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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탐방의 즐거움 작은 거인 김관태 선생
글 : 오성렬 /
2018.10.01 15:30:0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인문학 탐방의 즐거움

작은 거인 김관태 선생

 

 

지역의 대학을 비롯한 각계 인문학 강좌, 문화예술 전시·공연 공간, 역사 탐방 행사 등에 가보면 대체로 그를 볼 수 있다. 남다른 학구열에다가 바지런함, 그리고 폭넓은 인간관계까지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범인의 경지를 뛰어넘는다. 학창시절엔 선생님이 학급전체 학생을 일어서라고 했다가도 그에게만은 너는 서나 앉으나 똑 같으니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정도로 키가 작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거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일찍이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의 기쁨(學而時習之不亦說乎)’을 설파했거니와 그를 대할 때마다 새삼 공감하게 되는 문구다. 서흥중학교 과학교사로 재직 중인 김관태 선생(59)이야기다.

 

성장기 이야기

그가 태어난 곳은 군산시 조촌동. 군산남중 졸업 후 익산남성고를 거쳐 전북대학교 사범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후일 평소 관심을 두고 있었던 서해대 호텔관광학과도 졸업했다.

돌이켜보면 비록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7남매의 막내둥이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갔던 시기였다. 다만 몸이 약해 버스 타는 것도 힘들어 했으며 멀미가 심한 체질이어서 변변히 수학여행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던 학생이었다. 그래선지 가슴 한구석에는 늘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심이 싹텄고 그것은 훗날 전국은 물론 외국에까지 답사, 여행을 즐기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중학생 시절엔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고등학생 때는 군산-익산 간 열차로 통학했는데 그러다보니 점차 체력도 나아지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만 갔다. 사범대에 진학한 것은 아버지의 기대 때문이었다. 학과목 중에서 유달리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던 터여서 수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수학과가 없어 과학과를 선택, 화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그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해서 풀고 싶은 효심에서였는지 큰 딸이 수학을 전공하게 된다.

 

왕성했던 호기심

그의 집 앞엔 교회가 있었다. 어려서는 기독교를 접하면서 그것이 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교회 및 천주교 성지 등을 둘러보게 되었다. 특히 천주교 순교성지는 책자에 소개된 대로 약 3년에 걸쳐 전국 111군데를 빠짐없이 탐방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제주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추자도였는데 황사영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의 묘를 찾아가는 길의 파도는 금방이라도 배를 뒤집어엎을 듯이 어마어마했다. 이날의 탐방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도착하기까지의 고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밀양의 만어산 중턱에 자리한 김범우(토마스)의 묘를 찾았을 때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하산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문화는 불교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자연스레 사찰과 탑, 부도(浮屠/사리탑), 석등, 마애불(자연 암벽에 새긴 부처)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중에서도 특히 마애불은 찾는 이가 많지 않고 항상 묵묵히 인간을 지켜보는 듯한 모습에 매력을 느껴 201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국에 산재된 150여 곳을 탐방했다. 이러한 마애불은 산 정상부나 중턱, 평지 등에 고루 분포하거니와 저마다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의 조상들이 산길을 지나다가도 이러한 마애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경건한 자세로 공양을 드리고 복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한다.

 

역사탐방동아리 활동

김 선생이 역사탐방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 출발은 16년 전인 2002년도 익산 미륵사지 주최

교사역사문화강좌연수 수강신청으로 비롯했다. 전국 유명한 교수들의 훌륭한 강의와 현장답사에 참여하면서 완전히 빠져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해를 거듭할수록 강좌도 늘었고 우리나라와 외국의 역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지식을 터득해가는 과정은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윽고 익산의 교사들 중심으로 익산향토문화연구회가 결성됨에 따라 그도 회원으로 가입, 열심히 활동하면서 한국의 마애불관련 답사기를 기고한 바도 있다.

