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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석교수의 오키나와 이야기 잊어버린나라,유구국을 찾아서
글 : 김항석 /
2019.02.01 15:22:0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김항석교수의 오키나와 이야기

잊어버린나라,유구국을 찾아서

글: 김항석 (새만금 금강역사 문화연구회 회장)

 

 

 

삼별초의 한이 서려있는 강화도 상공을 지나자, 불과 2시간여만에 오키나와의 나하공항에 도착하였다. 나하공항은 오키나와의 중심도시 나하시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1933년에 구 일본 해군에 의해 건설된 후 많은 증.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 현대적인 국제공항이다. 

 


 

 

쾌청한 날씨에 시가지는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으며 관광객, 특히 한국과 중국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최남단의 현이지만 15세기에 유구왕국이 수립되었다가 1872년에 일본에게 강제로 복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면서 유구국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알아보았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의 교류는 오늘날 울릉도에 있었던 우산국 주민들이  유구열도로 이주해서 유구를 경영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고려의 삼별초가 유구로 건너가 유구왕국을 건설했다는 역사적 증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홍길동이 세운 이상국가 율도국이 유구국이라는 설도 있다.

 

 

 

우산국과 유구국

 

서기 512년에 신라의 이사부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자 우산국 주민 1천여명이 울릉도를 떠나 바다로 남으로 내려가 오키나와 열도에 도착하여 오키나와의 전신인 유구국을 세워 12세기말까지 25대에 걸쳐 왕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당시 우산국 주민들은 신라계가 아닌 마한과 백제, 고구려 계통으로 추정되는 천손(天孫)씨로 불리던 집단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울릉도에 풍부했던 느티나무로 만든 튼튼한 배를 타고 남쪽으로 항해하여 오키나와에 도착한 뒤 오키나와 열도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 유구왕국을 건설하여 670여년간 왕국을 다스리다가 1187년에 왕이 살해되어 멸망하였다고 한다.

 

 성균관대에서 “독도 영토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 선우영준 교수는 일본 고문헌 조사와 오키나와 현지 답사를 통해 오키나와의 전신인 유구국이 고대 울릉도 주민들의 이주로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뒷받침 하고있다

 

 

삼별초는 어디로 갔을까

 

 대제국 몽고가 고려를 짓밟던 13세기에 마지막까지 대몽항전을 벌였던 삼별초, 삼별초는 고려왕실이 몽고에 굴복하고 강화도를 떠나 개경으로 돌아가자 이에 불복,  배중손장군의 지휘아래 항전을 시작했다. 삼별초는 세가 불리하자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진도가 함락되자 김통정 장군을 중심으로 제주도로 가서 마지막까지 항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273년에 여몽 연합군의 맹공으로 제주도 마져 함락하자 김통정장군은 자결하고 다수가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지금까지 역사는 삼별초는 여기서 멸망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살아남아 도망간 삼별초는 어디로 갔을까?  살아남은 삼별초가 깊은 한을 품고 바다를 건너 도착한 곳은 어디였을까? 오늘날의 오키나와가 아니었을까? 

 


 

 

오키나와를 지배한 유구왕국의 수도 수리성과 우라소에라는 곳에서 나온 기와들은 삼별초가 진도에 쌓은 용장성의 출토기와와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학계에서는 오키나와에서 출토된 고려계 기와들이 삼별초 세력의 것이라는 추정은 새삼스러운 가설이 아니라고 한다.

 

 

홍길동의 율도국은 유구국일까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호조참관을 지낸 홍일동은 남양홍씨 족보를 최초로 정리한 사람으로 조선초기 절도사를 지낸 홍상직의 아들이다. 홍길동은 홍상직의 서자로서 홍일동의 이복동생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홍길동은 조선왕조 정사(正使)와 야사(野史)에 여러 번 등장한다.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 전에 등장하는 홍길동(洪吉童)과 조선왕국실록에 등장하는 홍길동(洪吉同)과는 한자에 차이가 있다. 

 


 

 

이는 허균이 연산군때 실존했던 인물 홍길동(洪吉同)을 자신의 소설 주인공 홍길동(洪吉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홍정승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봉건사회의 적자와 서자의 차별에 반발하여 집을 뛰쳐나와 의적의 우두머리 가 된다. 그는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들을 응징하고 재물을 탈취하여 빈민들을 구제하였다. 

 


 

 

그러다가 연산군 때 관군에 잡혀서 의금부에 잡혀 있다가 탈출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홍길동은 바다를 건너 새로운 이상국가 율도국을 창건하여 스스로 왕이 된다. 율도국은 오늘날의 일본 오키나와로서 오키나와 야에야마 박물관에 소장된 홍길동의 처남 장전대주(長田大主) 가문 족보에는 홍길동이 전라도 장성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神歌모습 태극모습


 오늘날에도 오키나와 곳곳에는 1천 500년전의 우리 말과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과 고대 우리나라 언어 간에 음과 뜻이 비슷한 단어들이 상당히 많다. 오키나와 신가(神歌)에 나오는 소우루는 서울의 일본 가나식 표기로 추정되고 오키나와 귀족마을애서 쓰이는 우아미는 우리말 어머니와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같다. 

 


 

 

또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혈족계통을 연구한 결과 오키나와 주민의 Y-염색체가 한국인 특유의 Y-염색체와 대부분 동일하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 복속되기전의 유구국 국기는 우리나라의 태극문양과 비슷하다.오키나와에서 현재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출하는 신가는 우리나라의 탈춤을 연상하게 된다.

 


 

 

 일본은 과거 유구국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유구국간의 역사, 언어, 문화에 대한 연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뤄진다면 오늘의 한국과 오키나와 그리고 일본간의 고대 역사의 전면적인 재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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