영조·정조 무렵 보경 선사가 은적사를 중창할 때 소룡동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식재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약 34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느티나무는 회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인 ‘괴(槐)’를 함께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천년이상을 살아 온 노거수중 가장 많은 수의 나무가 느티나무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을마다 느티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북 괴산(槐山)은 느티나무의 이름을 가진 행정명인데다 전국에서 느티나무 노거수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데요, 국보 18호인 경북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 기둥이 바로 느티나무입니다. 2019년에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으뜸에 해당하는 대구 달성군의 도동서원의 강당기둥도 느티나무입니다. 도동서원은 우리나라의 다섯 분의 뛰어난 현인을 일컫는 동방오현중 수현(首賢)인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을 모신 곳입니다.
이 외에도 은적사에는 대웅전 앞마당에 두 종류의 나무가 노란색과 붉은 색으로 봄을 알리는데요, 계단을 올라 왼편에 있는 홍매와 우측 오층석탑 근처에 있는 산수유입니다. 산수유에 비해 홍매는 아직 어린나무이지만 그 자태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봄을 지나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이 오면 오층석탑 근처에는 커다란 배롱나무가 꽃을 드리우게 되는데요, 배롱나무는 향교나 서원, 사찰에는 꼭 식재되었던 나무입니다. 서수면 취성산에 있는 상주사에서도 300년 가량의 배롱나무 보호수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정종'된 전래의 술 '청주'의 대명사 군산
군산을 빛내고 근대산업을 이끈 기업 중에 우리가 익히 아는 주류기업이 있습니다. 청주(淸酒)의 대명사였던 백화양조입니다. 청주는 쌀로 빚는 양조주입니다. 말 그대로 맑은 술이죠. 일제강점기를 거치다보니, 청주는 일본식 표현인 '정종'으로 불리고, 일본 전통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청주는 우리 전래의 술로서, 일본에 건너간 술입니다. 일본 고사기(古事記)에 "응신 천왕 때(AD 270∼312년)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일본으로 건너와 청주 제조기법을 전수하였다"라는 기록이 그 근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집에서 청주, 약주, 막걸리 등을 빚어 마셨습니다. 하지만 술 빚는 일이 양조업으로서 기업화된 것은 대부분의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1900년 이후 일입니다. 1909년 주세법이 공포됐고, 각 지방마다 주조장이 세워져 규모화 된 생산이 이뤄졌습니다. '군산상공회의소 100년사'에 따르면 개항 당시부터 군산에 세워진 주요 회사 및 공장은 1899년 상야주조장, 암본주조장,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