 

현장답사와 함께 그렇게 몇 년을 공부하던 중 희소식이 들려왔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긴 하지만 군산에서도 역사답사회가 조직된 것이다. 그간 군산에서도 잠정적으로 미미한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활성화 되지 못하던 차 군산대학교에서 군산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군산학 강의가 개설됨에 따라 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2013년도 들어 군산역사사랑회’(이하 군역사)명칭의 역사탐방 동아리가 발족된 것이다. 군산대 사학과 정기문 교수를 회장으로, 군산중앙고 김두헌 역사담당교사를 책임강사로 출발한 군역사는

어느덧 30여회의 탐방행사를 가진바 있는데 매년 격월제로 현장답사와 강의를 통해 호응이 커짐에 따라 일반인 회원도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역시 발족 초기 발기인으로 참여, 부회장직을 거쳐 작년에 3기 회장(고대영)체제로 접어들면서 총무 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는 틈틈이 여행도 즐긴다. 국내여행은 30년 전쯤 시작했고 10여 년 전엔 광역 지자체 도시위주로 전체를 순회하기도 했는데 요즘 주로 하는 여행은 그때 빠뜨린 곳이나 새로 생겨난 지역을 돌아보는 정도다. 여행의 목적은 그 지역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자주 듣는 질문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는 물음이 가장 많은데 그럴 때마다 언제 어디가 좋았느냐고 고쳐서 질문하라고 말해준다. 거기에 누구와 함께가 덧붙여지면 최상의 질문이 될 거라면서 말이다. 사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만큼 즐겁고 오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최근에도 약 2주간 발트해 연안 국가를 비롯해서 주변 국가들까지 약 2주간에 걸친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대강 헤아려보니 그간 20여 차례에 걸쳐 25개국 정도를 여행한 듯하다. 아직까지는 아시아 여러 나라와 유럽 위주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나라마다 각각의 문화와 특징 속에서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했다. 사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상을 현지에서 보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으로서 결국은 사람에 대한 탐방이 그 여행의 종착지랄 수 있다 하겠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자문을 던져놓고 스스로 방황하며 뭇사람들과의 부딪침과 관계 속에서 참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흥미롭거니와 기력이 버텨주는 한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이다.

 

지역의 전시·공연 및 행사장 탐방

10여 년 전부터 우리 군산에서도 각종 문화 행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거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조성되고 있다. 필자도 군산시립오케스트라나 시립합창단 공연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여러 단체의 공연장을 수시로 찾고 미술이나 서예전시회, 연극 등도 자주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 곳에 가든 김 선생을 만난다. 그가 분신술을 쓰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어디에 가든 항상 그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가 답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오랫동안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문화예술 공연을 즐기다가 마침 집 가까이에 예술의전당이 건립되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열리는 전시회, 음악회, 연극, 기타 등의 공연이 열리니까요. 그럴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참가하는 편입니다. 그 밖에도 미술관, 박물관, 문학관, 공연장 등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심지어는 익산이나 전주 외에도 전국의 유명 공연장이나 행사장에도 많이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축적되어 문화예술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뜬 게 아닌가 합니다.”

 

평소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가르침

1981년도 교직에 몸담은 이후 내후년 정년을 앞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37년여의 교단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제자들에게 강조한 가르침은 성실함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성실함은 비록 발이 느릴지라도 경국은 승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하나가 있다면 일반적 가르침이기도 하겠으나 공부를 많이 하라고 주문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하며 모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갑갑하고 난관이 많을 터여서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식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배움을 통해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다.

 

평소 즐겨 읽거나 가장 감명 깊었던 책, 영화

그는 평소 인문학서 전반을 섭렵하는 가운데 국내, 외 여행 소개 책들을 즐겨 읽고 있다. 특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비롯하여 최성민 작가의 자연주의 여행기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유 교수의 책이 미술사학적으로 체계적인 정리를 했다면 최 작가의 책은 자연과 벗 삼는 여행에 관해서 들려준다.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기, 답사기 등도 탐독하고 있는데 어릴 때 친구 집에서 빌려보았던 김찬삼 교수의 세계일주여행기가 뇌리에 박혀서인 듯하다. 최근엔 특별히 한국의 산성(山城), 서원, 암자 등과 관련된 책들을 구해서 읽고 있다.

 

영화는 누구나 좋아하고 그만큼 장르도 제각각이겠지만 그는 프랑스 영화와 같이 잔잔한 스토리의 영화를 즐기는 편인데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프라이드 그린토마토(92/케시 베이츠 주연), 포레스트 검프(94/톰 행크스 주연), 로렌조 오일(92/닉놀테, 수잔 서렌든 주연)과 같이 따뜻한 인간미가 담긴 감성적 영화를 꼽는다. 또한 연극으로는 사무엘 버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그리고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등이 기억에 남는단다.

