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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출신 박래현의 예술세계
글 : 이진우 /
2021.12.01 16:47:2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출신 박래현의 예술세계

 


(구암동 박래현 화가 옛 집터 2)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에서도 우향 박래현 화가를 구체적으로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202113일까지 <박래현, 삼중 통역자> 전시회가 개최 중이다. 심지어 이 전시회를 본 관람객들 대부분도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느냐?’는 놀라운 반응을 보일 정도다. 이는 이중섭이나 천경자, 그리고 박수근, 김환기 같은 화가 등은 익숙해도 박래현이란 화가에 대해선 생소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술 교과서에서 그녀의 작품을 본 적이 있거나, 심지어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들에게도 같은 현상이었다. 박래현이 추상화와 태피스트리, 판화를 넘나들며 작업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네 자녀의 엄마였고, 50대 중반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작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인다. 소위 박래현의 재발견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박래현은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류할 수 있는 풍부한 작품 세계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작가였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학예연구사는 그녀가 살아왔던 시대가 그녀를 예술가 박래현 대신에 운보 김기창의 아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게 했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재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래현 작가의 판화작업, 197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박래현이 일본 유학기간 배웠던 일본화를 과감히 버리면서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2부는 운보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현모양처 박래현의 면모도 들여다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1960년대에 전 세계를 여행한 뒤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화를 완성하고 있다. 4부에서는 미국 유학생활을 하며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해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단장, 1943,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그녀의 초기작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검은색 기모노 차림으로 빨간 경대 앞에 앉아 있는 소녀를 그려낸 <단장>이다. 이 작품은 인물화 기반을 내실 있게 다진 박래현의 기량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대담한 구도와 함께 강렬한 색채 대비가 아주 돋보인다. 그리고 <이른 아침><노점>은 일본화의 영향에서 탈피한 입체주의를 탐구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1956년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그리고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각각 수상했다.

 

 



(노점. 1956, 한지에 수묵채색, 266 x 212cm.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래현은 19641965년 미국 순회 부부전(夫婦展)을 연후, 미국과 유럽 및 아프리카 등지를 돌면서 추상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구불거리는 노란색 띠와 붉은색·검은색이 어우러지는 추상, 소위 <맷방석 시리즈><엽전 시리즈>라 불리는 작품들이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그 가운데 19661967년에 제작된 <영광(榮光)>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붉은색과 황색으로 표현한 생명력과 동양화 특유의 먹물 번짐 기법이 결합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영광, 종이에 채색, 134 X 168cm, 1965196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래현은 상파울루 비엔날레(Sao Paulo Biennale)전에 한국대표단 일원으로 출국, 멕시코 등 중남미 일대를 두루 여행한 것을 계기로 서구 미술의 방법론과 판화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밥 블랙번(Bob Blackbunn) 연구소와 프렛(Pratt) 그래픽 센터에서 판화와 태피스트리(tapestry)를 공부하고 귀국해,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최한 <귀국 판화전>은 한국화단과 판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리콜렉션(197073)>, <가면(1973>, 고완(1975) 등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그녀는 1975년 판화 수업차 다시 미국으로 갔다가 갑작스런 건강악화 때문에 그해 11월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7612일 성북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타계했다. 그 때가 향년 56세였다. 박래현은 아픈 몸으로 귀국해서도 동양화와 판화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불타는 예술 열정을 보였었다.
 
이와 관련,‘학예사는 그간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의 아내라는 이미지가 너무도 강했고, 그녀를 독립적인 작가로 들여다볼 시대적 여건도 전혀 아니었다면서,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작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 사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를 온전한 작가로 바라볼 수 있는 미적 안목과 젠더(Gender) 감수성이 갖춰졌다는 의미이다.
 
강민기 충북대 교수도 박래현은 현대적인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가였다면서, 이번 전시가 박래현의 눈부신 궤적을 제대로 마주할 기회라고 지적했다. 덕수궁 전시이후, 2021126일부터 59일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남편 김기창과 합작품인 'C'. 1956, 종이에 채색, 167 x 248cm, 아라리오 컬렉션. 박래현이 나무를

그린 후 김기창이 참새를 그리고 글씨도 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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