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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만주기행’에서 만난 '주은래·등영초' 부부
글 : 조종안 /
2018.02.01 16:10:5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겨울 만주기행에서 만난

'주은래·등영초' 부부

 

 

중국 만주 목단강(牡丹江)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과 도시 이름이 같았다. 항일 무장투쟁과 발해 유적지가 인근에 있어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1950년대 인기가수 황금심, 이미자가 <목단강 편지>를 불러 유행했을 정도로 사연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단념하고 두 번 읽고 맹서했소, 목단강 건너가며 보내주신 이 사연을···'으로 시작하는 <목단강 편지> 노랫말에도 나오듯 만주 사람들은 볼일이 있어 목단강에 갈 때는 '간다'라고 하지 않고 '건너간다'로 표현한다고 전한다.

 

목단강은 처음 방문한 도시였다. 도시의 역사나 탄생 배경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고 이미자가 부른 노래 제목을 기억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철부지 시절 겨울밤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던 고향동네 아주머니들이 사는 마을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다른 도시 조선족들은 대부분 흩어져 사는데 목단강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도시 서편에 집단을 이루고 산다고. 그래서 단합이 잘 된단다. 자치주도 아닌데 민속거리를 조성해 유지해나간다니 당당하게 보이기에 앞서 경외감이 들었다.

 

목단강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친딸 김강석(1928~2003) 여사가 살던 도시였다. 김 여사 생모가 해산일이 다가오자 해림에서 칠가툰으로 가던 중 괴한들 칼에 살해되기 직전 산에서 낳았다고 해서 '산조(山鳥)'라고 불렀단다.

 

산에서 태어나 젖동냥을 하면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지내다가 1995년 정부 초청으로 한국에 왔으나 친자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부친(김좌진)의 묘는 참배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망하고 돌아가 목단강의 작은 아파트 단칸방에서 비참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는 설명은 애처로움을 더했다.

 

'등영초·주은래' 부부의 러브스토리

 

193810월 하순 숙영을 하다 일본군이 기습해오자 유인책으로 부대원들을 피신시키고 강물에 뛰어들어 최후를 장렬하게 마친 항일연합군 소속 여전사(女戰士) 여덟 명. 그들을 기념하는 '팔녀투강' 석조물은 목단강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빈강공원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화강암으로 된 기념비는 높이 13미터, 길이 8.8미터로 1988년에 준공되었다고 한다. 안내인은 기념비를 세우고 받침대에 '八女投江' 휘호를 쓴 등영초(1903~1992)에 대해 설명했다. 등영초는 중국의 초대 총리를 지낸 주은래(1898~1976) 부인이라는 것.

 

중국 여성 혁명가의 초상으로 일컬어지는 등영초와 주은래 부부의 휴먼 러브스토리는 중국인들의 술상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등영초는 열다섯 살 때 스물한 살이었던 주은래를 만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장개석과의 끈질긴 악연 때문이었다. 쫓고 쫓기는 가시밭길이 25년 동안 이어졌고, 주은래가 총리에 오를 때까지 아이가 없었다. 등영초는 부인이 넷이었던 모택동처럼 후처를 얻어 대를 이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주은래는 듣지 않았다.

 

'내가 다시 결혼하게 되면 평생을 나와 중국을 사랑한 '여자'가 매우 슬퍼질 것이다' 이는 훗날 주은래가 과거를 회상하며 했던 고백이다. 두 사람은 혁명시절에 숨을 거둔 동지 자녀들을 양자로 양육했고, 그들 중 한 명이 이붕(李鵬) 총리이다. 도마 안중근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등영초는 도마의 일화를 남편과 함께 가극으로 꾸며 자신이 직접 안중근 역을 맡기도 했다 한다.

 

중국인 대부분은 주은래보다 모택동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나이 든 어른들은 주은래가 없었으면 모택동도 혁명을 성공할 수 없었을 거라며, 아내와 50년을 해로하면서 지극히 사랑하였고, 동지들 자녀를 넷이나 양자로 맞아 훌륭하게 키운 주은래의 인간성을 더 높이 산다고 한다.

 

모택동은 주은래 총리에 대해 '사리사욕이 없으며, 고상하고 순수한 도덕적인 사람. 인민해방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설명은 물고 헐뜯다 못 해 죽이려고 까지 했던 우리 역대 권력자들과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부러움이 앞섰다.

 

광복(1945) 후 중국은 '팔녀투강'을 모티브로 <중화의 딸>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여전사들을 찬양하였다. 중국이 건국 33주년(2009)을 맞아 인터넷을 통해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을 선발했는데 안순복, 이봉선 여전사도 포함되었다.

 

 

'비극의 강'이 애틋한 '추억의 강'으로

 

탁하면서도 서정적인 목단강은 '모란강'으로도 불리며 중국 동북부를 흐르는 송화강(松花江)의 최대 지류이다. 길림성 목단령(牡丹嶺)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목단강시를 거쳐 하얼빈시의 이란현 부근에서 송화강과 합류한다.

 

변경도시 도문(투먼)에서 출발한 기차가 왕청(汪淸)을 지나 노송령을 넘으면 넓은 평야 지대가 나온다. 넓은 평야는 목단강 유역으로 과거 발해의 중심 무대였다. 여름에는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다는데 하늘땅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목단강을 건너가면 철령하(鐵嶺河)가 나온다.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잡아 가두었던 감옥이 있던 마을로 백야 장군 휘하에 있던 김기철 선생도 갇혀 있었다고 한다. 꽁꽁 얼어붙은 비극의 강 위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작은 인형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만주기행 나흘 만에 빈강공원에서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람은 볼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어찌나 추운지 안내자의 설명을 수첩에 메모할 수가 없었다. 손이 얼어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내자 설명에 따르면 지금은 겨울이어서 공원에 사람이 없지만, 여름에는 저녁을 먹고 나오면 시원한 바람을 쐬러 나온 조선족 어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안내자는 그동안 네 할머니를 만났다며 그중 한 분의 사연을 소개했다.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요즘엔 옛날 생시처럼 목단강이 보여. 내 평생에 딱 한 번 남자 등에 업혀 봤는데, 거기가 목단강변이야. 결혼하고 두어 달쯤 되었나, 남편이 그날 냉면도 사줬어···"

 

목단강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추억을 얘기해달라고 하면 하나같이 처녀 때 아름다운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는다고 한다. 꽃다운 여전사들이 동료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졌던 비극의 강이 남편과 데이트를 즐겼던 애틋한 추억의 강이 되었다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안내자의 흥미 넘치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추위도 가셨다. 시계는 오전 9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바로 버스에 올라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기 위해 '동경성'으로 이동했다. 조선족 민속 거리를 들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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