 

퇴직 후의 구상

그에게 퇴직 후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답한다. “확실히 단정하기는 뭐하지만 여행에 관한 것과 역사와 과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해볼까 합니다. 더불어 언제 끝날 진 모르지만 제 자신만의 과업인 한국의 인물 묘지를 500곳 정도 답사할 예정으로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서울 망우동 공원묘지에서 역사적으로 알려진 많은 인물들의 묘를 한꺼번에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 화가 이중섭, 소파 방정환 선생을 위시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명 인물들이 그곳에 잠들고 있었는데 그분들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다니는 어려움을 덜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남의 묘소를 보고 이렇게 기뻐하다니...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옛것을 찾는 즐거움 / 취미

그는 어릴 때부터 국내외 우표나 화폐(지폐, 동전)를 모아왔다. 우표나 화폐는 그 도안 속에서 그 나라의 인물이나 자연환경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석, 옹기, 회화, 고서적, 음반 등을 수집함에 있어서도 평생을 투자하고 있는데 그래서 틈틈이 서울 청계천이나 황학동 시장을 비롯한 전국의 고물시장을 둘러보며 희귀한 책이나 물건이 있으면 구입하기도 한다.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이러한 것들은 그 가치 여부를 떠나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그래선지 얼마 전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서재를 가득 메우고도 옆방에까지 가득 찬 어림잡아 10,000여권이 넘어 보이는 책들과 수석 등을 보고 감탄한바 있다. 그 작은 체구로 저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다 운반했는지 놀라웠는데 이사를 가고 싶어도 저 책들과 수석 운반할 일이 도저히 엄두가 안 나 포기하고 살고 있어요.”하면서 그가 웃는다.

 

그가 수집가로 알려지면서 이제는 지인들로부터 당신이 좋아할만한 물건이 있는데 사겠느냐라든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팔지 않겠느냐따위의 상담을 받을 때도 있어 그러다보면 때로 사료 성을 지닌 진귀한 물건을 손에 넣기도 하고 얼마 전엔 모 문중의 오래된 족보 상당량을 구하기도 했다는데 그 족보는 관련 학자에게 기증하는 등 자신의 소장품 중에서도 그것이 꼭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무상 기증하는 넓은 아량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취미생활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일찍이 통기타를 배우느라 군산의 명강사에게서 지도를 받기도 했고, 바둑 실력도 아마추어로선 상급에 속할 정도이며 사진에도 큰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여행이나 답사 시는 물론 일상에서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을 즐김으로써 그의 폰 속에 저장된 사진만도 족히 수만 장은 되어 보인다. 아울러 음악 감상,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문화공연에도 두루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고 있는데 이러한 취미생활을 통해 사물을 관조하는 안목과 수준이 높아진 게 아닌가 한다.

 

매거진군산의 열혈 독자

그는 20114월에 발행된 매거진군산 창간호부터 최근 9월호(90)까지 한권도 빠뜨리지 않고 전량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애독자다. 그에게 소감을 묻자 사실 우리 지역에 주간신문은 있지만 읽을 만한 잡지가 없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2011년도 들어 월간지로 매거진군산이 발행되어서 기뻤습니다. 이러한 민간 발행 잡지는 전북도내에서도 처음인데다가

그 장정이나 디자인, 지질, 기사 내용 등이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놀랐고요. 듣자니 매거진군산은 문화관광부 주최 전국잡지발행인 세미나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하고, 이와 관련하여 이후 이진우 발행인이 CBS방송 대담프로에 초청되는가 하면 잡지발행 관계자 모두 전주KBS 아침마당에도 출연하는 등 지명도를 넓히고 잡지의 지면도 늚으로써 지금은 정기 독자층도 엄청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매거진군산을 통하여 우리 군산의 인물, 역사, 문화 등과 새로운 소식 등을 접할 수 있어 너무 좋더라고요. 앞으로 100, 200...1,000... 계속해서 우리 군산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자랑스러운 잡지로 무럭무럭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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